달이샘의 역사나들이(답사) 204

청풍김씨묘문 의왕시 왕림, 입향조 김우증 묘(김여광, 김계, 김태로 묘)

청풍김씨묘문 의왕시 왕림 입향조 정국공신 김우증 묘역 -김우증 신도비, 청평사(사당), 김우증 묘 및 묘갈, 김여광 묘, 김계 묘 및 묘갈, 김태로 묘, 김충백 부인 전주이씨묘 청풍김씨 판서공파 세도의 비조인 정국공신 김우증은 연산군을 몰아내고 3등이 되면서 이곳 왕림을 사패하였다. 이곳에서 손자인 계자 김계 이하 후손들이 현달하였는데, 특히 인백파라 불린 김계의 3남 김인백의 후손들에서 재상이 6명이나 배출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그의 묘갈은 인백파 후손 영의정 김상로가 묘갈을 지었고 그의 신도비 역시 김상로가 짓고 또 후손이자 영의정을 역임한 김치인이 써서 위엄있게 세웠다. 이 신도비의 내용을 보면 김계 이하 아들들을 지파로 후손이 번창하고 현달한 내용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특히 후손들이 2백여명이..

청풍김씨묘문 의왕시 왕림, 김인백 묘 및 묘갈, 백운사

청풍김씨묘문 의왕시 왕림 김인백 선생 묘 및 묘갈과 백운사 현재 의왕시 왕림에 터를 잡은 청풍김씨 김우증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김우증의 계자인 김계(처 순흥 안씨)이다. 왕림에서 후손이 크게 번창하고 현달하게된 장본인이다. 김인백(金仁伯, 1561~1617)은 위로 김충백, 김효백 두 형과 막내 동생 예백이 있다. 현령을 지낸 권대훈의 여식 안동 권씨(찬성 오겸의 외손녀)와 슬하에 장남 김익려, 차남 김극부, 막내 김극형을 두었다. 이중 김극형의 가계에서 아들 셋과 그 후손이 현달했다. 바로 손자 전라관찰사 김징과 그 아들 우의정 김구, 대제학 김유, 목사 김무로 그 아래 후손들이 번창했는데, 화성시 우정읍 쌍봉산에 있던 영의정 김상로도 김인백의 현손이다.(김유의 막내아들) 이렇게 그의 자손이 잘된 것을 ..

청풍김씨묘문 의왕시 왕림, 김정로, 김취로, 김약로, 김상로 선생 묘 등

청풍김씨묘문 의왕시 왕림 김정로, 김취로, 김약로, 김상로 선생 묘 등(대제학 김유 묘역) 경기도 의왕시 왕곡동 왕림은 정국공신 김우증이 사패하여 청풍김씨 판서공파의 오랜 선영이자 세거지이다. 이러한 역사성을 바탕으로 영조대 영의정을 역임한 김치인은 '청풍김시묘문비'를 세웠다. 그곳에 김치인에게는 재종조부가 되는 대제학 김유 묘역이 있다. 이러한 김유 묘역에 2017년 6월 13일부터 8월 13일까지 김유 묘 단장 및 묘하에 후손 이장이 이루어졌다. 과천에 있던 김약로의 묘가 오래되면서 선산이 타인에게 넘어갔고 이를 소유한 사람이 무덤이장 요청하고 그 비용을 충당하기로 하면서 대역사가 이루어진다. 김약로의 묘는 물론 김유의 장자 김정로 무덤과 아울러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조암리 쌍봉산록에 있던 차남 김취..

청풍김씨묘문 의왕시 왕림, 김유 선생 묘 및 신도비

청풍김씨묘문 의왕시 왕림 김유 선생 묘 및 신도비(김유 선생 묘역) 경기도 의왕시 왕곡동의 왕림마을은 숙,영,정조시기 세도가였던 청풍김씨 판서공파의 사패지로 입향조인 정국공신 김우증과 후손의 묘역과 세거지가 있는 곳이다. 2020년 1월 6일 월요일 눈과 비가 내리는 가운데 답사를 하였다. 1번 국도를 따라 의왕시 고천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고천동주민센터를 지나 과천봉담간 고속도로 아래 마을 초입에 들어서면 먼저 보이는 것이 왕림마을 비석이고 그 뒷편으로 '청풍김씨묘문'이라고 쓴 비석이 나온다. 청풍김씨묘문비기문비 1751년 정조대 영의정을 역임한 김치인이 국서체인 한호의 석봉체를 집자하여 건립한 것으로 1991년 4월 세운 기문비(규택[奎澤] 지음)에 따르면 원래 동입구 복전동(卜前洞) 초입에 세웠는데,..

하계 김상로 선생 묘 옛터

하계 김상로 선생 묘 옛터(화성시 우정읍 조암리 쌍봉산 아래) 화성시 우정읍과 장안면은 예부터 하나의 역사와 사회경제적 공동체를 이루어온 곳이다. 마한 상외국, 백제 6포, 고려 쌍부현, 조선 쌍창과 삼괴칠면 등 수원시의 전근대 행정구역인 수주와 수원부에 속하여 독립적인 역사와 문화를 이룬 수원 남부지역의 중심된 곳이다, 이곳이 정식 역사기록으로서 흥미로운 사실을 전하는 것은 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이다. 지역의 자연지리적 특징인 두 언덕을 말하는 쌍부라는 지명과 관련하여 조선시대 역사 인물과 관련된 이야기인데 그 인물이 바로 청풍김씨 하계 김상로(하계 김상로(霞溪,金尙魯, 1702 ~ 1766년 12월 29일)이다. 김상로는 당대 노론의 영수이자 사도세자의 비행을 들어 영조가 사사하는데, 큰 역할을 하여 ..

김연방 애국지사 유허지

화성3.1운동 만세길 답사 김연방 애국지사 유허지 순절지사 김연방은 1881년 7월 21일 수원부 압정면 일원리(현재의 화성시 우정읍 화산5리)에서 출생하였다. 일원리는 조선 정조대 두각을 나타낸 무반가문인 해풍김씨 남양쌍부파의 집성촌이다. 김연방 지사의 5대조는 무반으로 포도대장을 역임한 김영 장군으로 그 역시 무반인 선전관의 갑오개혁 이후의 벼슬인 대한제국 시종원 시정분시경(시어)이 되어 광무황제(고종)를 보좌하였다. 그러나 1905년 '을사늑약'으로 낙향하여 삼괴지역 일원동(수원군 우정면 화산리)에서 99칸 종가를 지켰다. 그 뒤 1919년 3.1운동이 확산되면서 4월 3일 수원군 우정.장안면의 3.1운동에 참여하여 만세운동을 독려하고 민족독립을 염원하였다. 4월 13일, 발안리에서 정미소를 운영하..

명안공주 이온희, 해창위 오태주 묘역

명안공주 이온희, 해창위 오태주 묘역 1687년 5월 16일 숙종은 하얗게 소복을 차려 있고 머리를 풀고 곡을 하였다. 동생 명안공주 이온희가 죽었기 때문이다. 현종이 딸 명안공주의 이름을 ‘온희’라 짓고 직접 쓴 뒤 수결(사인)한 ‘명안공주 작명단자’. 출처 :경향신문, 성종의 태항아리 유물 5점은 왜 90년간 흩어졌을까 2018.6.2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6262109015&code=960201 명안 공주(明安公主)가 졸(卒)하였다. 임금이 소복(素服)차림으로 거애(擧哀)하고, 이어 전교(傳敎)하기를, "몹시 슬프고 애통스러워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예장(禮葬) 이외에 비단과 쌀·무명 등의 물건을 숙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