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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시립박물관

바닷바람이 스며든 골목마다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다. 삼도수군통제영의 영광에서 일제강점기의 상흔, 신시가지의 흥망성쇠까지, 통영 원도심은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고스란히 품어왔다. 한때 가장 번성했던 거리는 세월과 함께 빛을 잃었지만, 이제 다시 그 기억을 불러내고 있다.[기획보도] 통영근대역사문화공간, 통영의 시간을 걷다(통영시 보도자료 2025.11.26.) 통영시립박물관은 옛 통영군청(舊統營郡廳)이다. 일제강점기인 1943년 건립된 근대문화유산으로 지방군청소재지 청사로서 번듯하게 잘 지은 건축물이다. 일제가 경성은 물론 남도 끝 통영의 관청 건물까지도 심혈을 기울여 만들고 있는 것을 보면 이들이 우리를 천년만년 지배하려고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친일문학론』(1966, 평화출판사)의 저자 임종국의..

삼도수군통제영 역사관

통제영은 처음에는 한산도에 있었는데 곧 오른쪽에 치우쳐 있어서 왼쪽에서는 멀었다. 중간에 고성으로 옮겼더니 곧 배를 모아두기에는 마땅하였지만 갑작스러운 변에 대처하기에는 불편하였다.뒤이어 통제사로 오는 이들이 옛것을 따르는 데에만 익숙하여 능히 고쳐서 옮기지 못하였는데, 공(이경준)이 통제사가 되면서 개연히 통제영을 옮기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여기고 지형을 살피고 헤아려서 통제영을 두룡으로 옮겼다. 서쪽으로는 굴포에 기대고, 동쪽으로는 견내량이 버티며, 남쪽으로는 큰 바다와 통하고, 북쪽으로는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깊긴 하지만 구석지지 않고 얕긴 하지만 드러나지 않으니 참으로 수륙을 겸한 지형이며 관방의 요해처이다. 동쪽과 남쪽, 서쪽의 적들이 이곳을 지나지 못하여 횡행하지 않으니 바다다 잠잠해져 놀라..

통영성지 동서피랑 북포루 한산대첩지

이달 22일 뜸을 뜨는 데에 입시하였을 때 부제조 유상운(柳尙運)이 아뢰기를"신이 일찍이 경상도사로 있을 때에 통영(統營)을 왕래하였는데 통영은 고성현(固城縣)에서 40리나 먼 곳에 있습니다. 그 때에도 이미 성곽을 쌓자는 의논이 있었는데 들으니 그 뒤에 영(營)을 둘러서 성을 쌓았다고 하니 대체로 허다한 군량, 병기와 몇백호의 백성이 영하(營下)에 있기 때문입니다. 또 성을 쌓을 뒤에 수성절목(守城節目)을 미리 강구해 두지 않으면 이 역시 허술하게 될 것입니다. 통영은 먼 해변에 있는데도 반드시 문관으로 지방관을 차출하여 보낸 것은 진압을 위해서 그런 것이었는데 사람 얻기가 쉽지 않아 지금은 피폐한 고을이 되었습니다. 지금이라도 각별히 가려 보내서 평상시에는 성곽을 관리 수리하게 하고 수군이 바다로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