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安胎)하는 제도는 고례(古禮)에는 보이지 않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반드시 들판 가운데의 둥근 봉우리를 선택하여 그 위에다가 태를 묻어 보관하고 태봉(胎峰)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곳에 표식을 하여 농사를 짓거나 나무를 하는 것을 금지하기를 원릉(園陵)의 제도와 같이 하였다. 성상에서부터 왕자와 공주에 이르기까지 모두 태봉이 있었으니, 이러한 우리 나라 풍속의 폐단에 대해서 식견있는 자들은 병통으로 여겼다.(安胎之制, 不見於古禮, 而國制必擇野中圓峰, 藏胎於其上, 謂之胎峰, 封植禁耕柴, 如園陵之制。 自上躬以至王子、公主, 皆有胎峰。 國俗之弊, 識者病之。)현종개수실록 권22, 현종 11년(1670) 3월 19일 병자 안태사 민점이 태봉으로 잠식된 농지를 보상하기를 청하다서산(瑞山)을 포함한 가야산 주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