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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수군통제영 역사관

통제영은 처음에는 한산도에 있었는데 곧 오른쪽에 치우쳐 있어서 왼쪽에서는 멀었다. 중간에 고성으로 옮겼더니 곧 배를 모아두기에는 마땅하였지만 갑작스러운 변에 대처하기에는 불편하였다.뒤이어 통제사로 오는 이들이 옛것을 따르는 데에만 익숙하여 능히 고쳐서 옮기지 못하였는데, 공(이경준)이 통제사가 되면서 개연히 통제영을 옮기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여기고 지형을 살피고 헤아려서 통제영을 두룡으로 옮겼다. 서쪽으로는 굴포에 기대고, 동쪽으로는 견내량이 버티며, 남쪽으로는 큰 바다와 통하고, 북쪽으로는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깊긴 하지만 구석지지 않고 얕긴 하지만 드러나지 않으니 참으로 수륙을 겸한 지형이며 관방의 요해처이다. 동쪽과 남쪽, 서쪽의 적들이 이곳을 지나지 못하여 횡행하지 않으니 바다다 잠잠해져 놀라..

통영성지 동서피랑 북포루 한산대첩지

이달 22일 뜸을 뜨는 데에 입시하였을 때 부제조 유상운(柳尙運)이 아뢰기를"신이 일찍이 경상도사로 있을 때에 통영(統營)을 왕래하였는데 통영은 고성현(固城縣)에서 40리나 먼 곳에 있습니다. 그 때에도 이미 성곽을 쌓자는 의논이 있었는데 들으니 그 뒤에 영(營)을 둘러서 성을 쌓았다고 하니 대체로 허다한 군량, 병기와 몇백호의 백성이 영하(營下)에 있기 때문입니다. 또 성을 쌓을 뒤에 수성절목(守城節目)을 미리 강구해 두지 않으면 이 역시 허술하게 될 것입니다. 통영은 먼 해변에 있는데도 반드시 문관으로 지방관을 차출하여 보낸 것은 진압을 위해서 그런 것이었는데 사람 얻기가 쉽지 않아 지금은 피폐한 고을이 되었습니다. 지금이라도 각별히 가려 보내서 평상시에는 성곽을 관리 수리하게 하고 수군이 바다로 나..

통영 충렬사

남쪽 바다를 헤아리건대 請量南溟천자의 은혜가 가득하니 帝恩盈盈작은 티끌도 움직이지 않고 纖塵不動전함이 절로 종횡하였네 戰艦自橫누가 천위에 의지하여 孰仗天威길이 동토를 안정되게 하였던가 永奠東土시기에 응하여 나온 이로 膺期而出충무공이 있었다네 曰有忠武옛날 왜적이 돌연히 침범함에 昔者豕突여러 군읍이 와해되자 列郡解瓦눈물을 뿌리고 노를 쳤으니 灑涕擊楫경은 당시의 사아였네 卿時士雅한 번 북을 울려 적장을 쓰러뜨림에 一鼓殲酋하례하는 술을 장차 거르려 했는데 賀酒將釃단거가 와서 대신하니 單車來代경은 당시의 망저군(望諸君)이었네 卿時望諸불탄 나머지를 수습하고 상처를 싸매고 拾燼裹創다시 회절을 어루만져 再按淮浙성벽에 광채가 더해지니 壁壘增彩경은 당시의 이광필이었네 卿時光弼종거가 바뀌지 않았기에 鐘簴不改남녀 백성들이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