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13

아산 이충무공 묘

나는 군인이기에 죽음으로 충성한 것이요 야인이었다면 밭갈이를 하며 충성했을 것이다.-KBS 역사스페셜-시간여행자> 12회 ‘누가 장군을 쏘았나’ 이순신 대사원 출처 :장부로 세상에 나서 쓰이면 죽을힘을 다해 충성할 것이요, 쓰이지 못하면 밭갈이로 살아도 또한 족한 것이니, 권세 있는 자에게 아첨해 뜬 영화를 탐내는 것은 내가 부끄러워하는 바라.(丈夫生世 用則效死以忠 不用則耕野足矣 若媚要人竊浮榮 吾恥也-『충무공가승(忠武公家乘)』 권2, 행장(行狀) 최유해(崔有海) 서. 아산 현충사는 참 인연이 없었다. 갈 수 있는 기회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많았다. 국민학교 때 소풍이나 수학여행으로 가곤 했었는데 내 차례가 되니 없어지고 그렇게 중고를 거쳐 학부, 나이를 먹기까지 마음 속에만 그리고 있었지 번번히 갈 수 ..

조선왕릉 동구릉 건원릉 현릉 수릉 선릉 정릉 사릉

조선 왕조의 중심 선산, 왕릉원이 구리 동구릉이다.동구릉에는 왕조 개창자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부터 일곱 명의 왕과 왕비, 계비 열 분이 모셔져 있다. 모든 왕릉을 찾아 볼 수는 없었고 함흥의 흙과 억새를 봉분에 올려 고향을 대신케 했다는 건원릉과 문종과 현덕왕후의 현릉, 그리고 문조로 추존된 효명세자와 신정왕후 의 수릉을 살폈다.보통의 왕릉은 홍살문을 들어서면 옆으로 굽어진 향어로를 따라 정면의 정자각에 서면 뒤편으로 작은 언덕인 강(岡) 위에 곡장을 두른 능상이 있다. 능상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두른 봉분을 문석인, 무석인, 석마, 석양, 석호 등과 장명등, 망주석, 혼유석 등으로 꾸며진다.조선 시대에는 한양을 벗어난 성저십리 밖이었지만 지금은 강남 노른자위의 어쩌면 조선 왕릉 능침 중 가장 비싼 곳이 ..

북궐 경복궁

궁원(宮苑)의 제도는 사치하면 반드시 백성을 힘들게 하고 재물을 잃는다. 너무 누추하면 조정의 존엄을 보일 수 없다.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아름다우나 사치스럽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미(美)이다. 검소한 것은 덕과 같고, 사치스러운 것은 악(惡) 중에서도 큰 것이다. 사치스러운 것보다는 검소한 것이 낫다.(宮苑之制, 侈則必至勞民傷財. 陋則無以示尊嚴於朝廷也. 儉而不至於陋, 麗而不至於侈, 斯爲美矣. 然儉 德之共也, 侈 惡之大也. 與其侈也 寧儉.)'조선경국전' 궁원, 정도전'하늘이 내린 큰 복''경복(景福)'이다. 경복궁은 조선의 법궁이다. 이성계가 조선을 개창하고 한양 천도를 하면서 지은 최초의 궁궐이다. 조선을 대표하는 곳이나 조선의 영화보다는 역사의 비운이 점철된 곳이다. 조선을 만든 정도전은 조선..

최명길 선생 묘 및 신도비

지천(遲川) 최명길 선생은 영화 '남한산성'(2017)에서 이병헌 배우가 열연한 조선의 명재상이다. 2024년 9월 14일 묘소를 찾았다.최명길 선생의 묘와 신도비는 선생이 1647년 졸하자 청주 대율리('대뱀이', 현 대율1리)에 장사지내고 이후 현달한 손자 최석정, 최석항, 증손 최창대의 노력으로 1702년 묘표와 신도비를 세웠다. ​최명길 선생의 묘표는 여느 조선의 사대부와 달리 '유명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조선'만을 쓰고 있다. 명이 망하고 조선의 사대부가 조선을 소중화라는 의식하에 명이 망했지만 여전히 조선은 명을 잇는다는 생각으로 사대를 표방한 것과 달리 최명길 선생의 묘표는 '조선상국'이라고 단촐하게 적고 있다.​'조선상국증시문충 지천최공명길지묘'영의정의령남구만서​ 이는 대명의리 존승을 놔..

소다미술관, 만년제, 안녕리 표석

소다미술관, 만년제 화성에서 자랐지만 종종 화성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처럼 말이다. 6월 17일 화성시 안녕동 소다미술관을 찾았다. 소다미술관은 유명한 곳이었다. ‘인스타 미술관’, ‘하이브리드 미술관’ 등 으로 이야기되는 유명세가 있는 곳인데 지금껏 모르고 살았다. 이곳 장동선 관장은 사립미술관이지만 하루평균 주말 4,5백, 평일 1,2백명이 찾고 있어 이렇게 모인 관람료를 총 운영비 절반을 감당한다고 하니 여느 미술관이나 박물관보다 운영조건이 매우 양호하다. 그런데 소다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이야기가 ‘주변에 즐길 거리가 없다. 볼게 없다.’ 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한다. 역사를 전공하여 이런 이야기를 듣노라면 본능적으로 '왜 없어 이렇게 많은데' 바로 옆 만년제니..

삼전도비

삼전도비(三田渡碑)  장유(張維)·이경전(李慶全)·조희일(趙希逸)·이경석(李景奭)에게 명하여 삼전도비(三田渡碑)의 글을 짓게 하였는데, 장유 등이 다 상소하여 사양하였으나, 상이 따르지 않았다. 세 신하가 마지못하여 다 지어 바쳤는데 조희일은 고의로 글을 거칠게 만들어 채용되지 않기를 바랐고 이경전은 병 때문에 짓지 못하였으므로, 마침내 이경석의 글을 썼다.(己丑/命張維、李慶全、趙希逸、李景奭, 撰三田渡碑文。 維等皆上疏辭之, 上不從。 三臣不得已皆製進, 而希逸故澁其辭, 冀不中用, 李慶全病不製, 卒用景奭之文)-인조실록 35권, 인조 15년(1637) 11월 25일 기축 1번째기사   이 기록은 삼전도비를 세우기 위해 삼전도비문 혹은 송로 문자(頌虜文字)로 불리는 것을 지은 기사이다. 삼전도비의 정식 명칭은 삼..

녹두꽃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간다"-'가보세요'(참요[讖謠])*동학농민혁명을 전후하여 불려진 가사로 가보세는 1894년 갑오년을 을미적은 1895년 을미년을 병신은 1896년 병신년을 말한다. 이 민요는 동학농민혁명 자체를 예언했다든지 병신년에 이르러 거사가 실패하리라는 것을 예언한 참요라고 한다. 사발통문...이때 도인(道人)들은 선후책(先後策)을 토의 결정하기 위하여 고부 서부면 죽산리 송두호의 집에 도소를 정하고 매일 운집하여 순서를 결정하니 그 결의된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고부성을 격파하고 군수 조병갑을 효수할 것 1. 군기창과 화약고를 점령할 것 1. 군수에게 아첨하여 인민의 것을 빼앗은 탐리(貪吏)를 공격하여 징계할 것 1. 전주영을 함락하고 경사(서울)로 바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