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샘의 역사나들이(답사) 272

영월 청령포 장릉

전날 성삼문(成三問) 등이 말하기를, 상왕(上王)645) 도 그 모의(謀議)에 참여하였다.’ 하였으므로, 종친과 백관들이 합사(合辭)646) 하여 말하기를, ‘상왕(上王)도 종사(宗社)에 죄를 지었으니, 편안히 서울에 거주(居住)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달 동안 청하여 마지 않았으나, 내가 진실로 윤허(允許)하지 아니하고 처음에 먹은 마음을 지키려고 하였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심(人心)이 안정되지 아니하고 계속 잇달아 난(亂)을 선동하는 무리가 그치지 않으니, 내가 어찌 사사로운 은의(恩誼)로써 나라의 큰 법을 굽혀 하늘의 명(命)과 종사(宗社)의 중(重)함을 돌아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에 특별히 여러 사람의 의논을 따라 〈상왕(上王)〉을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降封)하고 궁에..

함양 연암물레방아공원 일두고택 동호정 용추사

경상남도 함양에는 유서깊은 문화유산이 즐비하다. 지리산 자락에 위치하여 수려한 자연환경에 기댄 정자도 유명한데 동호정이 그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함양이라고 하지만 조선시대 안의현이 별도로 존재하였는데 이곳이 주목되는 것은 바로 정조가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 1737~1805)을 현감으로 보낸 것이다. 젊은 시절 친우의 억울한 죽음으로 과거의 뜻을 접고 백탑파라고 불릴 정도로 백탑, 원각사지십층석탑 주변에서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등 서얼 친우들과 신분을 넘어 학문을 탐독하였다. 그것이 바로 변화하는 세계사적 조류를 읽었던 것이고 이들의 학문 경향을 과거 중상학파라고 하였지만 정확히는 이용후생학파라고 한다. 조선 후기 새로운 학문적 경향 중에 근현대 사회변혁에 가장 가까운 학문적 경향이다.그런 박지원..

충주 탄금대 그리고 문경새재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오는 왜군의 속도는 조선이 방어를 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그냥 평범한 속보처럼 들이닥쳤다. 그런 전쟁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조선군 최고의 장군인 신립이 새도 넘기 힘들다는 조령 방어진을 치지 않고 충주 탄금대에 배수진을 친 것이다. 그 결과 기마병의 편전을 통한 기동전을 예상했던 신립은 고니시 유키나가군의 조총부대 앞에 여지 없이 무너진다. 이날의 패배는 선조가 한양 도성을 버리는 것은 물론 압록강을 건너 명에 넘어가려고 할 정도로 절체절명의 위기가 되었다.임진왜란 최대 격전지였지만 사실 탄금대는 대가야 출신 신라 악성 우륵이 진흥왕 앞에서 가야금을 연주한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고령 대가야에 살던 우륵은 왜 조령을 넘은 것인가 조령은 경상북도 ..

합천 해인사 고령 지산동고분군 장기리 암각화

합천 해인사(陜川 海印寺)는 대몽항쟁기 불심으로 국난을 극복하고자 했던 고려인들의 호국정신을 담은 고려대장경, 즉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사찰로 유명하다. 산중 높은 곳에 위치하는 해인사는 사찰 가람 자체로도 훌륭한 산중사찰이며 규모도 커서 장중함이 있는 우리나라 대표 가람이다. 기록유산으로 훌륭한 대장경판은 해인사 장경판전에 보관되어져 있는데 이 시설은 공기흐름을 이용한 과학적 설계가 돗보이는 건축물로 아무 곳에나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특별하다. 조상들의 슬기가 깃든 곳이라 그 자체로도 경외감이 든다. 누가 보더라도 부처를 모신 대웅전 같은 숭배의 공간은 아니나 그 자체로 느껴지는 위엄, 장중함 그 자체이다.이웃한 고령은 대가야의 중심지다. 구지봉 신화가 말해주듯 가야의 지배층은 하늘에 닿아있..

김해 금관가야

가락국기(駕洛國記)문종대(文宗代) 대강(大康) 연간에 금관(金官) 지주사(知州事)의 문인(文人)이 지은 것으로 이제 그것을 줄여서 싣는다. 개벽 이후로 이곳에는 아직 나라의 이름이 없었고 또한 군신(君臣)의 칭호도 없었다. 이때에 아도간(我刀干)·여도간(汝刀干)·피도간(彼刀干)·오도간(五刀干)·유수간(留水干)·유천간(留天干)·신천간(神天干)·오천간(五天干)·신귀간(神鬼干) 등 아홉 간(干)註 478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이는 추장(酋長)으로 백성들을 통솔했으니 모두 100호註 479, 7만 5,000명이었다. 대부분은 산과 들에 스스로 모여서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고 밭을 갈아 곡식을 먹었다.후한(後漢)의 세조(世祖) 광무제(光武帝) 건무(建武)註 481 18년 임인 3월 계욕일(禊浴日)註 482에 살고 ..

충주 고구려비(중원고구려비)

중원 고구려비로 알려진 충주 고구려비이다. 현재 알려진 고구려비는 단 3기에 불과하고 그중 지역적으로 한반도 중남부에 위치하는 유일한 고구려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일무이한 고구려 유산으로 단비와 같은 것이 바로 중원 고구려비, 충주 고구려비이다.이렇게 중요한 유산인데 한 번도 그 존재 자체가 알려지지 않은 미스터리한 유산이다. 금석문의 대가 추사 김정희도 몰랐을 정도니까 너무 아쉬운 대목이다. 이른 시기 더 빨리 알려져 더 많은 비문의 글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면 우리 고대사가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길이 열렸을 텐데 아쉽다. 그래도 우리 역사의 큰 선물이다.국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구려 석비로, 장수왕이 남한강 유역의 여러 성을 공략하여 개척한 후 세운 기념비로 추정된다. 1979년 입석..

대전 지질박물관 화폐박물관 시민천문대

한반도의 중심 대전은 교통의 중심으로 발전하여 대한민국 최첨단 산업의 중심이기도 하다. 대덕연구단지와 카이스트가 위치한 것이 좋은 예이다. 1993년 대전과학엑스포는 이러한 대전의 변화상을 잘 보여준 행사였다. 지금도 대전시 유성구의 대덕연구단지에서는 우리나라 최고의 과학자들이 연구를 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시설을 일반이들이 관람이 자유로울 수 없지만 그래도 몇몇 기관에서는 전시관을 운영중이다. 게다가 무료이다. 특히 아이들과 방문하면 좋은 곳이 바로 대전지질박물관과 화폐박물관이다. 인근에 대전시민천문대도 있으니 두루 관람하면 좋다. 화폐박물관 대전시민천문대 과천과학관 흥천산봉수(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화산리)

영흥화력발전소

영흥도에 대단위 화력발전소이다. 석탄발전이 중심이지만 친환경 에너지인 풍력발전 등 미래의 청정 에너지 개발에도 노력하고 있다. 이곳에 발전소가 들어선 것은 2004년에 1,2기가 준공되어 가동되었다. 2014년에 6호기까지 준공 완료하였다. 앞으로 인공태양으로 불리는 핵융합발전이 상용화되면 이곳도 빠르게 변화할 것이다. 2012.2.22.

통영 세병관

경상남도 통영(統營)은 이순신 장군이 최초 삼도수군통제사로 있었던 ‘통제영(統制營)’에서 유래한다. 따라서 통영의 또 다른 이름인 충무는 이순신 장군의 시호‘충무공(忠武公)’에서 따온 것이다.통영은 임진왜란 당시 그 앞바다가 학익진으로 유명한 한산대첩의 현장이다. 작은 어촌이 변화한 것은 1604년 삼도수군통제영이 이곳으로 옮겨온 후 군사요충지로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제6대 삼도수군통제사 이경준은 1603년 작은 포구인 두룡포에서 터를 닦고 1605년 통제영 세병관(洗兵館)을 지으면서 통영이 갖춰지기 시작됐다. 이 세병관의 정식명칭은 통영세병관이다.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설치했던 중심 건물로 궐패(闕牌)를 모시고 출전하는 군사들이 출사(出師) 의식을 행하던 곳이다. 앞면 9칸, 옆면 6칸의 단층..

역사의 섬 강화도

매번 답사를 떠나지만 나에게는 특별히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고의 문제는 없다. 다만 오늘 찾아가는 강화도는 나 아닌 많은 사람들도 강화도 하면 참성단(塹星壇), 삼별초(三別抄), 외규장각(奎章閣) 등 생각나는 것이 있을 정도로 우리와 매우 친숙한 곳이며 오늘이라는 시간이 다시 오지 못할 소중한 오늘이라면 오늘의 답사 역시 특별하고도 소중한 시간이다. 강화도(江華島)는 참 재밌는 섬이다. 섬이지만 섬이 아닌 섬... 섬은 하천이나 바다라는 자연적인 경계로 뭍(육지)과 구별되어 왠지 멀리 있고 변방이자, 구석지고 외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강화도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하고 가깝게 느껴지는 섬 아닌 섬이다. 특히 강화도는 여느 섬과 다르게 상고시대부터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