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샘의 역사나들이(답사) 309

과거의 그늘과 현재의 연해주1(우수리스크)

연해주는 한반도의 두만강 건너 넓은 지역을 이르는 말이다. 연해주는 현재는 러시아의 영토에 포함되어 우리의 역사에서 우리의 관심에서 벗어난 매우 이질적이고 이국적인 곳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말한다. "연해주는 비행기로 2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아주 가까운 거리지만 그보다도 훨씬 마음의 거리가 있다." - 동북아평화연대 김승력 연해주지국장 - 연해주를 찾은 것은 대안학교인 마리학교 성장기(고등과정) 길잡이 교사로 해외이동수업을 진행하면서이다. 이동수업의 주 내용은 '러시아 연해주 고려인 마을 자원활동'이었다. 사실 자원활동을 주로 하고 그 외에 특별 프로그램으로 지역탐방을 고려하였으나 역사를 공부하고 역사적 지식에 목마른 나는 연해주의 역사와 연해주의 오늘이 더욱 잡아당겼다. 2010년 6월 14일부터 26..

마리 강화나들길 '산길따라 뚝방 길따라'

역사의 고장 강화에서 농촌, 산촌, 어촌이 어울린 자연경관을 보고 느끼는 '마리 강화나들길' '마리 강화나들길'은 제주도의 올레길, 지리산의 둘레길이 있다면 우리 강화에는 나들길이 있다. 나들길의 유래는 강화군 불은면 두두미 마을에 살던 화남 고재형 선생이 구한말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이고 자신이 살던 강화에 물밀듯 밀려드는 서구문화에 위기감을 느끼던 차에 강화의 전통과 역사를 지키고자 강화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살피고 시를 남겼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화남 선생이 걸었던 그 길을 오늘 강화 관광개발사업소가 개발하고 강화시민연대(시민단체)가 함께 강화의 문화적 자산으로 나들길을 보급하고 있다. 우리 마리학교에서는 마리학교를 중심으로 강화도의 역사. 문화, 그리고 농, 산, 어촌의 어울림이 있는 환경..

우리 역사와 함께한 강화도 2 (9월 청우역사탐험대)

성공회 강화성당을 나와 언덕을 내려가다가 왼편 골목으로 접어들면 용흥궁(龍興宮)이 나온다. 용흥궁은 이곳과 인연이 깊은 왕의 옛 사저로 '강화도령'이라 불리던 순박한 농사꾼이던 원범의 집이다. 그 원범이 바로 조선 제25대 왕 철종(1831년생. 재위 1849-1863)이다. 강화도행렬도(1849. 6. 24) 12폭의 병풍. 강화도령 원범을 맞아 국왕으로 옹립하려는 역사기록화 철종은 정조의 아우 은언군(恩彦君)의 손자로 전계대원군 광(全溪大院君饍)의 셋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용성부대부인(龍城府大夫人) 염씨(廉氏)이다. 당시 영조의 혈손으로는 제24대 국왕 헌종과 원범 두 사람뿐으로1849년 6월 6일 헌종이 후사 없이 죽자 대왕대비 순원왕후(純元王后 : 純祖妃, 金祖淳의 딸)의 명으로 정조의 ..

8월 화성청우회 역사탐험대 경주 나들이 3

감은사지3층석탑을 동쪽에서 서쪽의 경주 방향으로 본 모습이다. 황량한 절터에 단아한 석탑의 위용이 영광에 시간을 뒤로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바라다 보이는 저 멀리 보이는 산이 토함산이다. 경주 보문호를 지나 추령고개를 내려오면 대왕암이 있는 봉길해수욕장에 이른다. 산 아래로 작은 천이 시작되는데 토함산에서 발원하여 함월산 기림사 아래 천이 만나 동해에 이르는 '대종천(大鐘川)'이다. 이곳에서 나신 남옥순 선생님에 따르면 하천의 이름의 유래는 이렇다. "때는 고려 말기 몽골의 침략으로 황룡사와 황룡사지9층탑이 불타는 큰 재난이 있었는데 그때 몽골군이 황룡사에 걸려있던 황룡사대종을 가져가고자 이 하천을 이용하여 운반하였다. 그래서 '큰 종을 옮긴 하천이다'하여 '대종천'이라고 하였다. 몽..

8월 화성청우회 역사탐험대 경주 나들이 2

대릉원 후문부터 걸어서 월성(月城)으로 이동하였다. 서남쪽 문지(성문자리)를 통해 월성에 들어갈 수 있었다. 월성은 조선시대 이후 반달 모양이라 하여 반월성(半月城)을 불리기도 하며 신라시대에는 임금이 산다하여 재성(在城)이라고 하였다. 월성에 관련한 설화로 석탈해가 꾀를 내어 월성을 호공에게서 빼앗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초기 월성은 101년 파사이사금이 경주 동남쪽 성을 쌓아 그 길이 무려 1,023보에 달했으며 재성(在城)이라고 하였다. 이후 475년 자비마립간에서 소지마립간 시기인 487년을 제외하고 줄곧 신라의 궁궐이었으며 초기 도성으로 출발한 월성은 점차 국가 규모가 커지면서 궁성으로서 면모를 갖추었다. 따라서 월성 앞 뜰에는 월성에 위치했던 많은 관청이 이전하고 월성 안에는 많은 궁궐이 지..

7월 청우역사탐방-백제 흥망의 역사의 현장 부여, 공주를 가다

2009년 7월 11일 백제의 옛수도 공주(웅진), 부여(사비)를 갔다. 대략적인 일정은 오전 8시 조암 기산약국 앞에서 출발하여 10시 20분경 부여 부소산성에 도착하여 삼충사 - 부소산성 및 건물터와 저장구덩이 - 반월루 - 낙화암 - 고란사 - 나룻터와 조룡대 - 구드래 나룻터 - 구드레 쌈밥집 점심 - 부여 정림사지 - 부여 국립 박물관 - 공주 송산리 고분군(무령왕릉)을 끝으로 오후 4시 30분 공주를 출발하여 조암에 6시에 도착, 하루 탐방을 마쳤다. 백제는 기원전 마한 54개국 중 하나인 십제라는 나라로 지금의 한강 이남의 위례성(몽촌, 풍납토성)에서 시작된 나라로 서기 660년 나당연합군(신라와 당나라)에게 멸망 하기까지 우리나라 고대사에 한 축으로 삼국시대 당당히 역사와 문화를 이뤘던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