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43

용인 채제공 선생 묘 및 어제뇌문비

채상(蔡相)이 세상을 떠났으니 허무한 사람이라 할 만하다. 근래에는 풍속이 야박하여 남인이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을 가지고 배꼽 잡는 웃음거리로 삼는다고 한다. 저 대신은 유독 남인이 아니란 말인가? 마치 안개 속 앉아 있는 것 같아 어떻게 해야 인재를 보충하여 조정을 더욱 튼튼히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어찌 밤마다 방을 맴돌며 근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 429. 1799.1.18. 수원화성박물관, 2011, 『정조의 비밀 어찰 정조가 그의 시대를 말하다』, 290쪽.1799년 1월 18일, 번암 채제공(樊巖 蔡濟恭, 1720~1799)이 졸(卒)하였다. 향년 80이었다.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장수하였다. 남인의 영수로 노론(시, 벽파)과 정국을 주도하던 그가 죽으니 정..

아산 이충무공 묘

나는 군인이기에 죽음으로 충성한 것이요 야인이었다면 밭갈이를 하며 충성했을 것이다.-KBS 역사스페셜-시간여행자> 12회 ‘누가 장군을 쏘았나’ 이순신 대사원 출처 :장부로 세상에 나서 쓰이면 죽을힘을 다해 충성할 것이요, 쓰이지 못하면 밭갈이로 살아도 또한 족한 것이니, 권세 있는 자에게 아첨해 뜬 영화를 탐내는 것은 내가 부끄러워하는 바라.(丈夫生世 用則效死以忠 不用則耕野足矣 若媚要人竊浮榮 吾恥也-『충무공가승(忠武公家乘)』 권2, 행장(行狀) 최유해(崔有海) 서. 아산 현충사는 참 인연이 없었다. 갈 수 있는 기회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많았다. 국민학교 때 소풍이나 수학여행으로 가곤 했었는데 내 차례가 되니 없어지고 그렇게 중고를 거쳐 학부, 나이를 먹기까지 마음 속에만 그리고 있었지 번번히 갈 수 ..

팔달문

성이면서 치雉가없으면 이것은 쓸모 없는 성이요, 문에 옹성甕城이 없으면 또한 쓸모 없는 성이니, 치와 옹성은 하나도 빠뜨릴 수 없다. 혹 바라볼 때의 아름다움 때문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나, 지키는 데에도 도움 되는 바가 없지 않다. 대개 누첩樓堞의 웅장하고 미려함은 선인들의 적의 기세를 빼앗기 위한 방법이 되기에 충분한 것이다. 바로 소하蕭何(한 3걸로 고조를 도와 찬후가 됨)가 말한 ‘웅장하고 미려하지 않으면 무게나 위엄이 없다’ 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나는 장려함이 귀한 것이 아니라 견고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현안懸眼의 제도에 대해서 혹 말하기를 ‘벽돌이 아니면 안된다’ 고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벽돌이라야 현안을 조성할 수 있다고 한다면 돌로써도 안될까닭이 없는 것이다..

장성

장성에 가보지 않은 자는 사내 대장부라 할 수 없다.(不到长城非好汉)마오쩌둥(毛泽东)드넓은 중국, 장성 너머는 중국이 아니다. 중국의 딜레마이다. 그래서 지금도 장성을 확대하고 있다. 들리는 말로는 동으로는 우리나라 평양성까지 확장할 기세다. 만리장성은 중국에서는 쓰지 않는 말이다. 우리나라 고구려와 고려 때 천리장성이 있듯이 중국에는 그보다 훨씬 크고 긴 만리장성이 있다는 인식이나 만리장성이라고 하지 않는다. 만리장성의 대표적 조망대는 예부터 사신들이 본 북경 인근 팔달령 구간이다. 진시황제 때 각 제국이 쌓은 장성을 연결한 것이 시초로 지금의 모습은 명나라 때 완비된 모습이다. 이후에는 청왕조가 몽골과 국혼을 맺어 동맹 관계에 있었기에 방어적 관방 시설과는 거리가 멀었다.팔달령 장성은 명대 이후 각국..

수원 화성행궁

정조의 즉위와 행행 조선 22대 왕 정조(1752~1800)는 이름은 祘. 자는 형운(亨運), 호는 홍재(弘齋). 영조의 둘째아들인 장헌세자(莊獻世子, 일명 思悼世子)와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으며, 비(妃)는 청원부원군(淸原府院君) 김시묵(金時默)의 딸 효의왕후(孝懿王后)이다. 1759년(영조35) 세손에 책봉되고 1762년 사도세자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자 요절한 영조의 맏아들 효장세자(孝章世子, 진종(眞宗))의 후사(後嗣)가 되어 왕통을 이었다. 1775년에 대리청정을 하다가 다음해 영조가 죽자 25세로 왕위에 올랐다. 생부인 사도세자가 당쟁에 희생되었듯이 정조 또한 세손으로 갖은 위험 속에서 즉위하여, 홍국영(洪國榮)을 이용해 즉위를 방해했던 정후겸(鄭厚謙)·홍인한(洪麟漢..

화성 야경

수원 도호부(水原都護府)본래 고구려의 매홀군(買忽郡)인데, 신라가 수성군(水城郡)으로 고쳤고, 고려 태조(太祖)가 남정(南征)할 때, 고을 사람 김칠(金七)·최승규(崔承珪) 등 2백여 사람이 귀순(歸順)하여 공을 세웠으므로 수주(水州)로 승격시켰으며, 성종(成宗) 14년 을미에 단련사(團練使)를 두었다가, 목종(穆宗) 8년 을사 【곧 송나라 진종(眞宗) 경덕(景德) 2년.】 에 이를 파하고, 현종(顯宗) 9년 무오에 다시 지수주사(知水州事)로 삼았다. 충경왕(忠敬王) 12년 신미 【곧 원나라 세조(世祖) 지원(至元) 8년.】 에 몽고 군사가 대부도(大部島)에 침입하여 백성을 노략질하니, 섬 사람들이 분함을 못 이겨 몽고 군사를 죽이고 반(叛)하매, 주관(州官) 안열(安悅)이 군사를 거느리고 이를 쳐서 평..

세계문화유산 화성

우리나라 성곽 문화의 정수인 수원화성의 탄생은 제22대 정조(1752탄생 재위1776-1800)가 아버지 사도세자(1735-1762)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한(恨)과 효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정조는 지리적으로 교통이 사방으로 통하는 위치에 있는 수원을 상업 활동이 활발한 경제 신도시로의 건설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자 한 것이기도 하였다. 화성을 축조하던 당시의 정치적 상황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역모로 몰아 죽이고 영조 즉위부터 조정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붕당 서인 노론이 집권하고 있었다. 영조 즉위 이래 강력한 왕권강화책으로 탕평책을 펼쳤으나 여전히 강력한 기득권을 누리던 노론은 자신들이 죽인 사도세자의 아들 세손 이성(李祘정조의 이름인 祘이 한자독음법에 따라 '산'으로 널리 읽히어 그간 정조..

화성 융건릉 용주사 수원고읍성

화성시 안녕리 존슨동산을 거쳐 용주사, 융건릉, 수원고읍성을 답사하였다. 낭세녕(郎世寧, 1688~1766)은 주세페 카스틸리오네(Giuseppe Castiglione)로 예수회 소속 선교사이다. 그는 청나라 건륭제의 어진을 그린 유명한 화가로 궁정화가로 있으면서 동양에 서양화법을 전수한 이로 알려져 있다. 김홍도가 정조의 명으로 청나라에 갔을 때 그의 화법을 보고 이를 적용한 작품이 용주사 후불탱화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사용된 화법은 먹의 농담을 이용한 원근감을 표현하여 입체적으로 그린 것(음영법 (陰影法)으로 이 시기 유일의 작품이다. 따라서 김홍도와 관련이 없고 후세 작품으로 주장되는 근거이기도 하다. 2011.11.26 2013.11.26 2009.4.2.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

도원수의 공로 성조 때에 많았는데 / 元師功多聖祖朝깃털 서글피 바라보니 하늘에 있네 / 羽毛悵望在雲霄사방에 적병이라 외로운 성 작기만 하고 / 四郊受敵孤城小천 리 밖 근왕병들 한 자루 칼도 아득하네 / 千里勤王一釖遙백면서생이 오히려 세 번 승전을 아뢰니 / 白面猶能三捷奏푸른 바다에 만 척 범선을 누가 염려하랴 / 蒼濤誰慮萬帆飄위엄과 명성이 양강 북쪽까지 떨쳤으니 / 威聲又振楊江北끝내 우리나라 적막하지 않게 하였네 / 終使東韓不寂寥신경준, 독산성에서 옛날을 추억하며〔禿山城懷古〕 고전번역서 여암유고 제1권 시 독산성은 경기도 오산시와 화성시와 경계를 이루는 봉우리에 위치한 백제 시대의 산성으로, 독성산성(禿城山城)이라고도 불린다. 독산성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분명하지는 않다. 원래 백제가 쌓은 성일 것으로 ..

수원향교 석전

1789년(정조 13) 정조가 융건릉이 위치한 화산 아래 구읍치를 지금의 화성행궁으로 옮기고 신읍치를 열며 유교의 제사와 교육을 받들던 수원향교도 팔달산 아래로 옮겼다. 군현의 격이 도호부에서 화성유수부로 승격한 이유로 수원향교는 화성향교이기도 하다.수원향교는 현륭원 천봉 과정에서 급히 서두른 탓으로 목재 대부분은 옛 건물 그대로 옮겨와 건물의 하부가 물에 잠기어 목재가 썩는 등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에 정조는 직접 대성전을 배알하고 화성 신도시의 격에 맞게 더 크고 장중한 대성전 건축을 명한다.(1795년, 정조 19) 군현의 격이 수원도호부에서 화성유수부로 승격하면서 향교 대성전을 이건 증축하면서 그 규모가 한양 문묘와 대도호부의 이상인 전주(부윤) 등과 같이 큰 규모로 지어졌다.(보물 지정 제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