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30

화성시 정조대 문인 이옥 유허 및 마산포 답사

답사 : 2018년 4월 30일 화성향토문화연구소 이경열, 백도근 안내 ·조선 후기 자유인 이옥 유허지(추정) 위치 :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지화리 217-1(이봉산 서길) 이옥(李鈺, 1760 ~ 1815)은 조선 후기 자유로운 문인으로 화성문화원에서 발굴 선양하고 있다. 이옥이 성균관 유생시절 정조에게 문체반정으로 과거가 막히고 여러번 군역에 보충되다 합천에 유배를 가는 등, 어려움을 겪고 외가가 있는 남양으로 낙향하여 은둔하며 말년을 보낸 곳이다. 이옥의 가계는 조부가 왕족의 서얼로 무관으로서 인조반전에 참여한 이후 부친이 진사를 지냈다.(화성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 정찬모 부소장 족보 발굴) 김려(金鑢,1766~1822)와 강이천(姜彛天, 1769 - 1801)과 교류하였다. 특히 김려의 『담정총서 ..

1797년 8월 행행과 정조사적 고찰

1797년 8월 행행(行幸)과 정조사적(正祖史蹟) 고찰(考察) -시흥지역을 중심으로- (안산객사-안산시 수암동 위치, 1797년 8월 행행 당시 정조가 유숙하였다.) 1797년 8월 행행은 조선 후기 진경문화를 바탕으로 문예부흥을 일으키고 세종 이후 학문군주라는 칭송과 함께 조선 시대 그 누구보다도 백성을 사랑한 애민군주 정조(正祖, 1752(영조 28)∼1800(정조24)) 의 행행으로 시흥지역(현재의 경기도 시흥시권역)에서는 그 숱한 일화를 행행을 통해 미담을 만들고 그 이야기들이 지역 면면히 전해지고 있다. 특히 정조의 행행은 ‘백성에게 행복을 주는(行幸)’ 것으로 백성의 어려움은 선왕 영조(英祖, 1694(숙종 20)∼1776(영조 52))보다 유연하고 개방적으로 정조가 친히 백성들에게 민원을 청..

쌍봉산록의 묻힌 김상로 역적인가? 1

역사는 승리자를 위한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조선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청풍 김씨 하계 김상로(霞溪,金尙魯, 1702 ~ 1766년 12월 29일)가 그에 해당하는 인물이 아닌가 한다. 2012년 4월 5일 하계 김상로의 무덤이 우정읍 멱우리 벌판에 있다는 단서만 가지고 찾아나섰다. '쌍봉산근처'라는 단서를 가지고 찾아나선 길이다. 한참을 이리저리 다니다. 정오가 되어 쌍봉산 서편에 해가 걸렸을 때 오래된 묘역이 눈에 들어왔다. "설마" 학부 때부터 찾아다녔던 하계 김상로의 무덤.. 드디어 찾았다. 마음이 벅찼고 하계에 대한 예의로 절을 올렸다. 영조에 총애를 받아 승승장구하며 영의정까지 오른 당대 최고 권신이었던 김상로는 사도세자를 죽인 원수라는 굴레가 씌워져 정조가 즉위하면서 이미 작고한 그에게 삭..

지역 향토사 - 흥천산 봉수

지역향토사 흥천산봉수(興天山烽燧) 위치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화산리와 장안면 사곡리 경계의 흥천산, 일명 봉화산(해발 61.3m) 총 6기의 봉대 중 제일 높고 큰 연대 첫 번째 제일 큰 연대를 시작으로 2, 3기의 연조 역사는 왠지 딱딱하고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 작은 관심을 기울이자 그러면 곳곳에서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 있을 것이다. 바로 향토사는 그런 것이다. 우정읍 화산리 활빈교회 두레자연중학교가 위치한 뒷동산을 봉화산(해발61.3m)이라고 한다. 왜 그럴까? 과거에 봉화를 올렸기 때문이다. 봉수(봉은 낮에 피우는 연기 봉연, 수는 밤에 불을 피우는 봉화를 이르는 말)는 낮에는 토끼나 늑대 똥을 태운 연기로, 밤에는 불을 피워 신호를 하는 고대부터 이용되었던 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