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리주저리(역사)

지역 향토사 - 흥천산 봉수

달이선생 2009. 4. 29. 19:30

지역향토사 흥천산봉수(興天山烽燧)

 

 

 

 

위치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화산리와 장안면 사곡리 경계의 흥천산,

일명 봉화산(해발 61.3m)

총 6기의 봉대 중 제일 높고 큰 연대

 

 

첫 번째 제일 큰 연대를 시작으로 2, 3기의 연조

 

  역사는 왠지 딱딱하고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 작은 관심을 기울이자 그러면 곳곳에서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 있을 것이다. 바로 향토사는 그런 것이다. 우정읍 화산리 활빈교회 두레자연중학교가 위치한 뒷동산을 봉화산(해발61.3m)이라고 한다. 왜 그럴까? 과거에 봉화를 올렸기 때문이다. 봉수(봉은 낮에 피우는 연기 봉연, 수는 밤에 불을 피우는 봉화를 이르는 말)는 낮에는 토끼나 늑대 똥을 태운 연기로, 밤에는 불을 피워 신호를 하는 고대부터 이용되었던 통신신호체계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가락국의 시조 수로왕 시기에 제일 먼저 사용한 것으로 나온다.

  특히 우리 흥천산 봉수는 고려 말 빈번한 왜구의 침입을 방비하고자 설치되고 이후 태종대 강화 되었다. 그러다 정조대 화성성역의 결과 왕이 머무는 화성행궁이 들어서며 화성에 봉돈이 설치됨으로써 국왕이 화성행차시에 봉수를 화성으로 연결할 필요가 발생하자 더욱 중요해졌다. 따라서 현재의 봉수지에 남아 있는 연조의 상태를 보면 다른 봉수지와 달리 1개소의 큰 연대와 5개소의 작은 연조로 이루어져 있어 무척 특이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한신대학교박물관 제20책 학술조사보고서 2005 남양만의 역사와 문화)

  따라서 흥천산 봉수는 연대연조복합형의 봉수이다. 이러한 형태는 왜구로 인한 방비가 중요했던 제주도와 남해안 일대에 주로 보이며 경기도도 해안봉수에서는 흥천산 봉수가 유일하다. 일반적인 연대는 해안가의 방비를 위해 높은 망루역할을 하여 위급함을 알리던 시설이고 연조는 우리가 잘 알 듯 봉수를 하던 1~5기의 봉돈이다. 흥천산봉수에서 바라다 보이는 서해바다는 과거 조선의 중요한 조운로이자 해로였다. 따라서 이 곳에 대한 방비는 아주 중요한 일 중 하나로 봉수인 연조가 설치되고 후에 연대가 설치된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흥천산봉수가 위치한 삼괴지역은 발안천 하구인 옛 분향만(汾鄕灣 : 발안천이 흐르는 만의 명칭이다. 남양방조제가 조성되기 전 발안천은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으로 분향은 조선 후기 남양도호부의 월경지였던 향남읍 상신리에 있는 마을로, 일제강점기가지만 해도 목선 수십 척이 드나들 만큼 큰 포구가 있던 곳. 화성시사4권[2018] 39쪽 참조)이 위치하여 수로를 이용하여 수원까지 가는 직항로였다. 또한 흥천산봉수를 북쪽으로 돌아가면 남양만(화성호-화홍방조제)이 이어지는데 이 남양만 수로를 통해 발안천과 함께 수원내륙 깊숙히 진입할 수 있는 지리적 요충지였다.

  이러한 지리적 중요성은 특히 조선 후기 정조가 수원 화성을 쌓고 종종 이곳으로 행차하여 화성행궁에 머물 때가 많았는데 당시 임금이 머물렀기 때문에 왕의 신변을 위한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므로 왕이 머무른 수원과 가장 가까운 해상교통로였던 이곳에 대한 방비가 필요하여 연대가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정조가 머물러 국사를 보았기 때문에 한성으로 가던 봉수도 이때만큼은 노선을 바꿔 수원 화성봉돈에 연락을 했는데 그 때문에 정남면과 봉담읍에 걸쳐있는 서봉산(249m) 봉수가 추가 설치되었다. 흥천산 봉수에서 수원 봉돈까지 거리가 상당히 멀어서 중간 봉수로 간봉을 설치(1796)한 것이다.(수원 유수 조심태 장계) 1821년 정조의 비인 효의왕후가 승하하면서 정조와 합장릉인 건릉이 조성되면서 능역에 서봉산(외금양지지)이 걸치게 되자 맞은편에 이웃한 건달산(237.2m)으로 이봉(1821)하였다.

  조선말기인 고종 때까지 봉수제가 운영되었으며 1896년(고종32) 5월 9일 전국봉수대와 봉수군을 철폐하면서 흥천산 봉수도 그 쓰임을 마감하였다. 이후 삼괴지역(우정, 장안면) 3․1운동 때도 봉화, 횃불시위로 간간히 사용되었다.

  이 봉화산봉수의 정확한 이름은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나 조선후기 '여지도서'(1760), '수원부읍지'(1792) 봉수조에 이름과 대응봉수, 근무자가 나와 있고 이보다 앞서 봉수에 관한 최고 기록인 '세종실록 지리지'(1454),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그밖에 '동국여지지'(1656), 1831년 유수 박기수가 편찬한 '화성지 봉수조' 등에 쌍부현 흥천산(興天山)봉수라고 나온다. 고려 이래로 조선시대 큰 고을인 수주(수원)에 속하면서 조선시대 수주에 중요하면서도 유일했던 봉수가 바로 흥천산봉수이다.

  흥천산봉수는 전라도와 충청도에서 올라오는 제5거 연변봉수(沿邊烽燧)의 직봉(直烽)이다. 이 봉수는 전라남도 순천의 돌산도 봉수에서 출발하여 전남 ․ 전북의 해안을 거쳐 충남의 내륙 ․ 해안과 경기도 및 강화도의 해안을 돌아서 경봉수(京烽燧)인 한성 목멱산(木覓山=남산)에 이르는 것이다.

 

 

 

   출처 : 한신대학교박물관총서 제23책 시화호의 역사와 문화, 2006

 

  특히 흥천산 봉수는 충청남도 당진군에서 신호가 오면 바다 건너 맞은편 평택 포승면의 괴대곳(괴태곶)봉에서 받아 분향만(지금의 남양호, 1976년 간척사업에 따라 남양방조제로 발안천 하구를 막음)을 넘어 우리 흥천산에서 받아 북쪽 지금의 화홍방조제를 건너 남양의 염불산봉화에 신호를 했다. 이와 같은 신호는 서울 남산(목멱산)까지 이어져 나라의 위급함을 알렸다.

   봉수는 거화법(위급에 따라 횃불을 올리는 규정)에 따라 평상시는 불이나 연기를 하나 피우고, 적이 보이면 두 개를, 적이 가까이 오면 세 개를 피웠고, 적이 경계선을 넘으면 네 개를 피운다. 싸움의 시작되면 마지막 다섯 개까지 피워 위급함을 알렸다. 이러한 흥천산봉수에는 기록에 하위무관인 별장(종9품) 1인, 감관 5인, 군 25명, 감고 1인, 산직 5명, 표하군 10명 등 총 47명의 인원이 배치되어 24시간 봉수를 지켰다. 그리고 매달 말일에 상위기관인 순영과 통어영에 변동사항을 보고 하였다.

   볕 좋은 요즘 봉화산에 오르자 제일 큰 흙봉우리, 예전에 망루로 이용되었던 연대를 시작으로 차례로 5기의 봉화(연조-불피우는 아궁이)가 있다. 마치 둥그런 구슬을 꿰어 놓은 것처럼 줄지어.....

 

흥천산 봉수 평면도(한가문화재연구원)

   출처 : 김주홍, 기전지역의 봉수, 경기문화재단, 2006, 221~225쪽

 

 

 

 

조선시대 전국 직봉경로

 

제1거 경흥 서수라 → 온성 유원 → 북청 석즙 → 안변 철령 →양주 아차산 → 한성 목멱산(서울 남산)

      지금의 함경북도에서 시작하는 경로

 

제2거 동래 다대포진 → 영천 성황당 → 순흥 죽령 → 충주 마산 → 광주 천림산 → 한성 목멱산

      경상남도 남해안에서 시작하여 영남 내륙으로 가는 경로

 

제3거 강계 만포진 → 의주 통군정 → 평양 주사산 → 개성 송악국사당 → 한성 무악동봉 → 한성 목멱산

      지금의 평안도 내륙 경로

 

제4거 의주 고정주 → 삼화 우산 → 장연 미라산 → 해주 연평도 → 한성 무악서봉 → 한성 목멱산

      평안도 해안경로

 

제5거 순천 돌산도 → 진도 여귀산 → 옥구 화산 → 양성 괴태곶 → 삼괴 흥천산 → 염불산양 →천 개화산 → 한성 목멱산 전라도 해안 경로

 

 

참고자료 - 사진

 

1)흥천산(봉화산) 봉수대로 들어가는 길(사진-차례로)

- 두레자연중고등학교

- 흥천산 능선 소나무숲 길

 

 

 

2) 흥천산 봉돈(사진-차례로)

-남동쪽에서 본 연대(높이 3m 남짓, 너비 5m 정도)

- 연대의 동벽 - 연대를 이루고 있는 활석들

- 연대 위에서 북쪽으로 열을 지어 늘어선 연조

- 북동쪽에서 본 연대, 연조1,2

- 연대, 북서쪽에서 본 연조 1,2

- 북동쪽에서 본 연대, 연조 1,2,3,4 

 

 

참고자료

'기전지역의 봉수(김주홍, 경기문화재단, 2021)', 화성 흥천산봉수 편

*2010년 '한국의 연변봉수'(2007)의 저자 김주홍 선생님께서 블로그 게시글  '지역향토사-흥천산봉수' 댓글로 흥천산 봉수의 구조 등을 확인 , 이후 2021년  김주홍 저, '기전지역의 봉수'(경기문화재단)에서 '화성 흥천산봉수' 내용을 확인하고 이를 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