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재미있는 나라이다. 삼국시대 고구려와 출발을 비슷하게 하였고 삼국 중에서 제일 먼저 강성하여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전사시키기까지 하였던 나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백제 왕족은 부여-고구려에서 나왔기에 피지배층인 백제민들과 다랐다는 것도 흥미롭다. 예컨데 왕을 호칭하는데 왕족이었던 부여씨들은 "어라하"라고 했고 백성들은 "건길지"라고 호칭한 것으로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아는 백제는 웅진과 사비 즉 공주와 부여시대로 많이들 알고 있다. 특히 수학여행이나 소풍 등으로 가는 곳은 백제의 고도라는 주제로 공주와 부여를 가기 때문이다. 특히 예전에는 백제 옛 수도를 찾아 서울로 가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아래 사진 참고)
사실 백제사에서 백제와 웅진시대는 그리 길지 못하다. 서기 475년 백제 개로왕이 고구려 장수왕의 군대에 패하여 죽임을 당하고 그 도읍을 웅진, 즉 공주의 공산성으로 옮기는데 그로부터 서기 538년 성왕(16년)이 사비(부여)로 천도하여 660년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 의해 망할 때까지 175년간 번갈아 도읍을 한 시대였다. 특히 사비지역은 오랫동안 백제에 편입되지 않았던 마한지역(백제의 영웅 근초고왕이 복속시킴)이므로 엄밀히 말한다면 백제의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의 대표라 할 순 없다.
그렇다면 오랜 백제의 역사의 중심지는 어디였을까? 바로 역사서에는 백제시조 비류와 온조형제가 고구려에서 내려와서 그 동생인 온조가 정착하고 수도가 된 하남 "위례성"이라고 불리는 한성 백제시대이다.(기원전 18부터 서기 475년까지) 거의 500년 가까운 시대를 그 도읍인 위례성, 즉 지금의 서울 강남일원에서 백제는 성장하였다.
꺄우뚱 할 사람도 있겠지만 서울에는 백제의 왕성 터로 짐작되는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이 있고 그 일원에 백제 초기 왕릉인 석촌동 고분(사진-돌층계식=돌무지무덤으로 고구려 전통적 묘제로 만주의 환인과 집안 등지에 수만기의 돌무지무덤이 분포하며 시기에 따라 규모와 모양이 조금씩 변해서 이른 시기의 무덤은 사진-산성하 고분의 형식이고 후기는 사진-장군총과 같이 계단식으로 변화 발전되었다. 이와 함께 백제 석촌동 고분의 양식이 이른 시기 고구려 돌무지무덤과 유사하다. 특히 무덤양식은 문화적 특징 중에 고유함이 오래 지속되는 특징이 있어서 고구려와 백제가 한 뿌리라는 증거로 여긴다.) 그리고 후대 무덤인 방이동 고분군 등 주변에 많은 유적이 분포한다.
그래서 서울 강남일원의 백제 문화유적을 통털어 '한성 백제시대'라고 한다. 과거에는 백제가 멸망한 당시를 기점으로 공주와 부여의 연구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500년 가까이 문화 백제국의 수도였던 서울 강남일원이 주목되어 그 연구가 활발하다. 특히 우리 역사에서 백제 왕성이었던 위례성의 존재가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가운데 1980년대 올림픽 공원을 조성하면서 한강변에 몽촌토성(서울 송파)이 발굴되어 많은 백제 유물과 중국제 자기가 나와서 백제 위례성이 아닐까 했는데 최근 몽촌토성 맞은편 풍납동의 풍납토성이 발굴되면서 백제 위례성의 미스터리가 하나하나 풀리고 있다.
풍납토성은 몽촌토성에 비해 규모도 크고 그 유적 안에서는 많은 건물지와 종묘와 같은 시설 등 왕성에나 있을 법한 규모있는 유적이 나오고 있어서 지금까지 몽촌토성이 위례성으로 유력했는데 지금은 풍납토성(아랫글 참조)이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백제의 하남 위례성이 중요한 이유는 백제 500년의 한성 백제기의 중심부이자 수도였고 백제가 해양강국으로 성장하는데 있어서 한강변에 위치하여 서해로 뻗어나가는데 지정학적 위치가 좋았으며(백제의 수도인 위례성, 웅진, 사비는 사진에서 보듯 모두 강을 끼고 있어 서해로 통하기 좁은 입지이다.) 이로 인해 중국의 여러 왕조와 독자적 교류를 통해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문화를 꽃피우고 그 우수한 문화를 다시 바다 건너 왜(일본)에 전해줬다. 이와 같이 백제의 찬란한 역사에 주 무대는 바로 하남 위례성, 즉 한성 백제시대의 역사였다.
* 풍납토성(風納土城)
"백제 최초의 도성
하남 위례성의 실체"
풍납토성은 둘레 3.5km, 높이 12m 이상, 저변의 폭이 40m 이상에 달하는 초대형 토성이다. 1997년부터 시작된 국립문화재연구소와 한신대학교박물관의 발굴조사에 의하여 한성기 백제의 도성임이 밝혀졌다.
시대 원삼국~삼국(백제)
서울시 송파구 풍납1동 136정디
조사기간 1999.9.27.~2000.6.23.
조사면적 약 3,300제곱미터
풍납토성 발굴은 1999년 대학교 1학년 1학기 때 처음 방문하고 2000년 2학년 1학기 때 발굴마무리 작업 때 2박3일을 참여하였다.
#용어정리#
*고국원왕-고구려 16대 왕으로 광개토대왕의 할아버지다. 백제의 근초고왕의 아들 근구수왕과 싸워 패배하고 전사하였다.
*개로왕-백제 21대 왕으로 고구려 장수왕과 싸워 패배하고 위례성 및 한강유역을 상실하였다.
*장수왕-고구려 20대 왕으로 광개토대왕의 아들이다. 평양성 천도 및 남하정책을 펴서 백제와 신라를 압박하고 삼국의 패자가 되었다.
*마한-삼국이전의 소국연맹체 국가시기인 삼한시대 변한, 진한과 함께 삼한을 이루고 가장 컸으며 그 중심 국가는 목지국이다. 한강 유역의 백제가 성장하자 점차 충청, 전라로 밀려나다 근초고왕 때 완전히 복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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