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정조 13) 정조가 융건릉이 위치한 화산 아래 구읍치를 지금의 화성행궁으로 옮기고 신읍치를 열며 유교의 제사와 교육을 받들던 수원향교도 팔달산 아래로 옮겼다. 군현의 격이 도호부에서 화성유수부로 승격한 이유로 수원향교는 화성향교이기도 하다.수원향교는 현륭원 천봉 과정에서 급히 서두른 탓으로 목재 대부분은 옛 건물 그대로 옮겨와 건물의 하부가 물에 잠기어 목재가 썩는 등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에 정조는 직접 대성전을 배알하고 화성 신도시의 격에 맞게 더 크고 장중한 대성전 건축을 명한다.(1795년, 정조 19) 군현의 격이 수원도호부에서 화성유수부로 승격하면서 향교 대성전을 이건 증축하면서 그 규모가 한양 문묘와 대도호부의 이상인 전주(부윤) 등과 같이 큰 규모로 지어졌다.(보물 지정 제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