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샘의 역사나들이(답사) 239

최석정 선생 묘

명곡(明谷) 최석정 선생은 지천 최명길의 손자로 조선의 명재상이다. 2024년 9월 14일 묘소를 찾았다.​인조반정 이후 병자호란을 거치며 대의명분과 절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집권 서인에 맞서 청과의 화의를 주장하며 조선의 병란에서 구했던 최명길의 처사로 훌륭한 조상이지만 이러한 면을 당당히 드러낼 수 없었던 조선에서 상당히 어려운 처지에 있었던 것이 최석정, 최석항, 최창대 등 최명길의 후손이었다. ​더욱이 4대붕당으로 노소분당이 되면서 소론의 영수로 노론과 대립하게 되니 이러한 처지 더욱 더 개인에 대한 사대존화주의 빠진 사류들의 집중적인 공격과 비판을 받았다. 따라서 최석정 선생의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졸기는 상당히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판중추부사 최석정의 졸기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최석정(崔..

단재기념관

2024년 9월 15일 귀래리 고두미 마을 단재 신채호 선생 묘 및 사당을 참배하고 단재기념관을 관람하였다.기념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선생님과 도산 선생님 간의 편지로 형과 아우로 부르며 각별했던 것을 본 것이다. 하와이를 호로 삼아 누구보다 솔선하여 앞장서며, 겸손했던 도산 선생님이 단재 선생님과 매우 친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반갑고 눈물겹다. 더욱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해서 대통령 이승만의 위임 통치 청원에 반대하며 최초로 탄핵가결을 주도한 선생이니만큼 그 업적과 친우들이 많았지만 그의 공로는 독립운동가 대통령 윤보선에 의해 추서되었다. 악연에 악수에 이승만과는 절대 함께 할 수 없었던 선생이다. 이렇게 반골기질인 선생이었으나 의외로 선생의 꼿꼿함에도 불구하고 주변에는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 묘 및 사당

단재 신채호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역사가로 혁명가이다. 역사를 공부하며 스승으로 가슴에 새기고 숱한 나날을 보내고 드디어 2024년 9월 15일 선생의 묘와 사당에 배알한다.​선생이 묻힌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의 귀래리 고두미 마을은 신숙주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룬 곳이다. 따라서 고령신씨인 선생의 본향이다. 태어난 것은 대전의 할아버지에 외가였지만 자란 고향은 선생이 묻힌 고두미 마을이다.1936년 2월 21일 뇌일혈로 쓰러지고 25일 무슨 작전을 하듯 선생이 자란 집 터에 급히 매장된다. 일제하 일제 호적도 거부하고 독립운동을 하다 죽은 선생의 시신은 여느 장사와 같은 상황으로 처리할 수 있는 노릇이 아니었다. 그래서 면장을 하던 집안 사람의 보증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나올 수도 있었으나 친일파의 덕을 ..

최명길 선생 묘 및 신도비

지천(遲川) 최명길 선생은 영화 '남한산성'(2017)에서 이병헌 배우가 열연한 조선의 명재상이다. 2024년 9월 14일 묘소를 찾았다.최명길 선생의 묘와 신도비는 선생이 1647년 졸하자 청주 대율리('대뱀이', 현 대율1리)에 장사지내고 이후 현달한 손자 최석정, 최석항, 증손 최창대의 노력으로 1702년 묘표와 신도비를 세웠다. ​최명길 선생의 묘표는 여느 조선의 사대부와 달리 '유명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조선'만을 쓰고 있다. 명이 망하고 조선의 사대부가 조선을 소중화라는 의식하에 명이 망했지만 여전히 조선은 명을 잇는다는 생각으로 사대를 표방한 것과 달리 최명길 선생의 묘표는 '조선상국'이라고 단촐하게 적고 있다.​'조선상국증시문충 지천최공명길지묘'영의정의령남구만서​ 이는 대명의리 존승을 놔..

청남대

'남쪽의 청화대'라는 청남대는 1980년 대청댐 준공현장을 찾은 전두환 대통령이 이곳 풍경이 절경이라고 감탄하면서 만들어지게 되었고 2003년 4월 18일 노무현 대통령이 충청북도에 청남대를 이관하면서 국민을 품으로 돌아간다. 전두환이 시작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마지막을 장식한 청남대, 그 누구보다도 청남대를 즐기고 자주 찾았던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이다. 무려 29차례 찾았고 금융실명제와 같은 중요한 정책현안이 이곳에서 구상되었다.2017년 문재인 대통령 당선과 임기 시작 앞에 선 아들이 "아빠 내 생일이랑 같은데요"라고 한다. 대통령 기념관을 찾아 솔바람길을 걸어 처음 만나는 대통령은 최규하 대통령 동상이다. "대통령은 무슨 대통령이야"라는 소리가 귀를 때린다. 여러 뜻이 있을 것이다. 임기가 짧아서,..

철도박물관

산업혁명과 근대화의 상징 철도가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1894년 6월 8일 의정부 공무아문 철도국이 설치되고 1899년 9월 최초로 경인선이 개통하였다. 철도박물관은 조선총독부 철도국에서 1935년 10월 1일 용산에 개관하였다. 경기도 의왕시 부곡의 지금 자리에는 1988년 1월 26일 국립철도박물관으로 신축 개관하였다. 용산의 서울역관이 2004년 2월 18일 폐관 통합되고 현재 한국철도공사에서 운영하고 있다.

서대문 경교장

1945년 11월 4일 개인자격으로 충칭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이하 '임정') 요인들이 귀국하였다. 8.15해방이 되고도 3달이 넘어 벌어진 일이다. 38선 이남의 어떠한 정부도 인정할 수 없다는 미군정 사령관 하지 중장의 조치 이후 벌어진 우리 역사의 비극이었다. 이때 친일부역자로 임정의 후광으로 자신의 허물을 감추려했던 금광업자 최창학이 자신의 별장 죽첨장을 임시정부 청사로 제공한다. 바로 임정 주석 김구 선생이 1949년 분단주의자 안두희의 총탄으로 서거하기까지 머물렀던 '서대문 경교장'이다.https://blog.naver.com/leelove97/223561419739 민족의 사랑 『백범일지(白凡逸志)』1949년 6월 26일 낮, 12시 36분. 경교장에서 여러 발의 총탄소리가 들린다. 향년..

경복궁

'하늘이 내린 큰 복''경복(景福)'이다. 경복궁은 조선의 법궁이다. 이성계가 조선을 개창하고 한양 천도를 하면서 지은 최초의 궁궐이다. 조선을 대표하는 곳이나 조선의 영화보다는 역사의 비운이 점철된 곳이다. 2024년 8월 22일, 처서 경복궁을 간다. ​"궁원(宮苑)의 제도는 사치하면 반드시 백성을 힘들게 하고 재물을 잃는다. 너무 누추하면 조정의 존엄을 보일 수 없다.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아름다우나 사치스럽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미(美)이다. 검소한 것은 덕과 같고, 사치스러운 것은 악(惡) 중에서도 큰 것이다. 사치스러운 것보다는 검소한 것이 낫다.(宮苑之制, 侈則必至勞民傷財. 陋則無以示尊嚴於朝廷也. 儉而不至於陋, 麗而不至於侈, 斯爲美矣. 然儉 德之共也, 侈 惡之大也. 與其侈也 寧儉.)"..

고려대학교 둘, 박물관

구한말 민씨 척족에 붙어 승승장구하였으나 민족교육을 일군 이용익, 고려대학교의 출발이다. 이용익은 고려대의 전신 보성전문학교를 1905년 세웠다. ‘보성(普成)’은 고종이 지어준 이름으로 ‘널리 이룬다’라는 뜻이다. 이용익은 이후 국운이 기울자 러시아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다 암살된다. 우리나라 최초 사립대학인 보성전문학교를 다시 일군 것은 동학의 제3교조이저 천도교를 개창한 의암 손병희다. 3.1운동을 일으키는 중심에 있었고 민족대표 33인이다. 일제강점기는 학교 든, 기업이든 조선인이 소유한 것은 운영이 어려웠다. 민족교육의 산실이었던 보성전문학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당시 명망 있는 민족기업가 인촌 김성수가 주변의 강권으로 나선다. 인촌은 호남의 대지주로 일제의 미곡 정책에 따라 성장한 식민..

고려대학교 하나, 민족 고대

"순간이고 찰라이다"​구한말 민씨 척족에 붙어 승승장구하였으나 민족교육을 일군 이용익, 고려대학교의 출발이다. 이용익은 고려대의 전신 보성전문학교를 1905년 세웠다. ‘보성(普成)’은 고종이 지어준 이름으로 ‘널리 이룬다’라는 뜻이다. 이용익은 이후 국운이 기울자 러시아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다 암살된다. 우리나라 최초 사립대학인 보성전문학교를 다시 일군 것은 동학의 제3교조이저 천도교를 개창한 의암 손병희다. 3.1운동을 일으키는 중심에 있었고 민족대표 33인이다. 일제강점기는 학교 든, 기업이든 조선인이 소유한 것은 운영이 어려웠다. 민족교육의 산실이었던 보성전문학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당시 명망 있는 민족기업가 인촌 김성수가 주변의 강권으로 나선다. 인촌은 호남의 대지주로 일제의 미곡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