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샘의 역사나들이(답사)

남양주 이왕가 홍유릉 여주 명성황후 생가 신륵사

달이선생 2025. 7. 1. 19:49

 

클레오파트라는

절세미녀가 아니면서도

남들이 그렇게 여기게 만드는

기술이 능할 뿐더러,

총명하고 재치가 풍부한

여자였던 것은 분명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성도 갖추고 있었을까?

우선 그녀는

현재 상황에 대한 인식력이 부족했다.

시오노 나나미, 1996, 로마인 이야기5(율리우스 카이사르 하), 한길사, 473쪽

 

로마인 이야기를 읽다보면 클레오파트라를 볼 때 늘 생각되던 사람이 있다. 명성황후라고 불리는 고종비 중전민씨다. 시아버지 흥선대원군과 권력투쟁을 하면서 민씨척족을 앞세워 세도정치를 하였고 청나라를 등에 업고 백성의 어버이임을 포기한 여자, 그런 여자를 두고 10여 년 전 뮤비와 드라마에서는 민씨로 분한 여주인공이 일제 낭인 앞에서

"나는 조선의 국모다"

라고 당차게 결기를 보여준 사람, 중전 민씨다. 사실 이는 극적 재미는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 그렇게 당차고 기개 있는 왕비가 일제 낭인을 피하기 위해서라지만 궁녀의 복장을 입고 궁녀들 틈에 숨어있다가 차례차례 궁인들이 살해되는 가운데 자기 차례가 되자 드디어 국모의 체모가 살아났다는 설정이었다.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 그리고 그 아비 고종은 일제에 나라를 바치고 일본 덴노가의 가신 이왕가가 되었다. 불구대천지원수와 죽기 살기로 싸우다 죽지 못할 망정 허울 좋은 대한제국을 바쳐 그 공으로 일본 귀족 지위 중 최상위 이왕가로 봉작되었다.(왕실봉작제) 일제가 패망하는 그날까지 일본 귀족 중 최고의 대우(왕공족)를 받아 막대한 세비를 받아 호화사치를 부렸던 부끄러운 왕가, 나는 이들을 이왕가라고 부른다. 일제에 분봉된 이왕가 고종과 순종릉이다.

비극적 최후로 너무나 미화된 중전 민씨와 그녀의 흔적을 찾아봤다. 그녀의 생가와 무덤 홍릉이다. 대한제국 국체에 따라 기존 왕릉보다는 격을 높여 황제릉으로 조성되었다. 명 홍무제 효릉을 참고해 황제릉 제도에 따라 정자각 대신 '一'자형의 정면 5칸, 측면 4칸의 침전을 세우고, 능침에 놓였던 석물은 침전 앞 직선의 향어로 좌우로 배치했다. 커진 문석인(금관조복)과 무석인, 석수는 석양과 석호 대신 홍살문에 이르기까지 기린·코끼리·사자·해치(해태)·낙타석·석마를 차례로 세웠다. 반면에 능상(능침)은 원래의 능역조성에 따라 언덕인 강(岡) 위에 곡장을 치고 봉분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러 장명등, 망주석으로 치장하였다.

여주 신륵사는

세종 영릉의 원찰이다. 세종의 안녕을 빌고 수호하는 사찰로 남한강변 대단한 위세의 사찰이었다. 그곳에 갔다.

명성황후탄강구리비
민유중선생신도비

 

2011.11.12.

 

 

이왕가 홍유릉

 

이왕 순종 유릉

 

 

이왕 고종 홍릉

 

2011.9.24

 

신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