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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와 싸운 최루백

달이선생 2010. 1. 11. 15:10

 

 

 

 

 

 

호랑이와 싸운 효자 최루백

 

  조선시대 윤리서인「삼강행실도」에는 호랑이와 관련된 인물이 나온다. 바로 수원 최씨 최루백(崔婁伯)의 이야기로 호랑이를 잡아 효도를 다한 이야기이다.

  “최루백은 고려 시대 수주부(수원)의 호장 최상저에 아들이다. 어느 날 아버지가 사냥을 나갔다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 최루백은 당장 산으로 올라가 그 호랑이를 잡으려고 하였다. 이때 최루백의 나이는 15세에 불과했는데 놀란 어머니가 남편에 이어 아들마저 잃게 될까봐 만류하였다. 이 때 최루백은 ‘어머니! 어떻게 아버지 원수를 갚지 않고 이대로 견딘단 말입니까.’라고하면서 즉시 도끼를 메고 호랑이의 발자국을 따라가니, 산등성이 저만치 호랑이가 사람 하나를 다 먹은 뒤, 배가 불러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최루백은 호랑이 앞으로 달려들어‘이 놈! 네가 우리 아버지를 해쳤으니 나는 이제 네 고기를 씹어 먹어야겠다.’고 호통을 쳤다. 그러나 호랑이는 겨우 눈을 떴으나, 관심 없다는 둥 꼬리를 치면서 그대로 넓죽 배를 깔고 누워있었다. 재빨리 최루백은 힘껏 도끼를 내리치고 호랑이를 깔고 앉아 그 배를 가르고 아버지의 뼈와 살을 추려서 깨끗한 그릇에 담았다. 이어 호랑이의 몸뚱이는 큰 항아리에 넣어 냇가에 묻어두고 아버지를 홍법산(洪法山) 서쪽에 장례를 지내고는 무덤 곁에 여막을 짓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잠시 잠이 들었는데, 꿈에 홀연 아버지가 나타나더니

 

가시 덩굴 헤치고 효자 사는 집 당도하니,

 마음에 감동됨이 많아 눈물 흘려 그치지 않네.

 

 흙 져다가 날마다 무덤 위에 얹으니,

 이 효심 아는 이는 오직 밝은 달과 맑은 바람뿐.

 

 살아서 봉양하고 죽어서는 잘 지켜주니, 

 그 누가 효도의 시종(始終:처음과 끝)이 없다 하겠는가.’

 

하고는 사라졌다. 최루백은 마저 3년 상을 마치고 묻어두었던 호랑이의 고기를 꺼내어 먹었다.”라는 이야기다.

  이 일로 최루백은 문신에 등용되어 정의대부(正議大夫) 한림원학사(翰林院學士) 중서문하성(中徐門下省)기거인 국자감사업(國子監司業) 등 고위직을 두루 거치며 「고려사열전」에까지 오르게 된 명신이 되었고 후일 고려를 이은 조선에서 세종은 친히 글을 내려 치하하고 「삼강행실도」에도 올렸으며 숙종 때는 효자비까지 세웠다.

  지극한 효심으로 호랑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효심을 다했던 최루백의 이야기는 효의 고장인 우리 수원에서 정조의 효심과 함께 대표적인 미담이다. 최근 발굴 조사에서 최루백은 부인 염경애의 묘지석을 친히 써서 애뜻한 사랑을 기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재 최루백 정려비는 화성시 봉담읍 수기리 136번지에 위치한다.

 

 

사진 및 만화 출처 山寺愛人http://blog.daum.net/dwban22/1612

 

 

최루백 일화를 그린 만화

 

 

 

 

 

 

 

 

 

만화 출처'우리 고장 화성' 화성지역 중학생을 위한 사회교과서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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