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박물관 기획전시
'항일과 친일' 백년 전 그들의 선택
2022년 5월 28일 경기도박물관을 찾았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선택할 수 없었던 그 시절의 선택이 항일과 친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경기도 대표 항일독립운동가로 전시되고 있는 경기도 대표 친일파로 전시되고 있는 수원출신 박영효와 파주출신 박찬익 지사의 인연은 참으로 극적이다. 두 사람이 생전에 만남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두 사람 모두 선조의 유명대신인 박동량의 후손(묘 시흥시 연성동)이라는 사실이다. 반남박씨로 왕실과 국혼(아들 박미가 선조의 다섯째 딸 정안공주와 혼인하여 금양위에 봉해짐)을 통해 조선시대 내내 벌열로서 명문대가인데 그 후손으로 한 사람은 친일을.. 한 사람은 독립운동에 생을 바쳤다. 특히나 박영효는 윤치호와 같이 아쉬움 대단히 많이 남는 사람이다. 같은 문중으로 박지원에 손자 박규수를 스승으로 김옥균과 같이 개화당이 되어 3일 천하로 끝나지만 근대적 국민국가 건설을 위한 갑신정변(1884)의 주역이었지만 말년에는 민족반역자라는 허울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정말 통탄할 일이다.
이렇듯 경기도 출신으로 경기도의 주요 항일독립운동가와 경기도의 대표적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을 전면에 내세운 경기도박물관 기획전시 '항일과 친일'에서는 그중 수원(화성)의 대표적 독립운동가인 팔탄면 가재리 서당훈장 이정근 지사, 수원 기생으로 3.1운동을 이끈 김향화 지사, 구국민단결사로 수원의 유관순으로 불리는 이선경 지사.. 그리고 제암리 학살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우정, 장안면의 3.1운동을 이끈 차병한, 차병혁, 차희식 지사까지 가슴 뭉클한 시간이었다.
다만 제암리 학살사건의 향도가 되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이름을 올린 순사보 조희창과 동요 '고향의 봄'으로 널리 알려진 난파 홍영후, 그는 1938년 "천황의 분부를 받들어 팔굉일우(세계가 한집)를 만들자"는 이광수 작사에 '희망의 아침'을 작곡한 우리 지역 대표 친일파로 전시된 모습을 보니 역사의 엄중한 심판을 생각하게 된다.
이번 전시는 경기도박물관이 속한 경기문화재단에서 직간접적으로 시행한 사업들의 총화로 볼 수 있다. 경기도항일유적 아카이브 및 유적설명판 사업, 용인문화원과 협력한 팔굉일우비 사업이라던가 그간 경기문화재단이 벌인 역사바로세우기 사업의 결실이다.
우리는 그런대로 항일을 통한 독립운동을 했던 선열에 대한 생각이 깊다. 반면에 민족을 배반하였던 친일에 대한 생각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이를테면 친일파는 이완용 하면 끝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사실 독립운동보다는 친일부역자가 더 많고 더 드러내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혹여 민족반역자들을 꼭 알아야 하나라는 의견도 있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르다. 민족독립을 위해 몸바친 선열 못지 않게 민족반역자들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경기도로 한정하여 주요 친일파를 열거하고 있다. 이름을 들으면 익히 알 수 있는 사람부터 익숙하지 않은 사람까지 할 수 있다면 각 시군 주요 친일파를 엮어 역사 앞에 단죄해야 한다. 그래야 미래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지 않아 독립운동은 못했으나 오늘을 살기에 과거의 어두운 기억을 낱낱이 드러내고 진실을 밝히는데는 조금이나마 역할을 하고자 한다."-게시글 '밀정'에서
조상 덕에 독립운동한 사람은 가난을 친일을 한 사람은 부유하게 산다. 이러한 기득권은 해방 이후 잘 지켜 잘 먹고 잘 산다. 그러니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들이 잘 살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지켜봐줘야 한다. 그게 사실 역사의 심판이다. 프랑스의 드골처럼 반역자들을 가차 없이 처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이를 해방공간에서 하질 못했다. 그렇지만 역사라는 이름으로 단죄는 할 수 있다. 그 단죄가 바로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다. 역사라는 이름으로..
주홍글씨처럼 낙인을 찍어 친일을 한 사람들의 후예를 괴롭히자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조상이 했던 만행을 사실 그대로 인식하고 그것에 대한 반성, 사과는 피해를 본 사람들이 더 이상 묻지 않을 때까지 그렇게 해야하는 것이다. 그래야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지키는 것이다.
전시 안내장
경기도박물관
https://musenet.ggcf.kr/exhibition/p/6267af9b6fb3b004a26cb678
경기도박물관은 오는 4월 27일 특별전 《항일과 친일, 백 년 전 그들의 선택》을 개막한다. 이 전시는 경기도 31개 시군의 항일독립운동과 친일파(親日派)에 대해서 조명하는 특별전으로, 한말~일제강점기에 경기도에서 펼쳐진 의병활동과 3·1만세운동의 장소 및 인물을 기리고, 나라를 팔아 부귀영화를 얻은 친일파 및 일제잔재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킴으로써 역사의 엄중함과 국가·공동체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자 기획한 것이다.
1906년부터 1907년까지 2년간 한국에 머물면서 의병전쟁 지역을 답사한 영국 일간지 데일리 메일(Daily Mail) 기자 출신 매켄지(Frederick Arthur Mackenzie, 1869~1931)는 1907년 11월 7일과 8일 삼산리 전투가 벌어진 직후의 양평을 답사한 뒤 기록을 남겼다. 그가 만난 의병에는 군인과 유생, 농민, 어린 소녀 병사도 있었는데, 그는 한국인이 “비겁하지도 않고 자기 운명에 대해 무심하지도 않다”고 기록하고 애국심이 무엇인지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높이 평가하였다.
19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아 1910년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일본의 침략과 국권 강탈은 조약 형식을 띠었으므로 이에 협조하는 친일파들이 있었고, 시간이 흘러 일본 제국주의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났다. 그렇지만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배에 저항하는 사람은 더 많았다.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의병전쟁과 계몽운동은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였고, 3·1만세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이후 국내외의 항일운동과 무장 독립전쟁이 본격화하였다. 근대 이후 한국은 수십 년간 식민지라는 암울한 터널을 지났지만, 치열한 독립운동이 있었기에 그 역사가 초라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다는 것이 전시 담당자의 설명이다. 한국인에게 일제강점기는 잊을 수 없는 아픔이며 지울 수 없는 상처이다. 1백 년 전 깊은 절망에 빠졌던 사람들,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스스로 가시밭길을 걸었던 사람들은 과연 지금의 대한민국을 예측했을까? 1백 년 전 우리는, 나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전시실에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물음표가 가득하다.
이 전시는 경기도의회가 지난해 5월 20일 제정한 ‘경기도 일제 잔재 청산에 관한 조례’에 따라 기획한 것이다. 또 최근 수년간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경기문화재연구원, 지역문화교육본부, 경기도박물관)이 수행한 ‘경기도 항일독립운동 문화유산 실태조사 보고서’(2017), ‘경기도 항일운동유적 안내판 설치사업’(2018~2019), ‘경기도 항일운동 문화유산 조사사업’(2019~2020), ‘경기도 항일운동 인명록 발간’(2020), ‘친일잔재 상징물 안내판 설치사업’(2021), ‘문화예술 일제잔재 청산 및 항일 추진 민간공모 지원 사업’(2021), ‘친일문화잔재 청산을 위한 독립운동 유물구입’(2021) 등 여러 사업의 결과물과 국사편찬위원회의 일제감시대상카드, 국가보훈처의 독립운동현충시설 자료, 문화재청의 자료 등을 정리하여 소개한다. 조병세, 김병엽, 박찬익 관련 유물 등 그간 경기도박물관이 기증받은 근대 및 독립운동 관련 유물이 이번 전시의 토대가 되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민족문제연구소(식민지역사박물관)의 후원과 함께 안성3.1운동기념관, 제암리 3.1운동순국기념관, 양평 몽양기념관, 여주박물관, 수원박물관, 민세안재홍기념사업회, 용인문화원 등 경기도의 항일독립운동 관련 유관 기관 및 단체, 개인 소장가 등 여러 곳으로부터 유물과 자료, 이미지와 영상물 협조를 받았다.
주요 전시품은 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서화, 판화, 유화, 사진, 신문, 도서, 엽서, 영상물 등 200여 점이며, 제1부 ‘대한제국의 비극, 그들의 선택’, 제2부 ‘항쟁과 학살, 그날 그곳을 기리다’, 제3부 ‘친일(親日)과 일제잔재(日帝殘滓)’, 제4부 ‘유물로 만나는 경기도의 독립운동가’ 등 모두 4부로 구성하였다.
제1부(대한제국의 비극, 그들의 선택)는 한말과 대한제국기에 펼쳐지는 일본제국주의 국권침탈의 모습을 그린 임오군란(1882), 청일전쟁(1894), 러일전쟁(1904), 정미의병(1908) 관련 유물과 죽음으로 일제에 항거한 순국열사 조병세, 최익현, 민영환, 이한응의 유품과 무장독립항쟁을 위해 전 재산을 팔아 만주로 망명한 이석영 6형제에 관한 영상물, 지조를 지키는 마음을 표현한 윤용구, 안중식, 오세창, 한용운의 서화 등을 전시한다.
제2부(항쟁과 학살, 그날 그곳을 기리다)는 3·1독립만세운동과 화성 제암리 학살 관련 유물과 자료를 전시한다. 국내외에서 전개된 3·1독립만세운동은 총 1,692회에 최대 100만 여 명이 참여한 대규모 민족운동이었다. 경기도는 타 지역에 비해 지속적이면서 격렬하게 만세운동을 전개하여 총 367회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고, 참여인원도 17~20만여 명에 이르러 가장 많았다. 이에 1919년 4월 15일 일본군이 지금의 화성시 제암리에서 주민들을 집단 학살한 만행사건이 일어났다. 전시실에 걸린 대형 유화 〈제암리 뒷동산 만세소리〉(1983년, 김태 작)와 영상물 〈4월의 어느 날〉(2분 50초)은 화성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에서 빌린 것이다.
제3부(친일과 일제잔재)는 경기도의 대표적 친일파 10명(이완용, 송병준, 박제순, 이재곤, 박영효, 박필병, 민원식, 홍사익, 조희창, 홍난파)과 송병준·송종헌 부자의 공덕비 및 팔굉일우(八紘一宇, 세계를 천황 아래에 하나의 집으로 만든다) 관련 자료와 탁본을 전시한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친일파(親日派)를 “을사늑약(1905) 전후부터 해방(1945)까지 일제의 국권침탈, 식민통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한민족을 비롯한 여러 민족에게 신체적, 물리적, 정신적으로 직간접적 피해를 끼친 자로서 활동 흔적이 뚜렷한 사람”이라고 정의하였다. 일제잔재(日帝殘滓)는 “일제의 침략전쟁과 식민통치 기간에 일본제국주의의 영향 아래 생산되거나 정착하였음에도 해방 이후 청산되지 못한 유무형의 부정적 유산”, 친일잔재는 “친일 논리의 영향을 받은 유무형의 유산”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제4부(유물로 만나는 경기도의 독립운동가)는 경기도 출신 중 주요한 독립운동가 류근ㆍ여운형ㆍ조소앙ㆍ조성환ㆍ박찬익ㆍ안재홍ㆍ신익희ㆍ엄항섭 등의 유물을 전시한다. 특히 여주박물관이 소장한 조성환 선생의 유품, 경기도박물관이 기증받은 파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찬익 선생 일가의 유품, 평택의 민세안재홍기념사업회가 소장한 안재홍 선생의 유품 등이 전시된다.
전시장에는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가 제작한 주홍 작가의 샌드 애니메이션 〈도마 안중근〉을 비롯하여 모두 8개의 영상물이 상영되고, 민족문제연구소가 간행한 『친일인명사전』과 지역사연구소·식민지역사박물관이 발간한 『우리 지역 일제잔재를 찾아라』의 PC 검색 코너, 경기일보의 기획기사 ‘경기도의 독립운동가를 만나다’ 등을 QR코드로 확인하는 코너 등이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이 최근 국가 보물로 지정한 ‘데니 태극기’ 등 3종의 태극기를 소개하였다. 포토존은 194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현재의 국회) 사진을 활용하였으며, 체험존은 ‘소망나무에 메세지 달기’, 태극기를 활용한 ‘태극 바람개비 만들기’, ‘나라사랑 태극기 만들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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