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상징 철도, 수원시 문화유산
세류삼각선지(수인선 세류공원), 수원역 급수탑, 수인선 협궤열차
세계사적으로 근대를 규정하는 것은 보통 우리 인류발전 측면에서 정치체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 확립을 든다. 이러한 근대를 향한 규정은 어디까지나 서구사회를 기본으로 하는 것으로 우리와는 차이가 많다. 우리의 근대는 제국주의 침탈과 식민지(일본), 그리고 수탈의 경제였기 때문이다.
근대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큰 변화로는 산업혁명을 들 수 있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을 이끈 산업이 바로 철도였다. 철도는 증기기관과 철로를 이루는 철로 인한 대규모 철강공업을 발전시켰고, 증기기관을 통한 동력은 석탄산업 발전과 대규모기계공정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19세기 들어 세계는 그야말로 영국뿐 아니라 곳곳이 거대한 산업지대가 되었다.
이러한 근대의 상징 철도가 우리나라와 인연이 맺게 된 것은 조선말기 고종 때이다. 1894년 6월 28일 의정부 공무아문에 철도국을 설치된 것이다. 이후 1899년 경인철도 부분 개통을 시작으로 1900년 전선, 이어서 경부선(1905), 경의선(1906)이 개통되면서 우리나라 철도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우리 철도의 시초가 되는 경인철도가 1896년 미국인 제임스R. 모스에게 허가되어 시작되었으나 도중에 자금 부족의 이유로 일본에 부설권을 팔았고 이후 철도는 일제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이처럼 우리 철도의 역사는 우리 스스로 시작해서 일본제국주의의 야욕에 넘어간 수탈의 역사이다.
그럼에도 주목할 것은 특히 경의선 철도 개통이후 1911년 만주행 부산 직통급행 열차가 운행되고 이어 1933년 선양, 1939년 북경까지 열차운행이 되면서 대륙에 속한 조선은 비록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여 철도가 연결되긴 하였으나 만주를 지나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지금은 우리나라가 분단국가가 되어 모든 육로교통이 차단되어 섬 아닌 섬나라로 있지만 향후 미래에 남북평화를 기반으로 개방, 협력이 되어 남북공동경제가 작동하면 우리 철도는 다시금 세계 각지로 뻗어 갈 것이다. 그날을 꿈꾼다.
우리 수원지역이 철도와 인연이 된 것은 바로 경부선 철도의 부설을 통한 수원역의 개소이다. 그리고 주목할 것은 수원을 지나는 경부선 구간의 설정이었다. 일제의 자본으로 설립된 (주)경부철도는 당초 경부선이 지나는 수원의 철도 구간의 예정 노선을 팔달산 기슭을 통과하여 화서문 외곽을 지나 지지대 고개로 이어지도록 계획하였다. 하지만 수원사람들은 화성 등 문화유산의 훼손을 염려하며 끈질긴 반대 시위로 현재의 노선으로 바꾸게되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우뚝 솟은 화성과 화성행궁을 위시한 원 수원신읍치의 모습이 그나마 온전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100년 전 깨어있는 우리 수원사람들의 피와 땀의 결과이다.
그리고 또 하나 수원지역의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수인선이다. 수인선은 일제가 사철인 조선경동철도주식회사를 통해 1937년에 철도를 개통, 운영하였다. 수인선은 착공한지 1년 2개월 만인 8월 6일 정식 운행하였다. 총연장 52km의 협궤선으로 17개의 정차장과 임시정류장을 설치하고 수원-인천간 운행하며 인적, 물적(대규모 군자, 소래, 남동염전에서 생산된 소금운반) 교류에 기여하였다. 특히 1930년 개통한 수려선(수원-여주)을 연결하여 이천의 쌀 등 곡물과 강원도 지역의 원목 등을 일본으로 빼돌리는 중계 수송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이 때문에 종착지인 제물포항은 이들 수탈물자를 쌓아두는 대형창고가 들어서서 일본으로 반출될 날만 기다리는 수탈품자가 차고 넘쳐났다. 이후 염전의 쇠락과 버스나 자동차 화물 등의 운송수단이 대체가 되며 1977년 화물 운송 중단, 1995년 12월 31일로 모든 운행이 중지되었다. 현재는 수도권전철망 일환으로 기존의 4호선에 인천2호선과 수인분당선 전철이 새로이 개통(1920.9.12.)되어 수인선의 명맥을 잇고 있다.
재밌는 사실이 있다. 바로 이 수인선의 경로를 통한 미래구상했던 사람이 있다. 수원하면 떼레야 뗄 수 없는 인물, 바로 정조이다. 정조는 1797년 8월 행행에서 명분은 추존왕 원종(인조의 아버지)과 인헌왕후 구씨의 능(장릉)을 참배한다는 목적으로 창덕궁을 나와 한강을 건너 김포 장릉-부평-인천-안산-화성(수원)-현륭원에 이르는 노정으로 '해빈 10읍'의 모습을 직접 시찰하였는데 그 구간이 데체로 수인선 노정과 같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보위하는 화성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주변 고을에 대한 정조의 구상을 엿볼 수 있었던 큰 사건이었다.
https://blog.daum.net/ilovepk/98
수인선 세류공원은 협궤열차인 수인선과 수려선이 만나는 곳으로 '세류삼각선'이라고 불린 곳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공원이다. 그리고 경부선이 단선에서 복선화가 되고 좁은 철로의 협궤선이 추가 되면서 넓은 광궤선을 지나는 증기기관차에 대한 급수를 위한 급수탑이 수원역에 설치되었는데 현재 그 시설 1기와 협궤선 협궤증기기관차의 급수 시설 1기가 남아있다. 이를 보존하고 '수원역 급수탑'이라는 이름으로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이를 작은 공원화를 통해 기념되고 있다. 그리고 화성으로 나들이를 갔다가 화성행궁 광장 수원문화재단 아래쪽 공사를 위한 안전방음벽이 설치된 곳에 수인선 철도에 대한 벽화전시가 있어 소개한다.
2024.1.28.
'달이샘의 역사나들이(답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기도박물관 항일과 친일 백년 전 그들의 선택 (0) | 2022.05.29 |
---|---|
경기도박물관 경기 국가 근본의 땅 (0) | 2022.05.29 |
화성시 매향리평화기념관, 궁평리 해안, 서해랑 제부도해상케이블카 (0) | 2022.03.28 |
수원화성박물관 , 사도세자의 부마 흥은위 정재화 (0) | 2022.03.27 |
고창 무장 동학농민혁명 기포지 (0) | 2022.0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