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시 매향리평화기념관, 궁평리 해안, 서해랑 제부도해상케이블카
문화관련자에게는 경기도 서남부 해안 일대는 경기만에코뮤지엄으로 친숙한 곳이다. 경기만에 걸친 경기도 화성시와 평택시, 안산시, 시흥시 등 경기문화재단과 각 지자체들의 문화 등 여러 기관과 손을 맞잡고 다양한 문화사업을 펼쳤다. 여기 화성시는 미공군 쿠니사격장이 폐쇄되고 매향리평화공원이 조성되고 있다. 매향리 농섬은 한국전쟁 이후 폭격의 섬에서 평화의 상징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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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니사격장, 농섬, 매향리역사기념관, 매향리평화생태공원, 화성시 공예문화관
고온리(Koonny-쿠니)사격장, 농섬, 매향리역사기념관, 매향리평화생태공원, 화성시 공예문화관 2001년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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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른 해상사격장(농섬과 일대 바다)과 육지사격장(관측소 앞 농지로 현재 공원)에는 평화생태공원이 만들어지고 미군이 주둔하던 관측소에는 일부 시설을 남겨 놓고 한켠에 평화기념관이 들어섰다.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이색적인 건축물이다. 빨간벽돌도 인상적이지만 흰색 건물은 마치 피사의 사탑과 같은 느낌을 준다. 딱 봐도 전망대 시설로 보이는데 화성시 관계자 설명으로는 전망대 건축물이 아닌 등기 안된 조형물이라고 한다. 매향리 사격장에서 살다간 원혼들을 추모하기 위한 위령탑이라는 설명이다.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io Botta, 1943 ~ )는 건축을 하는 사람들은 친숙하나 일반인들은 생소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설계한 서울의 '교보타워'하면 '아' 하고 생각나는 사람이다. 화성시에는 그의 또 다른 대표 작품인 '남양 성모성지 대성당' 건축이 유명하다. 그는 대성당 건축에서 '세계에서 전쟁, 난민, 순교가 계속되고 있고 이를 위한 기도 공간은 아름다운 건축물이 되어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건축하였다고 밝혔는데, 이는 그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건축에 대한 생각이 반영된 결과이다. 보타가 생각하는 건축의 역사는 교회의 역사로 생각하고 이러한 가치관은 그가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등 다양한 종교건축에 참여하며 드러내고 있다. 특히 그는 '영혼을 위한 건축'가로도 유명한데 그가 사용하는 붉은벽돌은 자연재료인 흙으로 땅을 의미하는 그의 대표적인 표현이다. 건축 재료로서 내구성도 좋고 그가 가지고 있는 교회와 영혼 등 건축이상을 표현하는데는 이 만한 건축재료가 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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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벽돌’ 시그니처, 마리오 보타Mario Botta
마리오 보타의 첫 작품은 ‘제네스트레리오의 사제관’이다. 그가 다니던 성당 교구의 신부가 의뢰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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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향리 평화기념관은 빨간벽돌을 쌓아 회랑을 만들고 그 사이 삼각형의 공간을 두어 밖의 공간에 대한 액자적 구성을 표현한 것이고 기념관 전체 구조는 평화생태공원 전체를 담는 바구니를 구현한 것이라고 한다. 장중함과 엄숙함, 기하학적인 표현과 구성은 매향리평화생태공원을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은 느낌을 준다. 다만 내부 건축물 공간에 들어가서는 매향리의 칼바람이라 불리는 겨울의 한기를 극복하는데는 무리가 있을 것이고 이밖에 공간 활용에 대한 고민 역시 클 것으로 보인다.
매향리 원혼을 위한 위령탑, 전망대는 계단이 주통로이나 엘리베이터 시설이 되어 있고 필요에 따라 이용이 가능하다. 7층의 구분을 두고 있지만 실제 건축상 15층 높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꼭대기에서 보여지는 주변 경관은 매우 뛰어나다. 농섬이 바라다 보이는 너른 남양만과 서해바다, 그리고 당진과 잇닿은 서해대교와 평택, 당진항, 북으로 화성호방조제와 궁평항, 지역의 대표 지형인 쌍봉산에 이르기까지 주변지역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최고의 풍광을 선사한다.














어린 시절 우리 동네 덕다리 수렁계는 송탄 오산미군기지에서 매향리로 가는 하늘길로 낮이건 밤이건 처음 보는 신식의 미군 전투기와, 폭격기가 수시로 저공비행으로 날아 들었다. 여러 전투 헬기는 물론 일명 잠자리 헬기로 부른 치누크 헬기도 조종사와 기관총이 다 보일 정도로 지나갔다. 저녁이면 서쪽하늘에 비행기가 지나고 대여섯 별들이 나타나 천천히 떨어졌다. 이게 조명탄이 투하된 거란 사실은 한 참 크고 나서 알았다. 그렇게 조명탄이 뜨고 으레 폭탄 폭발에 따른 불빛이 섬광으로 빛났고 전투기의 기총사격으로 밤하늘은 마치 공상과학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탄두가 줄지어 날아가는 모습이 어린시절 동생과 보는 재밌는 볼거리였다. 이렇게 전투기들을 수시로 볼 수 있는 것이 특별한 경험인 걸 안 것은 대학에 들어가면서이다. 대학에서 친구들과 이야기하니 평생을 가도 이런 경험을 못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이 태반이고 보통사람이었다.
어느날 낮잠을 자다 창문이 마구 흔들려 지진이 난 줄 알았던 일이 허다했다. 알고보니 사격장에 투하된 강력한 폭탄의 진동이었다. 허기사 고온리사격장에서 직선 거리로 4~5km밖에 안 떨어졌었기 때문이다. 바로 옆인 매향리는 어떠했을지는 알만하다. 이러한 모습에도 어른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우리도 소음 피해보상 받아야지" 그러면 바로 옆 이화리도 못받는데 무슨 피해보상이냐라는 당연하듯 이야기한 시절이다.
예전 수원군공항과 붙어있는 화성시 황계동의 마을 주민들은 비행기의 소음을 애국가로 여기고 살았다고 한다. 그런 시절이었기에 사격장 폐쇄니 피해보상은 언감생심 생각도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부터 시끄러워졌다. 90년대 말부터인가 시작하여 2000년대 초반에 반미시위가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매향리 주민을 이끈 것은 토박이 전만규였고 학창시절 아래로 터울지는 후배여학생의 아버지였다. 아무래도 험한 일에 중심에 있다보니 그를 싼 안 좋은 소문이 난무하였다. 예전에는 개인적으로 문제가 많은가도 했지만 나중에 생각하니 정보기관이 주도한 음해공작이었을 것이다.(의경시절 화성경찰서 정보과 활동을 들은 풍문) 당시 삼괴고등학교 교실에서도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한총련'의 불온성을 연세대사태(1996) 등을 공강시간에 교양으로 틀어주던 시절이었다. 당시 친구들과 이를 보면서 '대학생들이 분별없이 저러니 나라가 개판'이라둥 '나는 대학가면 안 그런다.'는 둥 이야기 꽃을 피웠었다.
그렇게 주민들만이 아닌 대학생들인 한총련과 반미시민단체 등이 합세하여 매향리는 곧 국제적인 반미투쟁지이자 반전운동지로 주목되었다. 일본의 오키나와 미군기지와 비견될 정도로 이슈가 된 것이다. 1999년 한총련 출범식(부산대)에서도 오키나와 반전운동가가 초청되어 오키나와와 매향리가 연대해야한다는 반미성토 연설을 할 정도였다.
의경이 되면서 시위 진압이 주임무라는 것을 알았다. 2001년 이 맘때 신병으로 내던져진 곳이 고온리 사격장이었다. 동네 가까운 곳에 가니 내심 마음이 들떴었다. 백일휴가도 나가기 전이기에 더욱 그랬다. 닭장차로 불린 경찰동원버스를 타고 고온리 기지에 짐을 풀고는 바로 엄한 고참들의 군기에 따라 열지어 방패를 들고 시위대와 대치하였다. 연일 시위대의 수가 최고치를 갈아치우던 때라 그 어느 때보다 긴장감이 컸다. 정문 쪽에서 갑자기 시위대가 나타나 뚫릴 판국이 되자 우리 중대(화성 방범순찰대 279)가 긴급 출동하였다. 한총련과 주민이 한데 섞여 민중가요와 반미구호를 외치고 방패와 곤봉으로 전열을 갖추고 있던 우리 중대에 다가서더니 으싸으싸하며 밀기 시작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한 곳을 향해 양쪽에서 밀고 밀리며 뒤엉켰다. 고참들은 '정신차려' 고함을 지르고 진압헬멧을 연신 치면서 군기를 잡았지만 어느새 시위대로 인한 전열이 무너지고 있었다. 내 방패도 밀려 들어가면서 방패를 잡은 팔이 끼게 되었다. 앞에서 시위대가 밀고 뒤에서 우리 고참들이 미는 상황이 되니 팔이 부러질 상황이었다. 순간 앞을 보니 내 방패를 미는 사람이 대학 후배였다. 무언가 얻어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순간 팔이 어찌되든 가만히 있었다. 그 때 다행히 민노총 한 분이 의경 팔부러지겠다. 그만 밀어라 하면서 사태가 진정되었다. 이렇게 치열했던 매향리 고온리사격장은 결국 2005년 폐쇄되었다.
쿠니사격장 농섬 매향리평화생태공원 : 네이버 블로그
궁평항은 회센터, 인근 섬(입파도, 국화도 등)으로 가는 여객선의 주 출항지로 유명한데 경관으로는 화성시 최대의 모래해안(사구)이 유명하다. 고온항(매향리)에도 짧게 모래해안이 있지만 여기에 비할데는 아니다. 게다가 사구 위로는 병풍처럼 해송도 잘 가꾸어져 있다. 날씨가 좋고 계절이 좋으면 서해안 일몰이 장관(화성8경 궁평 낙조)이라서 차박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 화성방조제가 생기고 조류의 변화가 생겨 해안 모래가 유실되고 있다. 반면에 방조제 앞 바다에 모래톱이 발달하고 있는데 자연의 조화는 사람이 어쩔 수가 없다. 그리고 모래 유실과 함께 해안 곳곳이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잘 살펴보면 대부분 어구 종류들이다. 인간 탐욕이 빚는 자연의 경고이다.
지금은 잊혀졌지만 인근에는 '화성 씨랜드청소년수련원화재사건(1999)'부지도 있다. 그 너머에는 수도권 대표 해양체험관관마을인 백미리 어촌마을이 있다. 백미리 어촌마을 어귀에는 제부도로 이어지는 해안도로가 잘 발달되어 있어서 염전 등 해안풍광을 즐길 수 있다.





2021년 12월 23일 서해랑 제부도해상케이블카가 개통되었다. 제부도에서 육지로 나가는 길은 케이블카 이전에는 육로로 썰물로 물이 빠진 뻘을 가로질러 나갔다. 1993년에 2차선 시멘트 도로가 깔렸고 1988년에 처음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가 났다. 1966년부터는 뻘인 감길에 돌을 쌓아 다녔다.(폭 60cm) 그 이전 제부도 사람들은 겨울이면 짚을 부드럽게 빻아서 발가락을 감싸고 짚신을 신고 제부도 맞은편 서신면 송교리로 나갔는데 이를 '감발'이라 하고 이렇게 나간 길을 '감길'이라고 했다. 바로 이 길이 '제부 모세'이다. 뱃길로는 마산포(송산면 고포리)로 나갔다. 이곳이 바로 1882년 임오군란 후 흥선대원군이 청나라로 납치되었던 곳이고 대하소설 '먼동(홍성원, 1991)'의 배경이다.
총 연장 2.12km의 전곡항에서 제부도를 서해랑 케이블카는 최대 10명이 탈 수 있고 편도로 10분 가량 걸린다. 케이블카 선택과 요금은 바닥의 투명이냐 아니냐로 구분되고 화성시민이면 비용이 할인된다. 왕복으로 할 경우 보통 전곡항 승강장을 이용하나 평일에도 주차장이 매우 혼잡하다. 제부도 승강장은 한산하다.
서해랑
서해랑 제부도해상케이블카는 전곡항과 제부도를 잇는 새로운 하늘길입니다. 전곡 승강장과 제부 승강장의 거리는 2.12km이며, 캐빈에서 서해 광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www.seohaerang.com
케이블카를 타고 제부도로 갈 때는 그 아래 감길이 한 눈에 들어온다. 물결이 이는 모습에서 서해랑이라는 이름이 지어진 이유가 납득된다. 서해랑은 섬'서(嶼)', 바다'해(海)' 물결'랑(浪)'이 합쳐진 이름이다. 제부도는 한때 제부 모세로 인기에 힘입어 화성시의 대표 관광지였으나 90년말부터 조개구이집의 난립으로 바가지 상혼의 원성이 자자해지며 쇠퇴의 쇠퇴를 거듭하던 곳이다. 그런 이곳이 천지개벽하였다. 바로 소다미술관(화성시 화산동)의 공공디자인을 통해 문화예술의 섬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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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다미술관, 만년제, 안녕리 표석
소다미술관, 만년제 화성에서 자랐지만 종종 화성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처럼 말이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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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daum.net/ilovepk/253
2019 경기만에코뮤지엄 화성에코뮤지엄 제부도
2019 경기만에코뮤지엄 시흥에코뮤지엄연구회 투어(화성에코뮤지엄, 제부도) 시흥에코뮤지엄연구회 2기가 2019년 6월 10일 시흥시 월곶동 시흥 월곶공판장 아트독에서 출범을 하고 그 첫 사업으로
blog.daum.net
전곡항은 해상케이블카가 설치되기 전 요트와 관련해서 특화된 관광지다. 케이블카의 설치로 관광특화에 있어서는 신의 한 수가 된듯하다. 물론 자연생태 등 환경측면에서는 전곡항 고렴산 주변해안절벽이 백악기에 형성된 탄도분지로 송산 공룡알화석지와 이어지는 중요한 지질환경이자, 여러 철새 등이 지나는 길목으로 자연환경문제가 꾸준히 제기된 곳이다. 민간투자사업으로 420억이 투입되었는데 현재까지는 순조롭다.
제부도 승강장에서 해상케이블카를 내리면 아직 주변 정리가 덜 된듯 하다 제부도 동남쪽 해안로는 인도와 차도 등이 정비가 되었지만 오히려 사람들이 많이 걷는 제부도 등대 방향 동북쪽 해안로는 인도가 구비되지 않았다. 남쪽보다 걷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길인데 아직도 정비가 되지 않아 아쉽다. 이렇듯 케이블카가 동쪽 제부도 감길 입구에 있지만 차라리 제부도 정상에 설치되었더라면 어땠을까 아쉽다. 환경상.. 건축상.. 안전상..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추측은 하나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다.
공공디자인이 시작되는 제부도 해안산책로(제비꼬리길)를 걸어 완주하는 것은 차후로 미루고 보트 선착장(제부 마리나)을 지나 있는 앵커커피를 들려 제부리카노를 들이킨다. 기존의 커피에 들어가는 물보다 염분을 높인 물은 그 차이로 이미지와 맛을 더하는데 청량감 있고 달고, 짜고, 쓰며 맛있다. 길손들이 제부도 한바퀴 돌고 마시면 떨어진 당과 염분을 보충할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 상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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