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샘의 역사나들이(답사) 232

시흥시 문명석, 조덕준 자선비

시흥시 문명석, 조덕준 자선비 시흥시 능곡동 영모재 공원은 영화 '광해'로 잘 알려진 광해군의 국구 류자신의 묘역이다. 문화류씨의 선영으로 시흥시에서는 오래된 가옥인 재실 영모재가 위치한다. 그 한켠에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그 끝자락 산 아래 문명성, 조덕준 자선비와 낭정호 송덕비가 위치한다. 이곳은 능곡동에 살던 원주민 이주단지로 이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바로 류자신 신도비이다. 고개를 돌린 귀부의 당당함과 장엄함에 눈길이 간다. 다만 현재는 쌍룡쟁주라고 해서 용 두 마리가 여의주를 두고 다투는 모습의 이수부분만 잘 보이고 귀부는 난간석에 의해 잘 보이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문명석, 조덕준 자선기념비와 낭정호 송덕비는 이리저리 자리를 못잡고 떠돌던 비석이다. 현재 영모재 공원에 있..

논산 명재 고택

논산 명재 고택 2019. 4. 9.(화) 한 시대를 살펴볼 때 그 시대의 인물이 시대를 말한다. 그렇다면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은 어떻게 규정되야 하는가? 조선후기 개국 초부터 있었던 정치세력의 양상은 논산 명재 고택의 주인공이 시대를 아우를 때 첨예한 대립을 넘어 충역을 다투는 피비린내를 겪어야 했다. 그 시대가 있기까지 흐름을 '우리 궁궐 이야기'의 주인공 홍순민 교수의 페이스북 글을 통 해 살펴본다. 시비인가, 정사인가, 충역인가? 2017. 3. 12. 지금 조선정치사를 개관하는 까닭 조선왕조를 개창한 세력은 당연히 권력집단이 되었다. 그들은 서로 싸워서 결국 권력이 임금과 임금을 옹위하는 소수 인물들에게 집중되었다. 이들을 훈구파라고 한다. 임금과 훈구파의 독단에 대해서 문제제기하고 대두하는..

수암마을전시관

수암마을전시관 수암마을전시관은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에 위치한 곳으로 수암경로당을 새롭게 단장하여 재탄생한 마을전시관이다. 현재 3.1운동 100주년 기념 기획전 '1919.3.30 수암 秀岩'을 열고 있다. 전시는 크게 1층에 안내 겸 수암갤러리, 2층에 수암면의 역사 1실과 3.1운동 기획전 1실이 있다. 2층에 오르는 계단 벽에는 수암동의 주요 역사를 표기하였다. 수암동은 과거 안산의 행정 중심지로 안산 관아가 있었다. 지금도 안산 관아의 중요 건물인 객사가 복원되어 있고 그 옆에 3.1운동 당시 수암면사무소로 사용되던 터가 발굴되어 있다. 그 서쪽편에 수암마을전시관이 들어서있다. 작은 전시관이지만 수암동의 역사와 마을의 이야기를 감각적으로 아주 쉽게 전시하고 있어서 길손이나 주민들이 부담 없이 찾아..

[동네답사] 농촌진흥청 농업기술역사관

농촌진흥청 농업기술역사관 전라북도 전주시 혁신도시 지구로 2014년 7월 이전 한 옛 농촌진흥청 본청 건물에는 현재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중부작물부가 있고 그곳에 농업기술역사관이 있다. 작은 전시실이지만 우리 농업에 대한 기본적인 역사와 농촌진흥청의 과거와 오늘, 미래를 보여주는 곳이다. 농촌진흥청이 이전되었지만 그 청사를 보존하여 시민에게 열린 공간이자, 교육 공간으로 연 농업기술역사관의 존재는 매우 반갑다. 여기저기 농촌진흥청의 부속기관 건물들이 사라지고 있는 지금 그 존재자체는 더욱 더 소중하다. 농업기술역사관은 작지만 시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전시와 농촌진흥청이 위치하게 된 것이 조선시대 정조가 주목하였던 수원이라는 역사성을 잘 보여준다. 다만 이러한 장소가 있는지 홍보나 알림이 매우..

시흥시 '독립지사 윤동욱 기념비'

1919년 3.1운동 당시 시흥지역은 3월 30일 수암면에서 윤동욱 지사와 윤병소, 홍순칠, 유익수, 이봉문, 김병권 지사 등으로 촉발된 만세운동이 주민 2천여명이 참여하는 시흥지역 최대 규모의 만세운동을 벌였다(비석거리). 당시 윤동욱 지사는 수암경찰관주재소의 순사 임건호에게 “당신도 조선인이니 만세를 부르라”라고 권유하였으며, 만세운동 내내 평화적 시위가 되도록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시흥지역 3.1만세시위는 군자면으로 이어져 4월 4일 김천복, 강은식 지사의 주도 아래 군자면사무소 일대에서 주민 천여명이 넘는 대규모 만세시위를 벌였고, 4월 6일에는 7일에 구 석곡산대장터에서 권희, 장수산 지사가 만세운동을 모의하였으나 4월 3일 영등포에서 파견된 일제 군경에 의해 체포되어 무산되었다. ..

풍양군 장선징 묘

풍양군 장선징 묘(豊陽君 張善澂 墓) 우리 나라에 본디 현명한 국구(國舅)가 많으나, 문장과 공업(功業)의 성대함으로는 신풍 부원군(新豊府院君)만한 이가 없다. 숭릉(崇陵)166) 어필(御筆) 신도비(神道碑)의 성대한 유적을 추모하니 배나 슬픈 생각이 든다. 고 부원군 장유(張維)와 영가 부부인(永嘉府夫人) 김씨(金氏)의 묘소에 승지를 보내어 치제하도록 하라. 그리고 고 판서 장선징(張善澂)에게도 똑같이 치유(致侑)하도록 하라."(我朝固多賢國舅, 而文章功業之盛, 未有如新豐。 追惟崇陵御筆神道之盛蹟, 一倍愴想。 故府院君張維、永嘉府夫人 金氏墓, 遣承旨致祭。 故判書張善澂, 一體侑之。-정조실록 47권, 정조 21년 8월 17일 계축 1797년) 장선징(1614~1678)은 효종의 국구인 신풍부원군 장유의 아들이자..

근현대 농업의 산실 수원(농림학교, 수원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4

근현대 농업의 산실 수원 2019. 3. 3, 3. 9(2일 2차례 답사) 농촌진흥청과 함께 한국농업 발전을 이끈 것은 수원에 위치한 서울대학교 농과대학(1992년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개칭), 일명 '수원 농대'이다. 원래 이곳은 전신인 농상공학교가 1904년 서울에서 개교하고 1907년 농림학교로 분리되어 수원으로 옮긴다. 이때부터 수원시대가 시작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 수원농림전문학교 등 교명이 바뀌다 해방후 1946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으로 정식 설치되면서 바야흐로 수원 농대의 역사를 열었던 학문의 전당이다. 그러나 2003년 9월 수원의 캠퍼스를 떠나 서울의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농업대학이 가지는 위상과 의미가 퇴색하였다. 옮겨간 이후도 농업생명과학대학으로 실질적인 연구가 필요하여 여전히..

근현대 농업의 산실 수원(축만제[서호], 항미정) 3

근현대 농업의 산실 수원 2019. 3. 3, 3. 9(2일 2차례 답사) 전근대 수원은 화성시, 오산시까지 아우르는 큰 고을이었다. 수원(水原)이라는 한자 명을 보더라도 물이 풍부한 것을 알 수 있는데, 현재 수원시와 화성시 등에는 많은 저수지들이 즐비하다. 삼한시대 모수국(牟水國) '벌물'의 뜻으로 '수원'의 뜻인 '물벌'과 같다. '모수'도 물을 뜻하고 고구려의 '매홀(買忽)'도 물을 뜻하는 것처럼 고려 때 '수성(水城)', '수주(水州)'에서 현재의 수원으로 변천한 명실공히 물의 도시가 수원이다. 이런 수원이 근현대 농업에서 중요한 변화를 맞는다. 조선후기 정조가 화성행행을 하며, 화산에 아버지 장헌세자묘(현륭원, 현재 융릉)를 천봉하고, 이어 화성행궁과 화성성곽을 연이어 축조하였다. 또한 신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