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샘의 역사나들이(답사)

故 제정구 선생 20주기 추모특별전 가짐 없는 큰 자유

달이선생 2019. 5. 20. 08:00

 

 

 

故 제정구 선생 20주기 추모특별전 '가짐 없는 큰 자유'

2019.2.9~8.15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박물관 기획전시실

 

 

  제정구 선생(諸廷坵, 1944~1999)은 경상남도 고성군 대가면 척정리 자실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어린 시절을 빼고 삶의 방향성을 잡고 살았던 중요한 터전이 있다면 지금은 없어진 서울 청계천 판자촌과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의 복음자리이다. 복음자리도 개발의 바람을 피하지 못하고 현재는 터(휴먼시아 아파트)에 복음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주변으로 정신을 살려 복지사업을 하는 사단법인 복음자리와 작은자리 복지관(옆 복음자리에 있던 기념비를 옮겨와 세우고 작은 공원인 '제정구 생명마당'을 조성)이 있다. 

  제정구 선생이 본격 빈민운동가의 삶을 시작하고 전기가 되었던 청계천과 달리 시흥시는 제정구 선생이 빈민운동의 제도적, 정치적 방향성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나아간 곳이다. 그래서 시흥에서의 삶은 시작부터 드라마였다. 청계천에서 무조건 내몰린 빈민들을 조직해서 김수환 추기경의 도움으로 독일 미제레올 선교회의 융자를 받아 동반자 정일우 신부(미국 태생의 가톨릭 선교사 미국명 존 데일리)와 함께 보금자리로 찾은 곳이 바로 당시 시흥군 소래면 신천리 33번지 지금의 신천동이다.

 

 

 

(출처 : 시흥시사8, 시흥의 도시공간, 도시민의 체험과 기억,

제4부 시흥지역 도시빈민의 삶과 문화 1장 보금자리를 일군 '복음자리' 사람들 2. 복음자리마을의 형성과 삶 351쪽)

 

  당시 신천리 포도밭에 건설 중인 복음자리 마을 흑백사진에서 김수환 추기경과 젊은 제정구 선생이 작업복 차림으로 둘러 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 뒤로는 신천동 어디서나 보이는 소래산이 흐릿하다.  

  정부에서는 청계천 판자촌 주민들이 골칫거리였다. 이미 박정희 정부는 1971년 광주대단지 사건으로 곤욕을 치룬 후였기 때문에 이들의 문제를 가급적이면 조용하게 처리하고 싶었다. 서슬퍼런 중앙정보부의 압박에도 조금도 굴하지 않았던 제정구 선생은 단판을 지어 중정의 협조로 이끌어내었다. 주민 이주를 위해 군용차량이 지원되었고, 복음자리 터를 찾을 때 중정직원과 차를 제공받았다. 당시를 술회한 자서전 '가짐 없는 큰 자유'에는 당시 중정과의 일화가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대단위 이주에 다행히 중정 고위 관료가 매우 협조적이었는데 그 관료가 2차장을 지낸 전재덕이다. 제정구 선생은 그를 ?분으로 존칭으로 쓰고 고마움을 표현하였는데 무슨 인연인지 그의 이력에서 해방전 임시정부 한국광복군을 역임한 애국지사였던 것이다. 사실 이승만, 박정희 정권 내내 친일 부역자가 기득권을 이루는 가운데서도 독립운동을 하고 독재정권이었지만 애국이란 신념을 가지고 국가발전에 나섰던 인물들이 있는데, 전재덕도 그런 사람이었다. 세상에 많은 사람, 많은 일이 있는데 모두가 재야대통령 장준하의 삶만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여간 이렇게 하여 시흥군 신천리에는 한국 최초의 대단위 빈민이주단지인 복음자리(1977)가 건설되고 뜻밖에 일이 벌어졌다. 독일 미제레올 선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복음자리 마을이 융자금을 모두 갚은 것이다. 사실 선교회 입장에선 자립을 목적으로 융자로 사업을 하였지만 저개발 국가에서 융자금을 갚은 전례가 없었다. 너무나도 뜻깊은 사례가 되면서 선교회는 다시 이 돈을 복음자리로 돌려보냈다. 그래서 제2의 복음자리 사업을 펴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 철거민을 위한 시흥군 신천리 한독주택, 목화연립 건축 사업이 연 이어 진행되어 이주단지가 들어섰다. 이러한 시흥에서의 일은 우리나라 사회주택의 원형이자, 경제적 기반이 없는 주민들이 자신의 경제적 자립을 이룬 한국 최초이자 세계최초의 자립, 자활의 역사가 시작 된 것이다. 거기에 주민 경제 자립을 돕고자 금융협동조합인 '복음신협'이 창립되면서 복음자리 공동체의 경제기반이 더욱 탄탄해졌다.  

  이곳에서 제정구는 도시형 마을공동체를 구현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제도적으로 덜 가진 사람들이 주거권을 획득하고  당당히 사회주역으로 거득날 수 있도록 전문가를 육성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빈민문제연구소가 1985년에 발족한다. 후신이 도시빈민연구소로 이어지고 이후 확대 발전한 한국도시연구소가 그것이다. 여기서 나온 걸출한 인물이 현재 청와대 정책실장인 김수현이다. 

  이렇듯 시흥에서 제정구는 또 다른 시작을 했다. 바로 사회시스템 연구뿐 아니 제도적 발전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회제도가 갖춰져야 하는 것으로 이는 최소한 법률로 가능하며, 법률을 입안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로 나아가야 하는 것을 고민하였다. 결국 주변에서 엄청난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흥에서 국회의원을 시작하여 국회의원으로 삶을 마감하였다.   

  그로부터 20년이다. 서울에서 시흥에서 왜 그리 많은 사람들이 멀리 고성까지 찾아 오는지 놀라웠다는 고성의 고향사람들, 20년 동안 제정구기념사업회(박재천 상임이사)와 사)복음자리(신명자 이사장), 제정구장학회(전 박병구 상임이사)에서 꾸준하게 진행했던 추모기행이 올 해를 마지막으로 끝났다. 그간 제정구와 인연이 되었던 유홍준 교수의 답사가 곁들여져 문화유산답사로 20년의 추모기행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숨은 원동력이었다.

  그래도 가장 큰 결과는 고성사람들이 고성의 인물로 제정구의 발견이었다. 제정구의 삶과 서울, 시흥에서의 업적을 통해 고성의 가치와 정신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민간 차원의 기념사업회가 고성오광대보존회를 중심으로 꾸려졌고, 이어 고성군 차원에서 제정구 선양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한 가시적 결과가 이번 '가짐 없는 큰 자유 전시'도 포함된다. 향후 고성군에서는 고향 대가면 대가저수지에 효문화 연꽃테마공원을 조성하고, 일원에 '고 제정구 선생 커뮤니티센터'를 개관하기로 하였다. 이미 군에서는 척정리 고향 생가를 보수, 복원하였다. 그리고 묘소 앞에도 안내판을 세웠다.

  고성군에서 제정구 선생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선 우리나라 성씨 중 제씨가 드문데 그 중 고성군은 제씨 동족촌(제정구 선생 문중 관련 야기는 이 블로그 2011년 12월 1일자 '빛을 본다. '남해기행 고성 자실마을 제정구 선생 묘와 생가'에서 참조)과 그 유적이 많이 있으며, 지역사회에 영향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한국현대사의 중요한 인물인 제정구가 이곳 제씨에서 나왔다는 것은 문중을 넘어 지역인 고성군의 자랑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래서인지 고성읍 상점 여러곳을 다니며, 제정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니 거의 가 제정구 선생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이번 특별전은 고성군의 고성박물관에서 개최한 것으로 고성탈박물관 남진아 학예사의 기획과 전시로 이루어졌다. 유홍준 교수의 제자이기도 한 남진아 학예사는 그간 서울 청계천박물관의 특별기획전을 참고하고 서울의 제정구기념사업회와 복음자리 신명자 이사장 등을 찾아 자료 조사 및 기획하여 제정구 일생에 대해서 조명을 하였다. 특히 나고 자란 고성에 대한 기억과 자취에 크게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제정구 선생의 부인 신명자 이사장은

 "남진아 학예사는 우리 제정구 사람도 아니면서 제정구를 잘 드러내 줬다. 건축을 한 한 지인은 복음자리 건설일지가 전시되어 있고 많은 부분 중 딱 그 부분을 펼쳐 놓은 것에서 특별히 감동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처럼 우리도 모르고 지나치는 것도 잡아낼 정도로 남진아 학예사가 들인 공로가 크다."고 하였다.

  이러한 뜻깊은 전시는 당초 4월 15일까지 열기로 하였으나 8월 15일까지 연장하였다. 9월에는 시흥시에서도 시흥문화원과 사)복음자리, 제정구장학회와 협력하여 고성박물관 초대전 형식으로 개최할 예정이다.

  전시구성은 '개구쟁이 유년 시절을 지나서'라는 주제로 고성과 가계를 중심으로 전시를 하고 이어 '판자촌을 만나다(청계천 시절)',  '함께 살아가는 마을 공동체의 꿈(시흥 복음자리)', '불 꺼지지 않는 방', '영혼의 단짝이자 스승인, 정일우 신부님',  '가족과 함께한 일상', '꺼지지 않을 불씨'로 주제 별 안내하는 판넬과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부대 시설로 함께했던 지인들의 채록 영상과 사)제정구기념사업회에서 펴낸 제정구 선생 책자 아카이브 열람실, 그리고 KBS가 2003년 제작 방영한 '인물현대사 빈민속으로 제정구 편'을 영상실에서 계속 상영하고 있다.

 

 

 

 

 

 

 

 

 

 

 

 

 

 

 

 

 

 

 

 

 

 

 

 

 

 

 

 

 

 

 

 

 

 

 

 

 

 

 

 

 

 

 

 

 

 

 

 

 

 

 

 

 

 

 

 

 

 

 

 

 

 

 

 

 

 

 

 

 

 

 

 

 

 

 

 

 

 

 

 

 

 

 

 

 

 

 

 

 

이곳 영상실에서는 KBS 인물현대사 '빈민속으로' 제정구 편(2003)이 상영되고 있다. 문성근 나레이션

 

 

 

사)제정구기념사업회에서 그간 펴낸 각종 제정구 선생 관련 책자를 자유열람 하도록 하고 있다.

 

 

 

높은 하늘과 높은 산을 잣대로 이상을 꿈꿨던 제정구의 고향 자실마을

그곳 작은 산중턱에 제정구 선생의 묘소가 있다. 그의 대쪽 같은 성품을 보여주듯 대나무숲이 병풍처럼 앞에 둘러있어 이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