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샘의 역사나들이(답사)

시흥시 '독립지사 장수산 기념비'

달이선생 2019. 6. 14. 16:00

   2019614일 덕수장씨 선조의 터전인 시흥시 장곡동 매꼴공원에 '독립지사 장수산 기념비'를 건립하고 제막식을 하였다. 장곡동 매꼴과 안골은 조선조 장유(張維, 1587~1638) 선생과 인선왕후(仁宣王后, 효종비)를 배출한 명문가 덕수장씨의 오랜 세거마을이고 세장지가 있던 곳이다. 그래서 이곳 매꼴공원에는 인선왕후를 기념하는 여러 기념물이 조성되어 있고 다년간 인선왕후 축제가 열리고 있다. 장수산(순한) 지사는 장유 선생의 동생 덕창군 장신(張紳)의 후손이다.  

   19193.1운동 당시 군자면에서는 군자면사무소가 위치한 거모리를 중심으로 주민 1천 여 명이 넘는 대규모 시위가 44일에 발발하였다. 이는 전날 영등포로부터 일제순사 6, 군인 7명이 파견되어 경비가 삼엄한 가운데서도 떨쳐 일어난 군자면민의 민족독립에 대한 열망이자 용기 있는 의거였다.

   이런 가운데 장곡리 출신의 장수산 지사는 장현리의 권희(權憘) 지사와 함께 191947일 군자면 옛 시장인 석곡산대장터에 모여 독립만세 시위를 결행하고자 모의 하였다. 거사 장소인 구시장은 구장터로 석곡산대장(산대장, 시흥시 거모동과 안산시 선부2동 경계로 서안산나들목 부근)이다. 특히 이곳은 을미사변과 단발령으로 인해 1896년 2월 안산군민들이 봉기하여 정부의 친일적 행태를 성토하는 대규모의 민중집회가 이루어졌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장수산 지사는 동지 권희 지사가 쓴 비밀통고秘密通告라는 제목의 격문을 마을 주민들이 돌려보게 하였는데, 그 내용은 조선이 일본에 합병된 이래로 받은 10년간의 학정에서 벗어나 독립하려 한다. 우리들은 이 기쁨에 대하여 오는 7일 군자면 옛 시장에서 조선독립만세를 같이 부르려고 한다. 각 리민(里民)은 구한국 국기 1개씩을 가지고 와서 모이라는 것이었다. 이 격문을 장수산 지사는 장곡리는 물론 친구 이종형 등을 통해 이웃의 월곶리까지 전달하게 하였으나,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어 47일에 계획한 만세운동은 실행에 옮겨지지 못하였다. 당시 20세의 청년이었던 장수산 지사는 권희 지사와 함께 일제에 체포되었고, 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515일 경성지방법원 판사 가나카와 히로키치[金川廣吉]는 장수산과 권희지사에게 각각 징역 10월과 1년을 선고하였다. 9월에 고등법원에 항소하였으나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면서 11개월 9일간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가장 치욕스러웠던 것은 일제의 태형과 모진 고문(거꾸로 매달아 고추가루 탄 물을 주전자로 얼굴에 붇기 등)만이 아닌 그 고문을 이행한 사람이 조선인 순사보였다는 것이다.

   이후 일제의 감시(불령선인)를 한동안 피해지냈는데, 그래도 이 시기 주목되는 활동은 한학자였던 장수산 지사가 일제강점기 지역의 문인들이 결성한 연성음사가 1927년에 개최한 전국 한시 현상 공모(동아일보)에서 전당홍(錢塘紅)으로 5등에 입상한 것이다. 전당홍(錢塘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느 해 사신을 따라 전당을 떠났는가

하얀 꽃잎 끝이 붉어 여느 꽃과 다르구나

반도의 가을 빛을 연잎(瓣扇)으로 가리우고

명나라 바람의 기운이 꽃잎 끝에 무성하네

연못으로 이어지는 향기, 시제로 걸렸으니

동림에(가가운, 과 같은) 시 모임 좋고

오래도록 심어져 화천(군파)에서 받들어 사랑하고 보호하니

연성은 이웃 고을과 함께 가히 꽃 피울 수 있으리

 

하년수사출전당(何年隨使出錢塘) 판백첨홍이중방(瓣白尖紅衆芳)

반도추광장판선(半島秋光藏瓣扇) 대명풍기보첨방(大明風氣葆尖房)

향연태석현제미(香連太液懸題美) 색근동림결사량(色近東林結社良)

구식화천봉애호(久植花川逢愛護) 연성가작병주향(蓮城可作幷州鄕)

*화천(안동권씨 화천군파)

*출처 : 연성음사제일회집, 시흥시 향토사료실 김치성 상임위원이 시흥의 인물과 행적장수산 조 내용 각색을 시흥향토문화연구소장 유한형 각색. 한시 5행 연(), ()자 오기 정정

 

 

   해방 이후에는 장곡초등학교의 설립에 앞장섰던 교육운동가였다. 그리고 외아들 장철수(민속학자)의 뒷바라지를 위해 인천 부평으로 이주하여 미군부대 군속을 하며 가르쳤다. 장수산 지사의 휘는 후에 개명을 하여 현재는 장순한이다. 여기에는 슬하 차녀, 삼녀인 성남(星男, 인천거주), 승남(性男, 미국거주)의 말에 의하면 일제로 피체되어 조사를 받던 중 일제가 장순한이라는 이름을 발음하지 못해서 장수산이라고 부르게 됐고 이후 장수산을 본인이 가장 잘 쓴 이름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상당히 엄하셨다는 것이다. 가부장 중심의 가정윤리를 중시하였다. 종손자 장경태 역시 젊은 시절 장손이라고 방학이면 불러다 앉혀놓고 축문 쓰는 법을 가르치고 동네 상이 나자 염을 하는 것도 친람하게 할 정도로 집안에서 장손의 역할에 대한 엄한 가르침을 주었다고 한다.

   1981년 불의의 사고로 명을 달리하자 처음 매꼴 상양산 선영에 묘소를 마련하였다가 후손들이 지금의 시흥시 거모동 11-2에 자리를 정해 모셨다. 시와 문중에서는 안내판 등 묘소를 정비하여 관리하고 있다. 이렇듯 장수산 지사의 묘는 시흥지역의 5명의 애국지사 중 윤동욱 지사와 함께 지역에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1990년 정부는 장수산 지사의 민족독립의 공헌을 인정하여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하였다. 우리 시흥시에서는 장수산 지사를 숭고한 독립정신을 기려 처음 1995년 군자초등학교 후문 옛 군자면사무소 자리에 독립운동유적지표석을 세워 기념하는 한편, 2012년부터는 시흥시 차원의 3.1절 기념식이 시작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더욱이 2015년에는 시흥시 삼일독립운동 기념비를 세워 시흥지역 3.1운동을 기리고 있다. 한편, 시흥시에서는 관내 독립지사 기념비 건립 계획을 수립하여 권희, 김천복, 윤동욱, 윤병소, 장수산 지사의 기념비를 건립하기로 하고 2018717일 김천복 지사, 2019329일 윤동욱 지사의 기념비를 건립하고 제막하였다.

 

 

 

 

참고자료

이병권, 2017시흥시(始興市) 장시(場市)와 민족해방운동(民族解放運動),京畿鄕土史學』『京畿鄕土史學22, 京畿道文化院聯合會.

이병권, 2015시흥군(始興群) 수암면(秀岩面) 31운동과 윤동욱(尹東旭)의 사상(思想),京畿鄕土史學』『京畿鄕土史學20, 京畿道文化院聯合會.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獨立運動史資料集 5.

기전문화재연구원, 시흥시의 역사와 문화유적,기전문화재연구원 학술총서 제2, 2000.

시흥시사편찬위원회, 시흥의 전통시대, 시흥시사2, 2007.

시흥문화원, 시흥지역의 3.1운동과 독립지사 이야기, 2019.

시흥문화원, 시흥시 지명유래(始興市地名由來), 2006.

안산문화원·안산향토사연구소, 2008 안산지역 31독립만세운동 연구조사 보고서.

시흥시사편찬위원회, 2007시흥의 근현대,시흥시사3 .

국가보훈처, 1995 독립운동유공자 공적조사서.

독립유공자(공훈록) www.mpva.go.kr.

디지털시흥문화대전(http://siheung.grandculture.net/siheung)

디지털안산문화대전(ansan.grandculture.net)

시흥시 사이버역사관(history.siheung.go.kr)

경기도메모리(memory.library.kr)

    









기념비가 위치한 곳은 매꼴공원으로 인선왕후 기념공원이기도 하다. 공원 위쪽에 인선왕후 동상이 있고 그 아래쪽에 기념비를 세웠다.








기념비를 만든 김순겸 작가(기념비 작품 설명)


차녀 장성남, 삼녀 장승남 등 직계유족 기념촬영




인터뷰 중인 삼녀 장승남(심우일 인터뷰)


 


생전 장수산 지사 모습(아래, 삼녀 장승남 소장 사진)













독립지사 장수산 기념비 제막 기념사

 

존경하는 시흥시민 여러분,

그리고 임병택 시장님, 김태경 시의장님, 함진규 국회의원님, 자유한국당 시흥을 당협위원회 장재철 위원장님, 시의회 송미희 자치행정위원장님

그리고 3·1운동 독립유공자와 내외귀빈 여러분!

장수산 지사 기념비 제막식에 참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1919년 일제에 맞서 민족독립을 위해 떨쳐 일어났던 3.1운동의 주역이신 장수산 지사의 기념비를 제막하는 날입니다.

민족애로 3.1운동에 몸 바친 고인의 육친인 따님 장성남님 몸이 불편하신데도 불구하고 참석하셨습니다. 그리고 멀리 미국에서 오신 장승남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지역에서 3.1정신을 가풍으로 일궈 오신 덕수장씨 문중과 특히 장경태, 장경창 선생님께 심심한 감사 인사드립니다.

특별히 올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되는 매우 뜻깊은 해입니다. 우리 문화원에서는 이를 기념하여 독립유공자 다섯 분을 기리고 기념하는 의미에서 소책자 시흥지역의 3.1운동과 독립지사 이야기를 펴냈습니다. 이러한 역사와 여러 독립운동가의 공적과 함께 친일부역자에 대해서도 널리 알리고자 전시판넬도 제작하여 지금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업에 도움을 주신 임병택 시장님과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시흥문화원은 장수산 지사님과 여러 애국지사님들의 독립정신과 시흥의 정신이 길이길이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9614

시흥문화원장 김영기



독립지사 장수산 기념비 제막 답사


저는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으며 이번 제막식 횅사에 참석하게 된 장수산 선생의 13녀중 셋째딸 장승남입니다.

인사 드리겠습니다

우리의 삶은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지난번 아버님의 기념비가 장곡동에 세워진다는 연락을 받고 저는 얼마나 기뻣는지 모릅니다.

특히 기념비 제막 행사를 성대하게 마련하고 축하해 주신 시흥시 임병택 시장님께 감사한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공적비 제작에 여러가지 어려운 점도 많았겠지만 이와같이 멋진 기념비를 세우기 위해 추진해 주신 시흥시 문화원과 관계공무원 및 기념비 제작 작가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특히 이 자리가 이루어지도록 시흥시 애국지사 발굴과 선양사업에 노력해 주신 심우일 교감선생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를 많이 드립니다.

또한 아버님 기념비 제막식을 함께 축하 해 주신 모든 종친 분들과 마을 어르신들께도 정성과 고마움을 가슴속 깊이 새기면서 살아가겠습니다.

저희 아버님은 저희들을 키우기 위하여 미군부대에서 어려운 뒤처리 일을 하시며 교육에도 관심이 많으셔서 장곡초등학교를 세우는데도 많은 일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의 아버님께서는 항상 국가에 봉사하는 마음을 갖고 배워야 산다” “열심히 공부해라하셨던 말씀도 생각이 납니다.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자식들을 상급학교에 진학시키려고 노력하셨던 아버님의 말씀과 행동이 70이 넘은 이제야 생각나게 하는 자리인 것 같습니다.

아버님께서 독립운동을 하셨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일제시대에 숨어 지내시던 이야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아버님은 돌아가셨기만 이제는 하늘나라에서 숨어 지내시지 말고 크게 웃으시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또한 아버님의 공덕비를 세우려고 나름대로 열심히 사시다가 너무도 일찍 돌아가신 철수 오빠도 생각이 납니다.

저희 오빠가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하는 생각도 납니다.

저희들이 능력과 괸심이 부족하여 이루지 못한 일을 이룰수 있게 힘써주신 임병택 시흥시장님과 모든 분들께 앞으로 아버님의 좌우명을 기억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드리면서 다시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19614

유족대표 장승남

(덕수장씨 안산종친회장 장경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