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샘의 역사나들이(답사)

화성 3.1운동 만세길, 방문자센터

달이선생 2019. 4. 27. 10:00

  화성 3.1운동 만세길, 방문자센터  2019. 4. 27.(토)
  화성시는 1919년 당시 3.1운동이 격렬하게 전개되었던 지역이다. 특히 화성시 우정읍과 장안면은 예로부터 쌍부현, 삼괴 등으로 불리며, 한 지역을 이루고 있는데 이곳에서 일어난 시위가 상당히 격렬하였다. 비폭력 만세운동이 대명사가 된 3.1운동이지만 삼괴지역의 3.1운동은 일제타도를 전면으로 한 철저한 항쟁이었다. 따라서 학계에서도 '화수리 항쟁(수원대 박환)'으로 불린 정도로 많은 주민이 참여하여 일제의 무단통치 하부기관인 우정, 장안면사무소와 화수경찰관주재소를 불태우고 일본인 순사 가와바타 토요타로를 처단하였던 의미있는 항쟁이었다.   화성시는 이러한 삼괴지역 역사성을 기리고 앞으로 다양한 3.1운동 사업을 전개하고자 

 

2019년 4월 6일.(토) 10시 화성시 우정읍 화수리에서 '화성 3.1운동 만세길' 개통식을 열고, 만세길 방문자센터(화성시 우정읍 화수리 산61-1))의 문을 열었다. 만세길은 지역의 중심이 되는 쌍봉산을 중심으로 주위 총 길이 31km 둘레길로 1919년 당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던 길이다. 특히 방문객의 만세길 걷기를 안내하는 방문자센터가 위치한 곳은 1919년 삼괴지역을 담당하였던 일본인 순사 가와바타를 처단한 장소이다.    4월3일, 폭민 약 천명이 장안 우정양면사무소를 파괴해 서류 전부를 소각, 폐기해 면장을 데리고 갔다. 한층 더 그 수가 증가해 약2천명이 되어 화수경찰관 주재소(내지인 순경 1명, 조선인 순경보 3명)(수원 서남쪽 8리)를 덮쳐, 가와바타 순경이 발포해 항거 했지만, 총알이 떨어져 마지막에는 참살되어 그 순경의 시체는 51개소의 흉터를 남겨, 이비(귀와 코)를 깎아 음구(陰具)를 절단 하는 등, 잔혹을 가해 게다가 주재소에 방화 병기를 탈취해 그 지역을 떠났다.-

「경기도 수원 안성지방 특별검거반의 행동」『독립운동가자료 기타보고서』한국독립운동사 정보시스템 참조.

 

  경기도 수원군 우정, 장안면의 3.1운동에 관한 일제 특별검거반의 보고이다. 1919년 당시 수원지역은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 때 이루어졌던 현재의 수원과 오산, 화성 전지역과 평택, 의왕, 군포, 안산 일부지역을 아우르는 경기남부에서 큰 지역이다. 이곳에서 3.1만세운동이 평화로운 단순 시위를 넘어서 일제의 면사무소와 주재소를 조직적으로 파괴하고 일본인 순사를 처단하는 등 격렬한 항쟁이 전개되었다.

  특히 현 화성 우정읍과 장안면지역은 삼괴지역으로 불리며 위와 같이 주민 2천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만세시위에 나와 적극적으로 저항하여 일본당국을 놀라게 하였다. 따라서 삼괴지역에 대하여 2차례의 대대적 토벌과 검거작전을 펴는가 하면 우리가 잘 아는 참혹한 '제암리 학살사건'을 저지르게 되는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사실 제암리 사건이 일어나게 된 원인이 천도교와 기독교의 불령선인(不逞鮮人:일제에 협력하지 않는 불량한 조선인),1919년 3월 31일 발안장터 시위로 인한 발생한 사건으로 주로 추정되었었는데 최근에 일본측 자료가 많이 발굴되고 연구가 진척되면서 삼괴지역인 우정, 장안면의 시위로 인해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옛 수원군 지역이자 현 화성의 3.1운동이라고 하면 제일 많이 알려진 것이 제암리 학살사건인데 이 사건이 널리 국내외에 알려진 것은 당시 우정, 장안지역의 항쟁이후 일제 검거반이 마을 곳곳을 불사르고 사람들을 죽이거나 체포하며, 피해가 속출하자 일제에 의해 피해를 입은 장안면 수촌리의 수촌교회를 자전거를 타고 찾아가던 선교사 스코필드 박사가 제암리를 지나다가 우연히 만난 사람들에게 듣게 되면서였다. 이렇듯 스코필드 박사는 우정, 장안면 지역의 피해상황을 조사하고자 왔다가 제암리의 만행을 목격한 것이다.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일에 맞춰 평화적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어 시작된 우리 민족독립운동인 3.1운동이 수원지역에 확산되고 그 최고조에 올랐던 우정, 장안면의 수원군 우정, 장안면의 3.1운동의 성격은 먼저 수원지역을 대표하는 대규모 항쟁이었다는 것과 수원지역 3.1운동을 대표하는 제암리 학살사건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점, 그리고 지역 향촌사회의 지도자들이 수원읍과 발안지역의 지도자들과 연계하여 논의하고 주도하였으며, 특히 우정, 장안면의 3.1운동이 천도교인사들과 조직을 중심으로 수원읍내 시위와 3월 31일 발안장날 시위(화성시 팔탄면 가재리 선비 탄운 이정근 주도[개화서당을 운영하며, 왜왕3년을 외치며 일제가 망하고 우리나라가 독립된다고 가르침]로 이어지는 연계상에 있는 중요한 특징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원군 우정,장안면의 3.1운동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알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자란 고향이고 늘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자부심이 되었다. 대학에서 졸업논문으로 제출도 하였고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였었다. 그리고 특히 2012년 4월에 삼괴지역의 3.1운동 유적지를 답사했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나서 이렇게 만세길이 명명되어 조성되고 방문자센터가 생겨나니 너무나 축하하고 반갑다.

  현재 방문자센터의 시설은 화수초등학교(1919년 당시 화수리경찰관주재소 터) 입구이자 화수2리 새터마을 입구 오른쪽에 남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시설과 공간은 우정읍 북부지역의 옛 우정보건지소(1991년 여산송씨 종중에서 희사한 대지, 공덕비 세움)를 리모델링하여 추모탑, 추모벽(화성지역 애국지사 명패)을 통한 추모공간, 쉼터, 사무실, 3.1운동 기념공간(기미독립선언서 조형 공간)과 교육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재밌는 것은 시흥지역 3.1운동의 주역인 윤병소 지사의 이름을 확인한 것이다. 1919년 3월 31일 시흥군 수암면 수암리 비석거리에서 주민 2천 여 명과 평화적 만세운동을 벌이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중 순국한 장본인이다. 윤병소 지사는 당시 시흥군 수암면 능곡리 현재의 시흥시 능곡동에서 살고 있었고, 고향이 수원군 음덕면 현재의 화성시 남양동이다. 윤병소 지사 집안은 병자호란 당시 남양부사로 청병이 침입하자 주변의 근왕병을 모아 싸우다 사로잡혀 청병의 회유에도 절개를 지키다 순국한 충간공 윤계선생의 후손이다. 그래서 남양리에는 1668년(현종9)에 세워진 '윤계선생순절비(송시열 짓고 송준길 씀 전액 민유충)'가 있다. 

  크리 크지 않은 시설이지만 기념탑이 고딕양식의 첨탑을 연상하게 하는 등 추모와 기념, 그리고 쉼터와 안내 기능을 고루 갖춘 공간으로 생각된다. 앞으로 유의미한 성과가 계속이어지길 바란다. 후일 우리 가족 네 식구와 한 번 걸어봐야 겠다.  

 

삼괴지역의 3.1운동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내용은 이 블로그 아래 글을 참조

blog.daum.net/ilovepk/93

 

[3.1절 특별기획] 수원군 우정, 장안면의 3.1운동 현장을 가다

서대문형무소에서..    4월3일, 폭민 약 천명이 장안 우정양면사무소를 파괴해 서류 전부를 소각, 폐기해 면장을 데리고 갔다. 한층 더 그 수가 증가해 약2천명이 되어 화수경찰관 주재소(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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