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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와 싸운 최루백

호랑이와 싸운 효자 최루백   조선시대 윤리서인「삼강행실도」에는 호랑이와 관련된 인물이 나온다. 바로 수원 최씨 최루백(崔婁伯)의 이야기로 호랑이를 잡아 효도를 다한 이야기이다.   “최루백은 고려 시대 수주부(수원)의 호장 최상저에 아들이다. 어느 날 아버지가 사냥을 나갔다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 최루백은 당장 산으로 올라가 그 호랑이를 잡으려고 하였다. 이때 최루백의 나이는 15세에 불과했는데 놀란 어머니가 남편에 이어 아들마저 잃게 될까봐 만류하였다. 이 때 최루백은 ‘어머니! 어떻게 아버지 원수를 갚지 않고 이대로 견딘단 말입니까.’라고하면서 즉시 도끼를 메고 호랑이의 발자국을 따라가니, 산등성이 저만치 호랑이가 사람 하나를 다 먹은 뒤, 배가 불러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최루백은 호랑이 앞..

만주에 산화한 안중근

만주에 산화한 안중근 대한의군 참모중장겸 특파독립대장 및 아령(러시아)지구군사령관 안중근(1879-1910)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崔在亨, 1858- 1920)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에서 발행되는 '해조신문'에 실린 동의회 취지서로 안중근 의사가 최재형, 이범윤, 엄인섭 등과 동의회에 참여하여 의병활동을 하였음으로 말해주는 중요한 사료이다. 이토를 사살하고 러시아 검찰관 앞에서의 예비조사와 이후 관동도독부지방법원 원장 마나베(眞鎬十藏)의 일제법정에 선 안중근 의사는 당시 만국공법(국제법)에 의거하여 자신을 대한의군 참모중장 겸 특파독립대장 및 아령지구군사령관으로서 교전국 군인으로 대우 받길 밝혔다. 이는 단순한 살인 피고가 아닌 전쟁 포로로 대우 받아 현 이토 사살이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닌 우리나..

매천야록(황현)에 보이는 이순신 장군 및 조선의 명신(황희, 송시열 등)

梅泉野錄 卷一上 甲午以前 六五, 我朝名臣, 有以諡而行于世者三人, 曰翼成公則知其爲黃喜(厖村), 曰文翼公則知其爲鄭光弼, 曰忠武公則知其爲李舜臣, 有以封贈者一人, 曰遼東伯則知其爲金應河也。 육십오 번째, 우리조선시대 명신으로서 시호를 가지고서 널리 행세할 수 있는 이는 세 분을 들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