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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옹주, 진안위 유적 묘역

정정옹주, 진안위 유적 묘 유시행 묘(아버지), 유영 묘(동생) 능묘에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 拜陵歸路 저 무성한 무덤을 보고 / 彼菀者阡 옛적의 우애를 생각하니 / 想昔友于 도리어 내가 서글프도다 / 顧予悢然 현위가 오른쪽에 있고 / 賢尉在右 귀주가 왼쪽에 있으니 / 貴主在左 바라건대 능히 흠향할지니 / 尙克歆止 계모와 산과를 바치네 / 溪毛山果 -홍재전서 제24권 / 제문(祭文) 6 진안위(晉安尉) 유적(柳頔)과 정정옹주(貞正翁主)의 묘소에 치제한 글(晉安尉柳頔,貞正翁主墓致祭文) 이 시는 1797년 8월 행행에서 정조대왕이 시흥지역을 행차하면서 현재의 수암동의 안산객사(행궁)에서 머물고 왕족이나 공신들에게 치제를 명하면서 정정옹주에게도 치제와 치제문을 어제로 내린 것이다. 시를 통해 원래 묘는 봉..

영응대군 묘 및 신도비

영응대군 묘 및 신도비 [永膺大君墓-神道碑] 시흥시 군자동 구준물(구지정) 마을에는 군자봉이 있고 그 산자락에 영응대군(永膺大君, 이염[李琰]) 묘가 있다. 영응대군은 세종대왕의 여덟째 왕자로 왕과 소헌왕후 심씨의 사랑을 많이 받은 왕자로 알려져 있다. 묘소와 함께 신도비도 주목되는데, 신도비를 지은이가 우리가 잘 아는 간신 임사홍이다. 임사홍은 아버지 임원중이 당대 문장가로 유명하였고 그 영향으로 글을 잘 지었다. 영응대군의 사위 능성부원군 구수영의 맏딸이 임사홍의 아들 임희재에게 출가한 인연으로 임사홍이 비문을 짓게 되었다. 신도비에는 비각이 없었으나 최근에 세워졌다. 영응대군 묘는 처음 경기도 양주군 건천면 군장리(경기도 양주시) 팔곡산(초장지[初葬址])에 있었으나 1900년(광무 4) 안산군 마유..

백제의 마지막 꽃, 사비 부여

백제의 마지막 꽃, 사비 부여 능산리고분군, 부소산성, 삼충사, 정림사지 흔히 백제는 문화예술이 꽃피운 나라로 삼국 중 제일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견해로 '백제 미'라고 하여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 교수는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15년(기원전 4년) 봄 정월 기록을 인용한다. '작신궁실(作新宮室),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 '새롭게 궁실을 지었는데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제 않다'라는 말이다. 이러한 미적 세계를 알려주는 백제의 문화유산으로는 많지는 않지만 우리들이 찾아 볼 수 있는 몇몇 유산이 있다. 백제의 미소로 익살스런 온화한 웃음띤 부처 '서산용현리마애삼존불'이 있고 탑으로는 미륵사지석탑이 있지만 온전하지 못하고 목탑식으로 잘 보존되어 있는 정림사지오층석탑이 ..

청주한씨 문익공파 묘역(한준겸)

청주한씨 문익공파 묘역 경기도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된 청주한씨 문익공파 묘역은 인조의 장인 한준겸(韓浚謙, 1557~1627)의 시호 문익(文翼)을 따서 그 직계로 아들 한회일, 손자 한이성, 증손자 한두상 묘 등 4대에 걸치 묘역이다. 아래는 조선왕조실록 한준겸의 졸기이다. 영돈녕부사 서평 부원군(西平府院君) 한준겸(韓浚謙)이 졸하였다. 한준겸의 자는 익지(益之)이고 호는 유천(柳川)인데 청주인(淸州人)이다. 풍채가 뛰어나고 기량이 넓으므로 일찍부터 공보(公輔)의 촉망을 지니고 있었다. 일찍이 북방의 관찰사가 되어서는 먼저 《가례》와 《소학》을 간행하여 언서(諺書)로 번역하였고, 또 《의례》를 모방하여 향음주례(鄕飮酒禮)와 향사례(鄕射禮)를 제정하였으며, 외직으로 나가거나 내직으로 들어오거나 근면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