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샘의 역사나들이(답사)

정정옹주, 진안위 유적 묘역

달이선생 2019. 11. 2. 09:00

정정옹주, 진안위 유적 묘

유시행 묘(아버지), 유영 묘(동생)

 

 

능묘에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 拜陵歸路
저 무성한 무덤을 보고 / 彼菀者阡
옛적의 우애를 생각하니 / 想昔友于
도리어 내가 서글프도다 / 顧予悢然
현위가 오른쪽에 있고 / 賢尉在右
귀주가 왼쪽에 있으니 / 貴主在左
바라건대 능히 흠향할지니 / 尙克歆止
계모와 산과를 바치네 / 溪毛山果
-홍재전서 제24권 / 제문(祭文) 6   진안위(晉安尉) 유적(柳頔)과 정정옹주(貞正翁主)의 묘소에 치제한 글(晉安尉柳頔,貞正翁主墓致祭文)

 

  이 시는 1797년 8월 행행에서 정조대왕이 시흥지역을 행차하면서 현재의 수암동의 안산객사(행궁)에서 머물고 왕족이나 공신들에게 치제를 명하면서 정정옹주에게도 치제와 치제문을 어제로 내린 것이다. 시를 통해 원래 묘는 봉분을 나란히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현재는 합장하여 둘레석을 둘렀는데 최근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내용이 아래와 같이 조선왕조실록에 전한다. 

 

하교하기를, "정안 옹주(貞安翁主)정정 옹주(貞正翁主)는 모두 장릉(章陵) 의 동기(同氣)인데, 정안옹주금양위(錦陽尉)와, 정정옹주진안위(晋安尉)와 합장하였다. 본릉(本陵)을 참배하고 또 이곳을 지나가는 일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내시를 보내어 치제하도록 하라."(癸丑/敎曰: "貞安翁主貞正翁主, 俱是章陵同氣, 貞安錦陽, 貞正晋安同岡。 展謁本陵, 又過此地, 事若不偶。 遣內侍致祭)-정조실록 권47, 정조 21년(1797)) 8월 17일 계축 

  정정옹주는 선조의 여덟번째 딸로 정빈 홍씨의 따님이다.

  진안위에 대한 졸기가 실록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진안위(晉安尉) 유적(柳頔)이 죽었다. 【폐모(廢母)를 주청하는 정청(庭請)에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당시의 여론이 위대하게 여겼다. 일찍 죽었고 자식이 없었다. 】(晉安尉 柳頔卒【不參廢母庭請, 時論韙之。 早卒無子】)-광해군일기[중초본] 권143, 광해11년(1619) 8월 17일 정묘.

  졸기에 사관의 이야기는 1618년(광해군10) 1월 4일 우의정 한효순 등이 백관을 인솔하여 정청에 들어 인목대비의 폐모를 주도한 이야기다. 당시는 영창대군이 죽고 인목대비가 서궁에 유폐된 시점으로 이를 주도한 이이첨 등의 대북파로 인해 분위기가 매우 험악하였다. 이러한 자리에 진안위 유적이 불참하였다. 시흥지역에 연원이 있는 금양위 박미, 안산에 묘가 있는 순천부원군 김류도 참석하지 않았다. 이밖에 유명인으로 한문사대가 이정구, 장유선생의 장인 김상용, 오윤겸 등이 불참한 인사로 주목된다. 광해군 조에 인목대비의 처리는 붕당의 생사여탈의 문제였기 때문에 조용히 넘어갈 사안이 아니었다. 따라서 양사(사헌부, 사간원) 등에서 이들에 대한 단죄로 삭직과 유배, 형을 가하라고 난리가 났다. 이러한 때 의연하게 처신한 했던 진안위 유적의 인물됨을 알 수 있다. 

  안산시 부곡동에는 옹주의 무덤이 있어서 도로명으로 '옹주길'이 있다. 안산시 부곡동 일대는 진안위가 정정옹주로 인해 받은 사패지로 안산지역의 어염권을 더불어 가문의 기반이 되어 위세를 이어갔다. 조선중기 사천목씨(泗川睦氏), 여흥민씨(驪興閔氏)와 함께 기호남인 3대 가문으로 일컬어진다. 정정옹주와 진안위는 후사를 남기지 못해 동생 유영의 아들 유명전을 양자로 들였으나 문과급제 후 요절하였다. 따라서 가문을 이은 것은 조카이자 유명전의 친동생인 유명천(柳命天, 유석[강원감사로 청문당 뒤 구릉에 묘와 신도비가 있음]의 양자)과 유경종(이조판서 유명현[유명천 동생] 아들) 등이 진주유씨 가계를 이끌었다. 현재 진주유씨의 유산으로는 만권의 책을 소장했던 만권루 '청문당(종택)'과 분계한 '경성당' 고택이 남아있다. 경성당은 종부가 살림을 하며 사는 집이고, 청문당은 현재 사람이 거주하지 않은 채 복원, 정비만 되어 있다.

  묘역은 현재 가장 위쪽에 정정옹주와 진안위 유적의 합장묘가 있고 바로 아래 아버지 유시행의 묘, 그 옆에 동생 유영(유명전, 유명견, 유명천, 유명현의 생부, 유경종의 조부)의 묘가 있다. 유영의 아들 유명전(柳命全), 유명견(柳命堅), 유명천, 유명현(柳命賢, 묘소 부곡동 산21-14)은 모두 문과 급제자이고 유명천과 유명현은 형제판서로 유명하였다. 묘역 둘레로는 철조망으로 두르고 철문으로 막아 놓았다. 종중의 허락을 받아야 입장이 가능하다. 

 

 

 

 

철문 입구부터

동생 유영 묘

 

 

 

 

 

 

할아버지 유시행 묘

 

 

 

 

 

 

 

 

 

진안위 유적, 정정옹주 묘와 묘갈

 

 

 

 

 

 

 

 

증 통헌대부 진안위 행 순의대부 진안위 유적의 묘
정정옹주 부
공의 성은 유이고 휘는 적이고 자는 군이며, 진주에서 계출되었다. 부친은 홍문관교리를 지낸 시행時行이다. 만력 을미년(1595)에 태어나 기미년(1619)에 돌아가시니, 나이 겨우 25세이다. 인조가 반정을 한 후 공이 절개를 세운 것을 가상히 여겨 통헌대부의 관계를 추증하였다. 선조의 열여덟 번째 딸과 혼인하였는데, 정정옹주는 만력 을미년에 태어나 숭정 병오년(1666)에 죽으니 향년 72세이다. 동생 응교 영潁의아들 명전命全을 후사로 삼았는데, 관직은 승문원정자에 그쳤고 일찍 죽었다. 아들 재栽를 두었고 딸은 어리다.
숭정 후 병오년(현종 7, 1666) 11월 아무 날에 세우다.

贈通憲大夫晋安尉行順義大夫晋安尉? 之墓
貞正翁主
公姓柳諱 字君美 系出晋州 考弘文館校理時行 生萬曆乙未卒己未年僅二十五 仁祖大王反正 嘉公立節 □朝 贈通憲階 尙宣祖大王 第十八女 貞正翁主 生萬曆乙未 卒崇禎丙午 享年七十二以弟應敎潁子命全爲後 官止承文院正字 早逝 有子栽女幼
崇禎後丙午十一月日立

출처 : 안산시사 8권 217~218쪽(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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