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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백제 육포(六浦) 운평리성과 한각리성(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삼괴지역은 행정구역상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과 장안면 지역이다. 삼괴라고 불리는 명칭이전에는 삼귀로 불렸고 그 보다 오래 쌍부(雙阜)로 불리었다. 쌍부는 한자 뜻 그대로 '두 봉우리'라는 말로 지역 중심에 위치한 우정읍 조암리시내 북쪽에 비교적 야트막한 산이지만 주변지세가 낮은 관계로 우뚝 솟은 두 봉우리를 쉽게 볼 수 있다. 쌍부산은 현재 쌍봉산으로 불리며 조선시대 때 잣나무가 많이 나서 백산이라고도 불렸다. 우리 지역은 쌍부현 이전에는 육포(六浦)라고 불렸다. 이는 서해에 인접하여 해상교통의 요지로서 내륙의 물산이 이곳을 통해 자유로이 왕래가 되었던 것으로 역사적으로 보면 고대에서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해상교통의 중요 거점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지역에 대한 지리지의 건치연혁은 아래와 같다. 삼국시..

시흥역사자료전시관

시흥역사자료전시관 2003년 5월 27일 시흥시 능곡동(구 연성동주민센터) 개관한 시흥역사자료전시관은 능곡동이 개발되면서 2009년 8월 28일 현재의 자리로 이전 개관하였다.(하중동) 시흥시에는 시흥시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살펴 볼 수 있는 곳이 있는데, 바로 시흥역사자료전시관이다. 시흥문화원에서 위탁 운영하고 있는 전시관은 번듯한 역사박물관이 없는 시흥시에 소중한 공간이다. 작은 전시실에는 시흥시의 연혁인 발자취와 각 주제별로 시흥의 문화유산, 고문서, 생활사자료, 염전 등 시흥의 역사를 대표할 수 있는 유산과 유물의 이야기가 있다. 2003년 구 원사에 처음 개관할 때는 생활사 유물을 중심으로 집, 헛간, 부엌을 꾸며 전시관을 찾는 사람들에게 쉽고 이해가 잘될 수 있도록 전시를 하여 이웃한 안산문..

[3.1절 특별기획] 수원군 우정, 장안면의 3.1운동 현장을 가다

서대문형무소에서..        4월3일, 폭민 약 천명이 장안 우정양면사무소를 파괴해 서류 전부를 소각, 폐기해 면장을 데리고 갔다. 한층 더 그 수가 증가해 약2천명이 되어 화수경찰관 주재소(내지인 순경 1명, 조선인 순경보 3명)(수원 서남쪽 8리)를 덮쳐, 가와바타 순경이 발포해 항거 했지만, 총알이 떨어져 마지막에는 참살되어 그 순경의 시체는 51개소의 흉터를 남겨, 이비(귀와 코)를 깎아 음구(陰具)를 절단 하는 등, 잔혹을 가해 게다가 주재소에 방화 병기를 탈취해 그 지역을 떠났다. 「경기도 수원 안성지방 특별검거반의 행동」『독립운동가자료 기타보고서』한국독립운동사 정보시스템 참조.   경기도 수원군 우정, 장안면의 3.1운동에 관한 일본 특별검거반의 보고이다. 1919년 당시 수원지역은 19..

쌍봉산록의 묻힌 김상로 역적인가? 2

하계 김상로(하계 김상로(霞溪,金尙魯, 1702 ~ 1766년 12월 29일))와 관련된 우리 지역의 중요한 발자취는 바로 삼괴라는 지명의 주인공이자 쌍부라는 지명에 관련이 깊다.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과 장안면의 명칭과 역사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정․장안면지역은 지리적으로 한 지역을 이루며 지역을 통틀어 부르는 명칭은 삼귀(三歸) 또는 삼괴(三槐)라고 한다. 따라서 예전 타지역 사람들은 삼귀댁 혹은 삼귀할아버지라고 많이 불렸다. 현재는 삼귀보다 삼괴(三槐)라는 이름이 널리 쓰이고 있다. 이러한 삼괴라는 명칭이 처음 쓰이기 시작한 때는 근 100여년 정도로 추정한다.(1900년 양안에 삼귀라고 쓰였고 1904년 실시한 양안에 처음 기록이 등장하였다. ) 이밖에 간척이 이루어지기 전, 우정읍의..

쌍봉산록의 묻힌 김상로 역적인가? 1

역사는 승리자를 위한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조선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청풍 김씨 하계 김상로(霞溪,金尙魯, 1702 ~ 1766년 12월 29일)가 그에 해당하는 인물이 아닌가 한다. 2012년 4월 5일 하계 김상로의 무덤이 우정읍 멱우리 벌판에 있다는 단서만 가지고 찾아나섰다. '쌍봉산근처'라는 단서를 가지고 찾아나선 길이다. 한참을 이리저리 다니다. 정오가 되어 쌍봉산 서편에 해가 걸렸을 때 오래된 묘역이 눈에 들어왔다. "설마" 학부 때부터 찾아다녔던 하계 김상로의 무덤.. 드디어 찾았다. 마음이 벅찼고 하계에 대한 예의로 절을 올렸다. 영조에 총애를 받아 승승장구하며 영의정까지 오른 당대 최고 권신이었던 김상로는 사도세자를 죽인 원수라는 굴레가 씌워져 정조가 즉위하면서 이미 작고한 그에게 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