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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시 정조대 문인 이옥 유허 및 마산포 답사

답사 : 2018년 4월 30일 화성향토문화연구소 이경열, 백도근 안내 ·조선 후기 자유인 이옥 유허지(추정) 위치 :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지화리 217-1(이봉산 서길) 이옥(李鈺, 1760 ~ 1815)은 조선 후기 자유로운 문인으로 화성문화원에서 발굴 선양하고 있다. 이옥이 성균관 유생시절 정조에게 문체반정으로 과거가 막히고 여러번 군역에 보충되다 합천에 유배를 가는 등, 어려움을 겪고 외가가 있는 남양으로 낙향하여 은둔하며 말년을 보낸 곳이다. 이옥의 가계는 조부가 왕족의 서얼로 무관으로서 인조반전에 참여한 이후 부친이 진사를 지냈다.(화성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 정찬모 부소장 족보 발굴) 김려(金鑢,1766~1822)와 강이천(姜彛天, 1769 - 1801)과 교류하였다. 특히 김려의 『담정총서 ..

민족의 사랑 『백범일지』

민족의 사랑 『백범일지(白凡逸志)』 1949년 6월 26일 낮, 12시 36분. 경교장에서 여러 발의 총탄소리가 들린다. 향년 74세, 백범 김구(白凡 金九, 1876-1949)가 쓰러졌다. 백범은 조국의 자주독립을 보지 못하고 운명하였다. 백범 김구의 죽음을 둘러싸고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정작 그를 저격했던 안두희 조차도 다른 이의 손에 죽는 날까지도 그날에 대해서 어떠한 진실도 밝히지 않았다. 그는 죽음과 함께 모든 진실을 가지고 침묵하여 버렸다. 김구 선생을 암살 했던 안두희가 당시 특무대장 김창룡(金昌龍, 1920-1956)과 가까웠고 그런 김창룡은 이승만(李承晩, 1875-1965)을 '아버지'라고 부를 정도로 이승만의 신임은 두터웠다. 이승만을 위해서라면 김창룡은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당..

정제두 유허비(시흥시 화정동 가래울[추곡楸谷])

추곡 정제두 선생 유허비 위당 정인보는 정제두(鄭齊斗,1649~1736)를 일컬어 "조선 양명학의 대종사"라고 하였다.정제두는 현종대 우의정을 지낸 도촌 정유성의 손자로 조선 사림의 스승 포은 정몽주의 후손이다.이곳 시흥시 화정동 가래울은 한자로 추곡(楸谷)이며, 1914년 군면통폐합으로 안산군이 없어 질 때까지 안산군에 속하였다.당시에 정제두 선생이 살면서 이곳 지명을 따서 추곡선생으로 불렸다. 입신한 아우 정제태와 달리 과거를 그만두고 여기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이 시기 박세채와 윤증을 사사하고 친구인 민이승, 박심, 최석정 등과 편지를 주고 받으며, 양명학에 대한 성취를 이루었다.정제두 선생이 한양을 떠나 이곳에 정착한 것은 바로 이곳에 6대조 정광윤 등 조상의 묘가 있어서이다.할아버지 도촌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