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서 반 강제로 손을 들게 된 책이 있다. 김응교 선생의 '백년 동안의 증언'이라는 책으로 1923년 관동대지진(간토대지진)을 중심으로 간토 학살을 다룬 문학사 저작이다. 일부러 문학사 저작이라고 강조 한 것은 이 책의 저자가 작가이기도 하지만 역사 연구에서처럼 구술사를 중심으로 역사 연구를 시도한 것이 아닌 작품을 통해서 작가와 그 시대적 배경과 과정, 후일담을 전하고 있는 경향 때문이다. 역사를 전공해선지 신선했다. 그간 역사 위주로 편식이 심한 독서를 해 오던 차에 문학적 감수성으로 쓰여진 책을 보니 오래전 잊혀졌던 기억이 떠오른다.(20세 이전 국어 교육)
좌우명이라는 말이 있다. 보통은 인생을 살면서 가지는 절대적 가치관인데 그 속을 보면 '잠자리 오른쪽의 책' 즉 자신이 가장 침착할 때 곁을 밝히는 빛이다. 보통 이럴 경우 종교의 '성경' 같은 경우가 되지 않을까? 새해 들어 좌우명이라는 말보다는 '자리끼'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과거 생활 공간이 분리된 주거 환경에서는 잠자리에 들면 뭐 하나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뒷간이라도 갈라치면 잠을 다 깨야할 각오를 해야했다. 그런 불편함을 우리 조상들은 위로나 아래로나 요강을 두었다. 요즘도 고미술품 풍자로 요강이 자주 나오는데 이게 그저 단순한 우스겟거리는 아니다. 우리 조상들의 슬기이다. 이와 함께 잠자리에서 목이 말라 머리맡에 두던 물이 있는데 그게 바로 '자리끼'이다. 이것도 우리네 풍습이고 조상의 슬기이다. 어린 시절 할머니댁에 늘 놓여 있던 자리끼, 어린 시절 연탄불 방 한 칸에 엄마, 아부지와 동생이랑 잘 때면 늘 새벽녁 얼어 붙은 자리끼가 생각난다. 그런 자리끼처럼 내 머리맡에 항상 있는 것을 보니 이제는 그 자리에 물이 아닌 책이 있더라
백년 동안의 증언에 대한 서평을 쓰자니 너무 자세히 써서 스포일러가 되는 건 아닌지 조심스럽다. 다만 그보다는 네비게이션이 더 맞겠다. 역사 든 뭐든 '호기심'에 출발하고 그 '단서'를 찾아야 하는데 그 길라잡이가 목적이다. 그리고 주목할 것은 책의 저자 중심사보다는 역사적 관점에서 흥미로운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책에서는 관동대지진을 간토대진재라고 한다. 이는 천재인 지진의 발생과 이후 조선인을 중심으로 중국인, 일본인(사회주의자 등)까지 이어진 간토 학살에 따른 의미이다. 따라서 이 용어는 월북작가 이기영의 소설 '두만강'에서 언급하였고 이후 한국 지성사와 문학사에 선향영향력을 행사한 오무라 마스오 (大村益夫, 1935~2023) 와세다대 교수가 동조한 김응교 선생의 주장이다. 특히 오무라 마스오는 윤동주를 발굴하고 저자에게 끊임없이 문학적 연구를 독려하며 "조선인 학살과 문학 이야기 한 번 써보세요"라고 했던 사람이다.
간토대진재를 통한 선한 영향력 일본 지성사를 생각하다.
미우라 아야코( 三浦綾子, 1922~1999) '총구'
파친코 이민진 뺌 / 드라마 나옴
오에 겐자부로( 大江健三郎, 1935~2023) 노벨문학상
오무라 마스오, 세키 고젠 스님
미야카와 야스히코, 니시자키 마사오(시민활동가)
오야마 레이지( (尾山令仁, 1927~2023) 목사(사죄 운동, 제암리 교회 건축 등)
조선인 차별 조센징 더 차별 센징, 사회주의자(주의자)
불령선인(후테이센징) 즐거운 상태 령이 없는 불평, 불만을 가진 상태 / 재일 아나키스트 박열(1902~1974)지사 후데이센징 호칭(太, 가늘지 않은 두터운 조선인)
관동대진재 간토 학살 조선인 희생자 6,661명 1923년 12.5.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 '일반의 희생자'
원인
1. 두려움은 혐오를 만들고 혐오는 폭력을 / 3.1운동 등 일본 언론이 '조선인은 무자비한 존재다'라는 인식
2. 조선인 임노동자에 따른 상대적 박탈 / 동양의 맨체스터라고 불린 오사카에만 토지조사 사업 이후 조선인 임노동자 2만 존재 1923년 5월 1일 노동절 집시 탄압
3. 후테이센징 / 메이지 이후 줄곧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우월의식(정한론, 인종적 우월)
4. 직접적인 원인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는다' 유언비언 일본 경시청 발원지(쓰보이 시게지 장시 '15엔50전') 광기
5. 자경단 / 화재 진압 도구 불갈구리로 학살
6. 일본 우선주의 국가주의 세뇌 / '개'의 인생들은 '국'을 위해 투신 일본판 오리엔탈리즘
간토대진재 장시 '15엔50전' 쓰보이 시게지( 壺井繁治, 1898~1975)
일본의 파시즘과 유언비언 고발 유언비어의 발화지 일본정부 시 내용 중 '경찰 게시판에 붙여있었다'
주우고엔 고주센을 통한 인종 판별
재일사학자 강덕상
월북작가 이기영(李箕永, 1895~1984) 소설 '두만강' 지진 표현 '좌우동으로 마치 매돌질(맺돌질)하듯'
김동환 서사시 '승천하는 청춘'
요코하마 소학교 학생 당대 기록 연구 중학교 교사 고토 아마네(後藤周)
진재작문 당시 12세 징병 연령 20세 8년 후 1931년 만주사변 /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폭력의 비극을 모르는 이들은 그래서 다음 전쟁시대를 준비하는 병사가 될수 있었겠지요'
'악의 평범성'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 , 1906~1975), '나는 선량한 시민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芥川 龍之介 1892년 ~1927, 소설가) '야만스런 기쿠치(선전, 선동에 편승하지 않은 주의자 기쿠치 칸[ (菊池寛, 1888~1948, 소설가]에 대한 반어적 표현)'
민권운동가 주의자이자 희생자 오스기 사카에( (大杉 栄)
여운형 등 도쿄 조선인 유학생과 교류(박열, 정태성-흑우회 결성) , 1923년 1월 북경에서 김원봉 만남
동아시아 혁명가들이 연대하자(안중근 존경) 고토쿠 슈스이( 幸徳秋水, 1871-1911)의 영향 신채호 아나키스트 전향 의열단 창잔 '조선혁명선언문' 작성,
아마카스 사건의 희생(본인은 물론 내연녀와 어린 조카 살해 됨, 일본 군부 조직적 살해 당사자[ 아마카스 마사히코(甘粕正彦) 육군 헌병 대위 가벼운 처벌 후 만주로 가서 사업하는 등 승승장구, 일본이 패망하자 자살])
간토대진재 한국문학사 영향 한국 프롤레타리아 문학 기폭제(160쪽)
새해 들어서 반 강제로 손을 들게 된 책이 있다. 김응교 선생의 '백년 동안의 증언'이라는 책으로 1923년 관동대지진(간토대지진)을 중심으로 간토 학살을 다룬 문학사 저작이다. 일부러 문학사 저작이라고 강조 한 것은 이 책의 저자가 작가이기도 하지만 역사 연구에서처럼 구술사를 중심으로 역사 연구를 시도한 것이 아닌 작품을 통해서 작가와 그 시대적 배경과 과정, 후일담을 전하고 있는 경향 때문이다. 역사를 전공해선지 신선했다. 그간 역사 위주로 편식이 심한 독서를 해 오던 차에 문학적 감수성으로 쓰여진 책을 보니 오래전 잊혀졌던 기억이 떠오른다.(20세 이전 국어 교육)
좌우명이라는 말이 있다. 보통은 인생을 살면서 가지는 절대적 가치관인데 그 속을 보면 '잠자리 오른쪽의 책' 즉 자신이 가장 침착할 때 곁을 밝히는 빛이다. 보통 이럴 경우 종교의 '성경', '화엄경', '중용' 같은 경우가 되지 않을까? 새해 들어 좌우명이라는 말보다는 '자리끼'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과거 생활 공간이 분리된 주거 환경에서는 잠자리에 들면 뭐 하나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뒷간이라도 갈라치면 잠을 다 깨야할 각오를 해야했다. 그런 불편함을 우리 조상들은 위로나 아래로나 요강을 두었다. 요즘도 고미술품 풍자로 요강이 자주 나오는데 이게 그저 단순한 우스겟거리는 아니다. 우리 조상들의 슬기이다. 이와 함께 잠자리에서 목이 말라 머리맡에 두던 물이 있는데 그게 바로 '자리끼'이다. 이것도 우리네 풍습이고 조상의 슬기이다. 어린 시절 할머니댁에 늘 놓여 있던 자리끼, 어린 시절 연탄불 방 한 칸에 엄마, 아부지와 동생이랑 잘 때면 늘 새벽녁 얼어 붙은 자리끼가 생각난다. 그런 자리끼처럼 내 머리맡에 항상 있는 것을 보니 이제는 그 자리에 물이 아닌 책이 있더라
백년 동안의 증언에 대한 서평을 쓰자니 너무 자세히 써서 스포일러가 되는 건 아닌지 조심스럽다. 다만 그보다는 네비게이션이 더 맞겠다. 역사 든 뭐든 '호기심'에 출발하고 그 '단서'를 찾아야 하는데 그 길라잡이가 목적이다. 그리고 주목할 것은 책의 저자 중심 내용보다는 역사적 관점에서 흥미로운 내용으로 살펴본다.
책에서는 관동대지진을 '간토대진재'라고 한다. 간토는 일본의 관동지방에 대한 일본어 발음이고 진재(震災)는 지진의 재해를 뜻한다. 다만 여기서는 단순한 지진의 재앙이 아닌 천재인 지진의 발생과 이후 조선인을 중심으로 중국인, 일본인(사회주의자 등)들까지 이어진 간토 학살이 중심된 의미이다. 따라서 이 용어는 월북작가 이기영의 소설 '두만강'에서 언급하였고 이후 한국 지성사와 문학사에 선향영향력을 행사한 오무라 마스오 (大村益夫, 1935~2023) 와세다대 교수가 동조한 김응교 선생의 주장이다. 특히 오무라 마스오는 윤동주를 발굴하고 저자인 김응교에게 끊임없이 문학적 연구를 독려하며 "조선인 학살과 문학 이야기 한 번 써보세요"라고 했던 사람이다.
간토대진재를 통한 선한 영향력 일본 지성사를 생각하다.
미우라 아야코( 三浦綾子, 1922~1999) '총구'
파친코 이민진은 소설에 다루지 않고 제작된 드라마에는 나온다.
후세 다쓰지(布施辰治, 1880 ~ 1953) 변호사 인권변호사로 조선인들을 일본인과 동등하게 대우하였다.
오에 겐자부로( 大江健三郎, 1935~2023)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보편성에 가치를 둔 지성인
오무라 마스오(大村益夫, 1933~2023, 와세다대 명예교수), 세키 고젠(關光禪) 스님 저자에게 영감을 준 스승
미야카와 야스히코(宮川泰彦) 관동대진재 조선인 추도식 주도하였다.
니시자키 마사오(西崎雅夫, 시민활동가) 관동대진재 조선인 학살 사실을 규명하고 알리는 일본 시민 단체 봉선화(鳳仙花·일본어로 ‘호센카’) 대표
오야마 레이지( (尾山令仁, 1927~2023) 목사 사죄 운동을 통해 일제강점기 제암리, 고주리 학살만행에 대한 지속적인 사죄와 방한을 하였고 끝내 제암리 교회를 건축하여 희사하였다.
뿌리 깊은 내지인들의 차별의식을 말하다.
조선인 차별 조센징보다 더 차별적인 호칭 '센징'이고 전체주의 일본 사회가 경계했던 사회주의자는 '주의자'라며 구분, 혐오하였다.
일제의 입장에서 위법적인 규정 '불령선인(후테이센징)' 이는 즐거운 상태인 령이 없는 불평, 불만을 가진 상태의 조선인을 이르는 위법적인 규정이자 차별과 혐오가 담긴 호칭이다. 이러한 불령선인인 후테이센징에 맞서 대진재 중 활약한 재일 아나키스트 박열(1902~1974)지사는 '후데이(太)센징이라고 호칭하면서 가늘지 않은 두터운 조선인이라고 반박하였다.
간토대진재의 조선인 학살 피해와 원인을 말하다.
관동대진재 간토 학살 조선인 희생자는 6,661명으로 이는 1923년 12월 5일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기사 '일반의 희생자'에서 밝히고 있는 기록이다.
학살의 원인
1. 두려움은 혐오를 만들고 혐오는 폭력을
1919년 3.1운동 당시 일본 언론이 '조선인은 무자비한 존재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이야기했듯 일본인들 저변에 당시의 공포심이 존재하였다.
2. 조선인 임노동자에 따른 상대적 박탈
동양의 맨체스터라고 불린 오사카에만 토지조사 사업 이후 토지를 빼앗긴 조선인들이 넘어와 임노동자 형태로 2만여명이 존재하였다. 1923년 5월 1일 노동절 집시 탄압 때 확인된 숫자이고 이들의 존재로 일본 내지인들이 느끼는 처우 등은 상대적 박탈감이 심하였다. 현재 유럽의 난민에 대한 처지 이해가 이에 해당한다.
3. 후테이센징
메이지 이후 줄곧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우월의식이 저변에 있었다. 정한론과 인종적 우월의식이다.
4. 직접적인 원인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는다' 유언비언를 일본 경시청에서 퍼뜨렸다.(쓰보이 시게지 장시 '15엔50전', 광기)
간토대진재를 배경으로 쓰인 장시인 '15엔50전' 쓰보이 시게지( 壺井繁治, 1898~1975)의 작품으로 "주우고엔 고주센"이라는 발음을 통해서 일본인과 아닌가를 판별한 인종 판별책으로 쓰였다. 이는 일본 제국주의의 파시즘에 따른 유언비어였고 유언비어의 발화지 역시 일본정부로 시 내용 중 '경찰 게시판에 붙여있었다'라고 분명히 고발하고 있다. 특히 '15엔50전'은 조선인 찾기에 혈안이 된 자경단이 적극 활용하였던 인종 범죄의 도구였다.
5. 자경단
공권력이 공백을 갖자 자경단이 일어나 있을지도 모를 범죄자 조선인을 특정하고 화재 진압 도구인 불갈구리로 학살을 자행하였다.
6. 일본 우선주의 국가주의 세뇌
'개'의 인생들은 '국'을 위해 투신한다는 일본판 오리엔탈리즘이 저변에 있다.
그날의 비극이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음을 말하다.
쓰보이 시게지의 시는 물론 요코하마 소학교 학생의 당대 기록이 있고 이를 중학교 교사 고토 아마네(後藤周)가 남겼다. 당시 진재작문에는 당시 12세에 불과했던 아이들 갖게된 편협함과 선입견이 이후 징병 연령 20세가 되는 8년 후 일본 제국주의의 첨병으로서 1931년 만주사변으로 이어지는 평범성이 이어지는 비극이 벌어졌고 이는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도 고백하였다.
폭력의 비극을 모르는 이들은 그래서 다음 전쟁시대를 준비하는 병사가 될수 있었겠지요
이러한 생각을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 , 1906~1975)는 '악의 평범성' 으로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선량한 시민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芥川 龍之介 1892년 ~1927, 소설가)는 '야만스런 기쿠치(선전, 선동에 편승하지 않은 주의자 기쿠치 칸[ (菊池寛, 1888~1948, 소설가]에 대한 반어적 표현)'는 표현을 통해 평범함을 가장한 악의 표출을 고발하였다.
일본 전체주의, 이단자 주의자의 처단을 말하다.
간토대진재는 일본 내 조선인에 대한 인권 유린이자 피해 본보기로 이들이 희생자였듯이 역시 일본의 전체주의를 부정하고 사회주의 이념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던 일본인의 주의자에게도 비극이었다. 민권운동가이자 주의자이인 오스기 사카에( (大杉 栄)는 대표적인 주의자이자 피해자이다. 그는 중도 좌파로 당시 사회주의자였던 여운형 등 도쿄 조선인 유학생과 교류에 진심이었고, 박열, 정태성 등의 흑우회 결성에도 영향을 주었다. 더욱이 무장투쟁의 대명사이자 아나키스트 약산 김원봉을 1923년 1월 북경에서 만날 정도로 한국의 사회주의 역사에서는 무시 못할 위인이다. 당시 일본의 주의자의 영향력은 아시아에서 막대하였다. 동아시아 혁명가들이 연대하자던 고토쿠 슈스이( 幸徳秋水, 1871-1911)는 안중근을 존경하였고 그의 동양평화론에 심취하였다. 그의 영향으로 독립지사이자 역사가인 단재 신채호가 아나키스트로 전향하였고 의열단 창단문인 '조선혁명선언문'을 김원봉의 부탁을 받고 작성했을 정도이다.
오스기 사카에 그는 '아마카스 사건'의 희생자로 본인은 물론 내연녀와 어린 조카까지 일본 군부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 사건은 일본 군부의 조직적 살해로 이 사건을 주도한 당사자 아마카스 마사히코(甘粕正彦) 육군 헌병 대위는 이 사건의 가해자 붙잡혀 가벼운 처벌만 받은 후 대륙침략이 본격화되며 만주로 가서 사업가로 변신하는 등 승승장구하다 일본이 패망하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제국주의자로 일본 군국주의의 화신이자 덴노의 영원한 신민이었다.
간토대진재 한국문학사 영향 한국 프롤레타리아 문학 기폭제(160쪽)가 되었다.
이날의 진실의 구술사 등 현지에서 가장 기층에서 자료를 모으고 연구한 학자가 재일사학자 강덕상(姜德相, 1931~ )이다. 그리고 이 간토대진재는 당시 일본에 체류하면서 경험했던 한인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월북작가 이기영(李箕永, 1895~1984) 소설 '두만강'을 보면 당시 대지진에 대한 표현으로 '좌우동으로 마치 매돌질(맺돌질)하듯'했다고 사실적 표현을 하는 한편, 김동환(金東煥, 1901~1958)은 서사시 '승천하는 청춘'을 통해 간토대진재를 말하였다.
2024년 고토지진 발생 동해안 고토반도 강진 이렇듯 일본의 지진재해는 현재 진행형 이러한 엄청난 고통에서 나약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비겁하고 잔인한 것이 바로 타자에 대한 공격으로 악의 평범성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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