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리주저리(역사)

화성일기 이희평 이야기

달이선생 2022. 6. 9. 21:00

화성일기(華城日記)

 

수록 화성문화6(향토사 연구 자료집, 화성문화원, 1988)

 

 

『화성일기(華城日記)』는 1795년(정조19) 정조가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회갑연(수원 화성행궁) 등을 하고자 수원 현륭원으로 원행을 하였는데, 이때 혜경궁의 인척 자격으로 일행에 참가했던 이희평(李羲平, 자 성여.준여, 호 계서, 1772~1839)이 남긴 국문체(한글) 기행문이다. 이 기행문을 화성문화원에서 펴낸 『화성문화』 제6호에 해제와 함께 번역자료가 실려있다.

 

해제자인 화성군사 집필위원 김우영은 이희평에 대하여 '無名(무명)의 선비'라고 했지만 이희평은 한산이씨로 목은 이색의 16대손이자 당대 노론 벌열로 혜경궁홍씨의 외척이 되는 명문가였다. 토정 이지함과 선조대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가 방조이다. 직계인 고조부 이집이 황해도관찰사이고 증조인 생원 이병건과 조부 이산중은 벼슬을 못했으나 종조부이나 출계하여 조부가 되는 이해중은 대사헌을 지냈다. 아들인 당숙 성균생원 이도영에게 양자를 갔지만 예조참판을 지낸 이태영(부인 생원 유한갈[兪漢葛] 기계 유씨)이 친아버지이다. 칠형제 중 삼남으로 큰 형은 판서를 지낸 이희갑(1764~1847, 시호 정헌)이고 대사헌을 지낸 이희준(1775~1842, 시호 문정)이 동생이다.

 

이렇듯 가문이 현달하여 이희평은 비록 39살(1810년 순조10) 늦은 나이로 사마시에 겨우 급제해 대과는 못하고 진사에 머물렀지만 음보로 현륭원 참봉을 시작으로 황주목사까지 지냈다. 부인 풍산 홍씨(부 군수 홍낙순[洪樂舜])도 효행으로 정려되었다.

 

아버지 이태영의 행적인 104편의 설화를 모아 『과정록(過庭錄)』을 지었고 『계서야담(溪西野談)』 남겨 동생 이희준과 더불어 시문에 뛰어났다.

 

 

숭정3경오식사마방목(崇禎三庚午式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

 

이희평은 사마시 급제 당시 서울에 거주하였고 중시하로 양부 도영(부인 파평 윤씨, 부 승지 윤면헌[尹勉憲])은 물론 양조부모(대사헌 이해중, 부인 풍산 홍씨[부 진사 홍윤보(洪允輔)]) 모두가 생존해 있었다. 안항으로 서출 동생 희본이 있다. 친부모인 태영 등은 영감하로 모두 돌아가셨고 안항으로 형 희갑, 희두, 동생 희승, 희준(이현영[李顯永]에게 출계), 희조(1813년 순조13 계유 증광시 문과 병과 22위), 희화 동복형제와 서출 동생 희오(1813년 순조13년 계유 증광시 무과 병과 72위), 희신, 희명, 희거가 있다.

음보(蔭譜)(규장각한국학연구원)

 

음안(蔭案)(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2000년대 들어 한국사와 특히 지역사를 연구하기에는 좋은 조건이 되었다. 경기도는 경기문화재단 경기도사이버도서관에서 제공하고 있는 경기도메모리를 통해 지역사연구의 꽃인 문화원 자료를 쉽게 열람할 수 있다. 정조대 문화사 연구 등에 중요한 자료인 화성일기도 이렇게 찾을 수 있었다.

 

다음은 『화성문화』에 실린 『화성일기』 해제와 완역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