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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참변의 친일 경찰, 그리고 친일 청산

달이선생 2021. 3. 4. 19:31

간도참변에 가담한 친일 경찰 명단 발굴과 경찰의 역사바로세우기의 명과 암

 

2019년 KBS는 희망 없은 독립운동의 길에 끝내는 동지를 팔아 자신의 안위를 챙기며, 반민족으로 나서야했던 주요 밀정들과 895명의 밀정 명단을 공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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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정

밀정은 독립운동의 주요 정보를 몰래 일제에 빼돌리는 사람이다. '독립군이 2천명 결성됐어도 그 안에 밀정이 한 사람 있으면 그 조직은 와해되고 마는 것이다. 밀정은 그만큼 어떤 반민족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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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이은 2탄으로 KBS는 간도참변에 가담한 한국인 경찰관 48명의 공적이 적힌 일본 외무성 문서를 최초로 발굴하고 보도하였다.(3.1. 9시뉴스) 자료는 일제가 상훈을 주기 위해 작성한 600쪽 분량의 문서로 1921년 3월 1일 결재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지 않아 독립운동은 못했으나 오늘을 살기에 과거의 어두운 기억을 낱낱이 드러내고 진실을 밝히는데는 조금이나마 역할을 하고자 한다."-게시글 '밀정'에서

 

미완의 광복 8.15해방이후 우리 선조들이 토왜로 지칭하고 오늘날 우리는 일본을 부모처럼 섬기는 자들인 친일파들이 '반일종족주의(이영훈 외, 2019. 미래사)'라는 한민족을 거짓말을 일삼는 저급한 민족으로 매도하고 멸시하는 대중서를 아무 꺼리낌없이 출판하는 이 때에 밖으로는 일본 우익의 돈에 학자적 양심을 팔고 인류보편성을 망각한 미국인 하버드 로스쿨 마크 램지어(John Mark Ramseyer, 1954) 사태 등을 경멸하며 KBS가 보도한 내용을 남긴다.

이는 KBS의 보도 내용을 단순히 전재하는 것이 아닌 보도 내용 중 소개된 친일파의 이름과 행적을 정확하게 보이고 알려서 역사의 단죄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이유이다. 

 

KBS 사회부는 정확히 100년 전 1921년 3월 1일 작성된 600쪽 가량의 일본 외무성 문서를 단독 발굴했다. 일제가 '간도참변(경신참변)'에 가담한 한국인 경찰관 48명의 '공적'을 적은 문서다.

일제는 1920년 봉오동·청산리 전투에서 한국독립군에게 패하면서 곧바로 간도참변이라는 끔찍한 보복에 나선다. 일제는 간도 지역 항일 독립운동가와 수많은 민간인을 무참히 학살했다. 이러한 일제의 만행은 이미 우리 민족에게는 익숙한 것으로 일제가 1905년 을사늑약 이후로 침탈을 가속화 하는 가운데 항일 의병전쟁으로까지 확대되며 무장투쟁이 활발해지자 의병대토벌을 목적으로 호남지역에 대하여 1909년 남한대토벌 작전을 벌였다. 이때 쓴 방식이 의병에게 협조할 수 있는 지역에 대한 무차별한 초토화작전이다. 이렇게 한반도에서는 일제의 끔찍한 만행으로 독립운동이 어려워졌고 많은 한인들이 결국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만주와 간도에 정착하여 항일독립운동을 이어간다. 바로 이곳이 한국독립군의 본거지가 되자 일제가 초토화작전을 벌인 것이 간도참변이다.

그리고 간도참변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간도와 이웃한 러시아령 연해주에서 일제의 '4월참변'이 발생하여 이미 예고되었다. 일명 신한촌 사건 (新韓村事件)이다. 일제는 1차세계대전에 연합군으로 참전하여 러시아 적군파로부터 체코군단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미국, 영국 등과 앞다투어 블라디보스톡에 출병하였다. 이때 일제는 시베리아 침략을 기회를 이용하여 국외 한인독립운동단체 등 독립기지가 되고 있는 연해주의 한인기반을 철저하게 파괴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연해주 독립운동단체의 기반이 되고 한인들이 모여사는 신한촌에 들어와 간도참변과 같은 무자비한 학살과 방화를 자행하며,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꺽으려고 하였다. 연해주 한인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도 이 때 이웃한 우수리스크에 살고 있었는데 이 참화를 피하지 못하고 참혹하게 죽임을 당하였다. 사실 이러한 의병과 독립군에 대한 토벌 이전에 이미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 벌어졌다. 당시 일제가 조선으로 출병하여 청일전쟁을 일으키고 북상하면서 그 배후의 안전을 위하여 동학농민군을 공주 우금치를 시작으로 충청, 호남 등 삼남지방으로 확대하여 철저하게 초토화 한 것이다. 이렇듯 불행의 역사는 꼬리에 꼬리를 문다. 참혹하게..

일제가 작성한 공적서에 이름을 올린 경찰들은 일제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한 이들이지만, 우리에게는 같은 민족을 붙잡고 살해하는 데 가담한 반민족 행위자들이다. 간도참변에 가담한 한국인 경찰관들의 구체적 행위가 발굴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번 발굴 문서를 보면 이들이 '동족학살'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가 소상히 기록돼 있다.

KBS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동으로, 발굴한 공적서에 기재된 해당 경찰관들의 소속과 계급, 주요 공적 내용을 토대로 이들의 행적을 추적하였다.

순사 허린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국민회에서 활동한 공로로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김강 선생.

1920년 11월 간도참변 당시 일본 경찰에 피살

공적서에는 이들이 종로서, 용산서, 동대문서, 청주서 등 전국 각지 경찰서에서 차출됐다고 나와 있습니다.

올해 설립 30주년을 맞은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증보판' 발간을 계획하고 있다. KBS가 발굴한 이들의 이름을 올리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간도참변 당시 체포된 것으로 기록된 한국인도 17명이나 확인됐다. 이 가운데 국가보훈처가 독립유공자로 인정한 건 4명에 불과하다. KBS는 이번에 발굴한 자료를 보훈처에 전달할 예정이다.

 

 

경찰의 역사바로세우기 

종군기장을 받은 조선인 경찰관 9명.

순사 우경태, 구봉서, 김종섭, 백창돈, 김배인, 장국환, 김영후, 성빈, 서상순 

 

간도참변에 참가한 한국인 경찰 48명 가운데 조선총독부로부터 상훈을 받은 사람은 지금까지 확인된 기록으로만 9명이다. 1928년 8월에 작성된 조선총독부 관보의 부록에 한국인 경찰관 9명이 1920년 12월 25일 '종군기장'을 받았다.

종군기장은 일본이 대외침략을 기념하며 전쟁에 참전한 이들에게 수여하던 일종의 상훈이다. 러일전쟁, 중일전쟁 등 각각의 전쟁마다 종군기장의 종류도 달랐는데, 간도참변에 가담했던 이들 역시 종군기장을 받았다.

 

충북 청주경찰서 순사 백창돈(白昌敦)

1920년 5월 17일 간도 지역에 파견됐다. 그의 주요 공적은 

(1) 1920년 10월 2일 훈춘사건 당시 적을 경계하고 재류민을 보호한 것

(2) 토벌대에 배속돼 귀순자 처리 및 선전 업무 종사  

간도참변 이후 그의 행적은 간도참변 이듬해인 1921년 본래 소속돼 있던 충북 청주경찰서로 귀환한다. 이후 1930년 제천경찰서로 근무지를 옮긴 뒤 퇴직했다. 퇴직 후 조선총독부 연금을 수령하였다.

 

재간도일본총영사관에서 근무한 경부보 최태욱(崔泰郁).

간도참변 당시 일제로부터 '조선인 경찰관의 본보기'로 '공적이 가장 현저하다'고 기록된 인물이다.

그의 주요 공적은 

(1) 밀정 사용 및 은닉 총기의 소재지에 관해 내사, 독립운동가 행동 조사에 관한 사무에 복무해 그 공적이 현저

(2) 1920년 10월 5일~7일 출동 군대가 도착할 때까지 총영사관 경찰관과 재향군인으로 경비대를 조직해 임무를 완수

 

최태욱은 1920년 10월부터 시작된 간도참변 당시 상당한 역할을 했다. 그의 추가 행적은 1926년 1월 16이 경성일보에서 간도총영사관 소속 다른 경찰관들과 함께 승급했다. 계급은 경부보가 아닌 경부로 기재돼 있다. 간도참변 가담 당시 경부보였던 최태욱이 참변 이후 불과 5년 사이 경부로 진급한 것이다.

일제 강점기 경찰 계급 체계는 위로부터 경무총장-경무부장-경무관-경시-경부-경부보-순사-순사보 순으로 대부분의 조선인 출신 경찰들은 순사, 순사보 계급에 머물렀고,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경시나 경부급 인사가 되기는 어려웠다.

KBS는 간도참변에 차출된 한국인 경찰관 48명 가운데 종로경찰서, 용산경찰서, 청주경찰서, 공주경찰서 등 소속 경찰서가 기재된 이들의 추가 행적을 확인하기 위해 경찰청에 공식 질의했다.

경찰은 " 인사관리시스템에서 연관성이 있는 인물이 검색되지 않는다"며 "인사기록이 소실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실제 취재 과정에서도 경찰이 확보하지 못한 기록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정경찰서(현재:서울 중부경찰서) 소속으로 1920년 간도참변에 가담한 순사 장국환(張國煥).

해방 후인 1952년 정부가 발간한 대한민국 직원록에서 경기도 경찰국 간부로 재직한 장국환을 찾을 수 있었다. 한자까지 일치하고 계급 승급 가능성이 있어 동일인 여부를 확인해야만 했다. 하지만 경찰은 두 인물의 연관성을 확인해줄 수가 없었다. 장국환에 대한 인사기록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1952년 경기도 경찰국에 재직한 장국환은 정부 기록물에 등장하는 인물임에도 정작 경찰청이 보유한 인사기록에는 빠져 있었다. 경찰은 인사기록을 기준으로 인사관리시스템을 구축했기 때문에 일부 누락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간도참변에 가담했다가 일제로부터 공적을 인정받은 순사 장국환(위)과 해방 후인 1952년 경기도 경찰국 소속 간부로 재직한 장국환. 경찰은 두 인물 모두 인사기록이 없다고 답변했다.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을 지낸 백범 김구 선생의 흉상이 2019년 경찰청에 들어섰다. 경찰은 20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이었던 김구 선생의 동상을 경찰청 본청 청사 안에 세웠다. 과거사 청산의 의지를 밝히는 차원이었다. 경무국장은 지금으로 치면 경찰청장이다.

2년여가 지난 지금, 경찰의 친일 잔재 청산은 얼마나 이뤄졌을지 따져봤다. KBS는 전국 지방경찰청과 경찰서 등 274곳의 홈페이지를 전수조사했다. 이 가운데 70여 명(중복 포함)이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린 인물이었는데, 각 경찰청·경찰서 홈페이지에는 이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심지어 일부 경찰서 안엔 여전히 친일 경찰의 사진이나 이름이 내걸려 있다. 충북 영동경찰서 8대 서장이었던 김상규도 대표적인 친일 인사였다. 그는 일제강점기 당시 고등 형사로 근무하며 사상범과 독립운동가를 체포하는 일에 앞장섰다.

충북 영동경찰서 8대 서장 김상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지만, 영동경찰서 대회의실에 별도의 친일 이력 표기 없이 이름이 걸려 있다. 경찰은 이에 대해 "재직 이력을 있는 그대로 표기했을 뿐 선양 의도는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친일 이력을 함께 또렷하게 적고 있다.

경기도는 지난해부터 역대 도지사 가운데 친일 행적이 있는 사람은 약력에 친일 관련 기록을 표기하고 있다.

경찰은 2019년 이른바 '역사기록 전담팀'까지 꾸려 독립운동가 출신의 경찰을 발굴하는 등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유독 친일의 역사에 대해선 뚜렷한 성과를 내지 않고 있다. 경찰은 2005년에도 과거 반민족 행위를 기록하는 새로운 경찰 역사서를 발간하고자 편찬위원회까지 꾸렸지만 결국 성사되지 못했고 지금까지 아무런 진척이 없다. '빛'만 드러내고 '그늘'은 외면하고 있다.

해방 후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처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반민특위'를 습격한 것은 경찰이다.

반민특위는 제헌국회가 구성한 헌법기구였지만, 경찰은 1949년 6월 6일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해 특위 위원과 직원, 특경대원 등 35명을 연행했다. 공권력이 공권력을 습격한 초유의 사건이었다. 이 사건 이후 반민특위 활동 기한은 본래 임기보다 10개월 축소됐고 같은 해 8월 31일 특위 활동은 종료됐다. 친일파 청산 과제는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롯한 역사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은 경찰이 반민특위를 습격한 6월 6일을 '국치일'로 보고 2005년부터 반민특위 습격 사건과 관련해 경찰에 사과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하지만 아직도 경찰의 공식 입장은 나온 바 없다.

 

 

 

방송보기

[단독] “동족 학살·독립군 체포”…간도참변 ‘한국인 경찰 48명 공적서’ 발굴 / KBS 2021.03.01. - YouTube

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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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사회부는 정확히 100년 전 오늘(1921년 3월 1일) 작성된 600쪽 가량의 일본 외무성 문서를 단독 발굴했다. 일제가 '간도참변'에 가담한 한국인 경찰관 48명의 '공적'을 일제 입장에서 적은 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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