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 7

최명길 선생 묘 및 신도비

지천(遲川) 최명길 선생은 영화 '남한산성'(2017)에서 이병헌 배우가 열연한 조선의 명재상이다. 2024년 9월 14일 묘소를 찾았다.최명길 선생의 묘와 신도비는 선생이 1647년 졸하자 청주 대율리('대뱀이', 현 대율1리)에 장사지내고 이후 현달한 손자 최석정, 최석항, 증손 최창대의 노력으로 1702년 묘표와 신도비를 세웠다. ​최명길 선생의 묘표는 여느 조선의 사대부와 달리 '유명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조선'만을 쓰고 있다. 명이 망하고 조선의 사대부가 조선을 소중화라는 의식하에 명이 망했지만 여전히 조선은 명을 잇는다는 생각으로 사대를 표방한 것과 달리 최명길 선생의 묘표는 '조선상국'이라고 단촐하게 적고 있다.​'조선상국증시문충 지천최공명길지묘'영의정의령남구만서​ 이는 대명의리 존승을 놔..

소래염전 소금창고 그리고 가시렁차, 시흥 갯골생태공원

소래염전 그리고 가시렁차, 시흥 갯골생태공원 동아일보 1937년 7월 11일자 기사에 '58만원으로 대염전 기공-부천군 소래면에서'라는 기사를 확인할 수 있다. 현재의 시흥 갯골생태공원은 일제가 만든 대규모 천일염전인 소래염전이었다. 그 이전에는 당연히 바다였다. 소래염전은 1934년 착공하여 1937년 완공하였다. 부지는 지금의 시흥시 장곡동, 신현동, 월곶동에서 인천시 남동면 논현동까지 이어지는 대규모로 평수로 149만평(일제측 549정보)에 이르렀다. 공사에 동원된 인원도 연인원 40만명이 넘었고, 공사비도 60만원이 들었다. 군자염전과 마찬가지로 소래염전을 건설할 때도 중국인 노동자(쿨리)가 대거 참여하였다. 소래염전 축조를 알리는 동아일보 기사(출처 :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https://news..

삼전도비

삼전도비(三田渡碑)  장유(張維)·이경전(李慶全)·조희일(趙希逸)·이경석(李景奭)에게 명하여 삼전도비(三田渡碑)의 글을 짓게 하였는데, 장유 등이 다 상소하여 사양하였으나, 상이 따르지 않았다. 세 신하가 마지못하여 다 지어 바쳤는데 조희일은 고의로 글을 거칠게 만들어 채용되지 않기를 바랐고 이경전은 병 때문에 짓지 못하였으므로, 마침내 이경석의 글을 썼다.(己丑/命張維、李慶全、趙希逸、李景奭, 撰三田渡碑文。 維等皆上疏辭之, 上不從。 三臣不得已皆製進, 而希逸故澁其辭, 冀不中用, 李慶全病不製, 卒用景奭之文)-인조실록 35권, 인조 15년(1637) 11월 25일 기축 1번째기사   이 기록은 삼전도비를 세우기 위해 삼전도비문 혹은 송로 문자(頌虜文字)로 불리는 것을 지은 기사이다. 삼전도비의 정식 명칭은 삼..

시흥시(始興市)의 한국양명학(韓國陽明學) 연구(硏究)

시흥시(始興市)의 한국양명학(韓國陽明學) 연구(硏究)-장유(張維)와 정제두(鄭齊斗)를 중심으로-       1. 들어가기    시흥시(始興市)는 전근대시대 인천(仁川)과 안산(安山)을 경유한 지역으로, 이지역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특히 이 글에서 주목하고 있는 한국양명학(韓國陽明學)의 장유(張維, 1587-1638)와 정제두(鄭齊斗, 1649-1736)는 당시 안산에 지역적 연고를 맺고 활동하였다. 현재 이들의 연고지는 시흥시이다.  양명학은 주자학(朱子學=程朱學)과 함께 신유가 철학의 양대 주류를 형성했다. 양명학은 심학(心學) 혹은 육왕학(陸王學)이라고도 한다. 정주학 특히 주희(朱熹, 1130-1200)의 학설을 부정하던 육구연(陸九淵, 1139-1192)의 이론을 왕수인(王守仁, 1472-1..

장유 선생 묘 및 신도비(시흥시 향토유적 제2호)

장유 선생 묘 및 신도비2016년 9월 26일   신풍부원군 장유의 묘는 덕수장씨 세장지인 시흥시 장곡동 상양산 자락에서 장유 선생의 외손자인 조선 현종의 특별히 살핌으로 새롭게 자리를 잡은 곳이다. 이곳의 지명은 '장군재'로 성씨 '장' 봉군 '군' 고개 '재'를 따서 지은 것이다. 딸인 인선왕후가 현종을 낳아 이후 왕통은 모두 인선왕후의 혈육이 된다.    정조가 1789년 8월 행행(行幸)에서 16일 안산관아에 머물면서   "우리나라에 본디 현명한 국구(國舅)가 많으나, 문장과 공업(功業)의 성대함으로는 신풍부원군만한 이가 없다. 숭릉(崇陵-현종) 어필(御筆) 신도비(神道碑)의 성대한 유적을 추모하니 배나 슬픈 생각이 든다. 고 부원군 장유와 영가 부부인 김씨의 묘소에 승지를 보내어 치제하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