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100일 지난 내 아들 지환이.. 엄마 품에 안겨 매일매일 지낸다. 여름 더위에 땀도 나고 울기도 하는데, 그래도 저녁이 오면 안 자려고 생떼를 쓰나 잠을 자면 다음날 해 뜰 때까지는 잘 잔다. 멀리 창원 할머니, 손주 지환이가 애닳아 '아가야' 라는 시를 쓰셨다. 지환이를 아껴주시고 사랑해.. 가족 2017.07.07
창덕궁과 후원 창덕궁과 후원 조선 왕조의 중요 궁궐이 한양 도성 내 5곳이 있는데, 역대 국왕들이 가장 좋아하고 편안하게 생각한 곳이 창덕궁이다. 이러한 이유로 창덕궁은 정궁인 경복궁이 있지만 임진왜란으로 궁궐들이 화마를 입었을 때 가장 먼저 보수되었다. 이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 달이샘의 역사나들이(답사) 2017.05.01
기호학파의 산실 논산 기호학파의 산실 논산 2017년 4월 25일 논산은 조선 후기 사림의 거두 김장생, 김집, 송준길, 송시열, 윤선거, 윤증 등 많은 인물들이 활동하였던 곳이다. 특히 김장생의 서실인 양성당에서 시작된 돈암서원은 장유(張維), 정홍명(鄭弘溟), 박미(朴瀰) 등 서인의 핵심들이 일찍부터 양성당에.. 달이샘의 역사나들이(답사) 2017.04.25
창녕과 고성 답사(2016. 9.29~30) 신라의 변방 창녕 경상남도 창녕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내륙 습지인 우포늪이 유명하다. 창녕읍 중심에는 옛 창녕 관아가 온전히 남아있진 않지만 객사 건물 일부가 남아있고 그 한켠에 퇴천 삼층석탑이 있다. 지방 행정의 중심에 불탑이 있는 것은 매우 부자연스러운 것인데 일제강점기.. 달이샘의 역사나들이(답사) 2016.09.30
장유 선생 묘 및 신도비(시흥시 향토유적 제2호) 장유 선생 묘 및 신도비 2016년 9월 26일 신풍부원군 장유의 묘는 덕수장씨 세장지인 시흥시 장곡동 상양산 자락에서 장유 선생의 외손자인 조선 현종의 특별히 살핌으로 새롭게 자리를 잡은 곳이다. 이곳의 지명은 '장군재'로 성씨 '장' 봉군 '군' 고개 '재'를 따서 지은 것이다. 딸인 인선왕후가 현종을 낳아 이후 왕통은 모두 인선왕후의 혈육이 된다. 정조가 1789년 8월 행행(行幸)에서 16일 안산관아에 머물면서 "우리나라에 본디 현명한 국구(國舅)가 많으나, 문장과 공업(功業)의 성대함으로는 신풍부원군만한 이가 없다. 숭릉(崇陵-현종) 어필(御筆) 신도비(神道碑)의 성대한 유적을 추모하니 배나 슬픈 생각이 든다. 고 부원군 장유와 영가 부부인 김씨의 묘소에 승지를 보내어 치제하도록 하라. 그리고 .. 달이샘의 역사나들이(답사) 2016.09.26
지역문화축제의 방향 지역문화축제의 방향 -시흥시 축제와 문화행사를 중심으로- Ⅰ. 들어가는 말 지역문화축제는 과거에는 주로 향토축제라고 불리었다. 향토축제는 지역문화의 총화로써 구성되는 한마당 큰 잔치이다. 지역문화의 구심점으로 시골의 전통적, 토속적인 축제는 물론, 한 마을, 도시 등 한 지.. 이런저런이야기 2016.08.26
시흥군(始興群) 수암면(秀岩面) 3․1운동과 윤동욱(尹東旭)의 사상(思想) 시흥군(始興群) 수암면(秀岩面) 3․1운동과 윤동욱(尹東旭)의 사상(思想) 산현동 윤동욱 선생의 생가(손자 윤성준 가옥)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이 전국적인 독립만세운동으로 확대되었다. 이와 같은 만세운동의 촉발은 일본제국주의의 불법적 침탈에 따른 것으로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을 시작으로 1910년 한일병합으로 식민지배를 확정하였다. 따라서 일제는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를 설치하고 헌병경찰제(憲兵警察制)를 통한 무단통치(武斷統治)를 실시하여 야만적인 탄압과 수탈을 자행한다. 3∙1운동은 바로 이러한 일제에 맞서 자발적이고 거국적으로 이루어진 민족적 저항이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각 지역의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전 계층이 일제에 맞서 항일만세운동을 일을 킨 것이다.. 주저리주저리(역사) 2016.07.01
1797년 8월 행행과 정조사적 고찰 1797년 8월 행행(行幸)과 정조사적(正祖史蹟) 고찰(考察) -시흥지역을 중심으로- (안산객사-안산시 수암동 위치, 1797년 8월 행행 당시 정조가 유숙하였다.) 1797년 8월 행행은 조선 후기 진경문화를 바탕으로 문예부흥을 일으키고 세종 이후 학문군주라는 칭송과 함께 조선 시대 그 누구보다도 백성을 사랑한 애민군주 정조(正祖, 1752(영조 28)∼1800(정조24)) 의 행행으로 시흥지역(현재의 경기도 시흥시권역)에서는 그 숱한 일화를 행행을 통해 미담을 만들고 그 이야기들이 지역 면면히 전해지고 있다. 특히 정조의 행행은 ‘백성에게 행복을 주는(行幸)’ 것으로 백성의 어려움은 선왕 영조(英祖, 1694(숙종 20)∼1776(영조 52))보다 유연하고 개방적으로 정조가 친히 백성들에게 민원을 청.. 주저리주저리(역사) 2015.12.24
‘시흥(始興)’과 시흥시(始興市) "동여도"에 표시해 본 오늘날 시흥시 영역 (19세기 후반) 오늘날 시흥시의 영역은 옛 조선시대 인천부과 안산군의 일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오른쪽에 보이는 조선시대의 시흥군은 현재의 서울시 금천구 시흥동 일대의 지역으로 오늘날 시흥시와는 별개의 지역이다. 출처: 시흥시 사이버역.. 주저리주저리(역사) 2015.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