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 6

고구려의 하늘을 열다 졸본(환인)

2009년 6월 10일 고구려의 첫 수도 홀(졸)본에 갔다. 현재의 환인(환런)이다.중국 비류강변의 환인은 고구려의 첫 수도이다. 현재 이곳은 만주족 자치현이다. 그러나 고대에는 고조선에 속한 사람들이 숙신이었고 고구려시대에는 말갈인 오늘의 만주족이다. 2009년은 스마트폰이 없고 일반인들이 즐겨 쓰는 삼성 디카로 촬영을 하다보니 잘 흔들리고 특히 강화도 마니산 같이 구름과 안개에 수시로 휩싸이는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사진이 선명하지 못하다.    검은 구름이 골령을 덮어 / 玄雲冪鶻嶺산이 뻗쳐 연한 것이 보이지 않고 / 不見山邐迤수천 명 사람의 소리가 들려 / 有人數千許나무 베는 소리와 방불하였다 / 斲木聲髣髴왕이 말하기를 하늘이 나를 위하여 / 王曰天爲我그 터에 성을 쌓는 것이라 한다 / 築城於其趾홀..

병인박해와 수원 북수동 성당 등

2024년 10월 13일 수원 종로사거리 일대를 찾았다.보통 이곳은 화성행궁을 복원하여 화성행궁광장과 북편 신세대들에게 소위 인싸인 인기 있는 행궁동을 찾는 것인데, 모처럼 종루 인근 천주교 북수동 성당과 감리교 종로교회와 팔달산 아래 신작로로 명명된 향교길을 걸으면서 수원지역에 있었던 종교적 자취를 생각한다. 2000년대 이전 수원역에 애경백화점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남문으로 불리며 수원은 물론, 용인, 화성, 오산, 안산 등 주변 지역에서 모이는 패션의 일번지이자 문화와 유흥의 중심지였으나 현재는 침체기를 거쳐 화성행궁 복원과 더불어 행궁동 문화의 거리로 되살아난 수원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일찍이 정조가 수원에 신읍치를 현 융건릉이 위치한 화산 아래 구읍치를 지금의 화성행궁으로 옮기면서 유교의 제사와..

울릉도 일주 둘

2024년 9월 9일부터 13일까지 울릉도 일주를 하였다.강릉에서 쾌속선을 타고 3시간에 걸쳐 울릉도 저동항에 11시에 도착하였다. 내수전을 올라 울릉도를 돌아 이튼날 독도의용수비대기념관 야영장에서부터 국민여가캠핑장에서 숙영하고 마지막 행선지 울릉도동에 이르렀다.울릉도동은 울릉도의 중심이며, 이곳에는 독도박물관이 위치한다. 독도박물관은 전문학자는 아니지만 일평생 독도에 대한 일념으로 박물관을 세우고 그 첫번재 관장을 지낸 사운 이종학 선생의 흔적이 보인다. 사운 선생은 수원지역의 인물이다. 남양을 지나면서 우산국기념관을 들르지 못한 것이 아쉬움이 크다.

울릉도 일주 하나

울릉도 망망대해 검은 섬이 동해에 우뚝 솟아있다. 섬이 보이고도 쾌속선으로 1시간 반을 달린다. 울릉도는 평지는 산 정상이나 고산지대라서 해안은 보통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보통 울릉도 서북쪽에 해당하는 북면 나리분지와 서면 해안 쪽 일대가 고대부터 생활중심지로 판단된다. 따라서 천부항에서 이어진 나리 분지에는 울릉도 전통집을 확인할 수 있고 천부에서 사동에 이어지는 해안로를 따라 현포동 삼국시대 고분과 서면 울릉도 벼농사 시배지, 서면 남양항에 우산국기념관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다가 조선 태종 때 공도가 된 이후 수토사가 정박하여 울릉도를 시찰한 곳도 이 일대이다. 곳곳에 수토사 비석(태하)이 이를 말해준다.공도였던 울릉도를 1882년 본격적으로 개척하면서 울릉도 남동해안인 사동, 도동,..

카테고리 없음 2024.10.11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

2024년 10월 5일 제암리에 갔다.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이 개관하였다는 소식에 찾은 길이다. 오랜만에 들리는 마을은 한적하고 잘 정비된 느낌이다. 화성의 농촌마을이 그렇듯 공장에 목장에 농논사에 복잡하고 혼잡한 인상에서 너른 대지에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다. 마을 어귀에 있던 순국기념탑이며, 3.1운동비는 다 공원으로 옮겼다. 예전 순국기념관은 온전히 교회의 시설로 쓰이는 듯 하다. 매번 찾으면 급히 둘러보았는데 두 아들을 데리고 오니 내가 보고 싶은 것을 찬찬히 본다. 뜨거운 볕이나 가을 하는 파랗고 깊다. 그간 보지 못했던 내용도 보인다. 이승만 대통령이 쓴 비를 집자해서 1983년 새로 크게 세운 것이라던가 또는 민선 1기 군수와 임창렬 도지사의 식수라던가, 특히 임창렬 지사는 우리나라 IM..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

지난 4월 개관한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을 다녀왔다.(2024.10.5.) 보통의 전시관과 다르게 시야에 들어오지는 않으나 지하에 시설이 있으면서 점점 내려가는 기념관의 닿는 길은 엄숙하면서도 숙연한 느낌을 준다. 이곳은 화성시에서 있었던 3.1운동의 대표적인 순국지이기 때문이다.(1919년 당시 수원군이며, 오래전부터 남양과 수원이라는 지역 정체성이 깃듯 곳) 제암리 주민 수십 명이 교회당에서 목숨을 잃었고 이웃한 고주리에서는 일가족이 몰살을 당했다.(김흥렬 일가) 이는 모두가 3.1운동이라는 민족적 거사에 분연히 일어났기 때문이다. 화성은 물론 전국에서 일어난 3.1운동은 그저 평범한 우리 이웃이 일제에 항거한 아주 평범하지만 극렬했고 무서운 탄압이 뒤따랐던 참혹한 역사이다. 이제는 우리 헌법에서 천명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