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샘의 역사나들이(답사)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

달이선생 2024. 10. 8. 15:45

2024년 10월 5일 제암리에 갔다.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이 개관하였다는 소식에 찾은 길이다.

오랜만에 들리는 마을은 한적하고 잘 정비된 느낌이다. 화성의 농촌마을이 그렇듯 공장에 목장에 농논사에 복잡하고 혼잡한 인상에서 너른 대지에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다. 마을 어귀에 있던 순국기념탑이며, 3.1운동비는 다 공원으로 옮겼다. 예전 순국기념관은 온전히 교회의 시설로 쓰이는 듯 하다.

매번 찾으면 급히 둘러보았는데 두 아들을 데리고 오니 내가 보고 싶은 것을 찬찬히 본다. 뜨거운 볕이나 가을 하는 파랗고 깊다. 그간 보지 못했던 내용도 보인다. 이승만 대통령이 쓴 비를 집자해서 1983년 새로 크게 세운 것이라던가 또는 민선 1기 군수와 임창렬 도지사의 식수라던가, 특히 임창렬 지사는 우리나라 IMF주역으로 인상이 깊다.

23위를 모신 무덤은 잘 관리되고 있다. 제암리의 위치가 엄중하니 이에 못지 않은 숙연함의 표현이다. 다만 사람들이 잘 찾는 인상은 아니다. 잘 보이지 않고 잘 안내도 되지 않으니 말이다.

기념관과 유적을 가로지르는 실개천이 발안천으로 흐른다. 우리 고향 어느 곳이나 맑은 개천이 흘렀다. 개똥벌레 반짝임도 1990년대 초 이후로는 더이상 볼 수 없음이 안타깝다.

공원 구석에 마을의 참상을 세계에 알렸던 스코필드 박사의 동상이 인상 깊다. 그의 자전거도 잘 표현했는데 1919년 4월 삼괴의 4.3항쟁으로 일제에 의해 수촌 교회 등이 쑥대밭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수원역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온 그였다. 그러던 차에 길가에서 제암리 마을의 학살소식을 듣는다. 모골이 송연해진 그가 마을에 들어갔는데 일본 순사는 바지춤에 손을 넣고 거들먹 거리며 응대하는 모습은 당시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민족대표 34인으로 추대되고 한국 이름은 석호필이 었으며, 국빈 초청되어 한국에서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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