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샘의 역사나들이(답사)

화성 봉돈

달이선생 2025. 2. 26. 11:15

수원 화성(水原 華城) 봉돈(烽墩)

수원 화성 팔달문 동편 지동시장은 순대로 유명하다. 특별히 싸진 않지만 푸짐하고 신선한 재료로 풍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20대 때 아버지와 동생이랑 가서 순대국을 처음 맛 들인 곳이다. 어쨌든 순대국이 먹고 싶어 한달음에 달려 가 완뚝했다. 부모가 좋아하니 어린 두 아해도 좋아졌는지 보채서 나선 길이다. 양이 많아 평소 같으면 애들 것도 넘볼테지만 너무 배불러서 남겼다. 특히 청양고추 채썬 쌈장이 별미다. 나오는데 아이들 사탕도 손 가는대로 덥석 집어 쥐어준다. 엄마네 여긴 엄마네 말고도 다 그렇다.

등을 못 펼정도로 배부르니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화성 성곽 동남각루가 옆이다. 여기 동산은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의 참수된 몸뚱아리를 굴렸다고 전해지는 데… 바로 수원천 건너가 감옥터였다.

창룡문을 방향으로 아해들과 천천히 성곽 아랫길을 걸어 간다. 멀리 시커멓고 웅장한 성채가 보인다. 봉돈이라 아니 그렇지 모르고 봤다면 웅장한 요새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화성 축성 결과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를 보더라도 포혈, 총안이 각각 18개가 뚫린 요새가 맞다. 보통 성곽 위로 지나며 그 위용을 잘 알긴 어렵다. 봉돈을 보시려면 성곽 아래서 보라 봉돈의 안팍을 확인하기 수월하게 창룡문 못 미쳐 암문은 아니나 성곽 아래로 통행로가 있다. 이리로 들고 나면 된다. 그 안으로 들어서면 왼편 아래로 수원시가 조성 중인 남수동 한옥 마을이 있다. 하여간 성곽을 재대로 보려면 바깥에서도 둘러봐야 한다.

 

정조의 신도시 계획하에 채제공을 총리대신으로 하여 1796년 축성된 수원 화성에는 그간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시설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봉돈이다. 봉돈 이외에 기존 성곽에서 볼 수 없는 대표적인 시설이 높게 쌓아 적의 동태를 살피고 방어하는 공심돈 시설과 대형 공격무기를 구비한 적대와 노대, 화기를 운용한 포루 등 다양한 이색적인 방어시설을 볼 수 있다.

봉돈은 봉수를 운영하는 시설로 밤에는 횃불, 낮에는 연기로 전하는 군사신호체계이다. 일반적인 봉수대가 주변을 잘 살필 수 있는 산 정상에 별도의 시설로 만들어진 것과 달리 화성 봉돈은 화성 성벽 일부를 밖으로 돌출시켜 화강석으로 기초를 쌓고, 윗부분은 벽돌로 성벽보다 높게 축조했다. 우리나라 성곽 양식에서는 보기 드문 형식인 수원 화성의 봉돈에는 적군의 공격에 대비해 포혈과 총안은 물론 봉수군들이 사용할 구들방과 창고 등도 갖췄다. 신호체계는 남쪽 첫 번째 화두부터 평상시에는 밤낮으로 봉수 1개, 적군이 국경 가까이 나타나면 봉수 2개, 국경에 이르면 3개, 국경을 침범하면 4개, 전투를 시작하면 5개를 모두 올렸다.

국립과천과학관

이러한 봉수 시설이 서게 된 것은 화성행궁에 정조 등 국왕이 머물게 되면 국정을 위한 대비책이다. 따라서 기존 봉수 체계에서 수원 내륙으로 신호가 되는데 수원 화성이 광교산과 팔달산에 둘러져 있어 서해 흥천산 신호를 받기 어려워 이를 보완하고자 화성시의 건달산과 서봉산에 추가로 간봉을 설치하여 수원 봉돈과 연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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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천산 봉수 이야기

경기만 문화유산 흥천산봉수(興天山烽燧) 우정읍 화산리 활빈교회 두레자연중학교가 위치한 뒷동산은 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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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성역의궤 자료

 

​봉돈
일자문성一字文星의 위에, 동2포東二와 동2치東二稚의 사이에 있는데, 행궁을 안조案照110) 한다. 사방의 성을 쌓고 나서 파수把守111) 를 설치하여 정찰할 임무를 맡긴 것은 척후斥候의 의미를 가진 것이니, 멀리 육지나바다에 대한 경보를 알리는것을 더욱이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드디어 철성凸城의 제도에 의거하여 비로소봉돈을 설치하였다.
벽돌로 쌓아올려 성의 몸체 위에다가 벽돌로 다시 높게 쌓았으며, 성밖으로18척이나 튀어나오게하여 마치 치雉처럼 생겼으면서도 그 보다 크다. 외면의 돌로 쌓은 것이 5층, 벽돌로 쌓은 것이 62층으로 전체높이25척, 너비54척,
현안2 구멍을 뚫었다. 내면은 커다란 계단처럼 굴곡이 지게하여 3층으로 만들었는데, 제1층의 높이 4척, 두께 8척으로, 위에 5개의 화두火 竇112)를 설치하였다. 화두의 밑둘레 각 17척 2촌, 위의 줄어든 둘레 11척 5촌, 높이 11척으로서 성가퀴 위로 6척이나 올라갔다. 거구炬口113) 는 허리 쯤 높이에 있는데, 각 길이 각각 3척 1촌, 너비 1척 5촌, 위로는 꼭대기까지 뚫어지게 하였고, 꼭대기 부분 지름이 1척이다. 5개 화두의 사이에는 성가퀴를 붙였고, 양쪽 끝은 구부려 안으로 향하게 하였는데, 3면에 포혈 18개를 갖추었다. 아래 두 층의 벽돌 층계는 너비 각1척4촌이고 높이 3척3촌인데, 이것도 또한 휘어구부려 3면 벽성을 만들고, 총안 18개와 누혈1개(사방1척)를 내었다. 좌우의 구부러진 돌층계를 거쳐 위로 올라가서 거로炬 路114) 로 통하게 되었는데, 층계가 각10층이다.
양쪽 가장자리의 층계 끝에는 벽돌로 지은집이 이어졌고, 용마루없이 기와로 덮었다. 남북에 각각 한 간씩 있는데, 남쪽에 있는 것은 온돌로서지키는 군졸이 거처하는 곳이고, 북쪽 것은 판자를 깔았는데 기계 따위를 넣어둔다. 봉돈의 몸통이 성내로 들어가서 이 2곳의 모퉁이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좌우 모두 길이가16척이다. 돌층계의 등에기대어 하나의 네모진성을 만들고, 층계 위에도 짧은 담을 3층으로 만들었는데, 아래는 두지붕으로 이어지게 된다. 전 면의 2간은 벽돌로 쌓은 담인데, 길이가18척6촌이고, 한가운데에 작은 문을 홍예로 틀었다. 담의 높이13척으로 높이가 집과 같다. 담의 안쪽 등의아래에 해당 하는 곳은 남북이 32척이고 동서가21척이다. 저녁마다 남쪽의 첫째 횃불구멍에서 횃불 하나를 들면 동쪽으로 용인 석성산石城山의 육봉陸烽115)에서 봉화로 응하고, 서쪽으로는 본부本府의 흥천대興天臺에 있는 바다 봉돈에서 응한다. 이밖의 4구멍은 긴급한 일이 없으면 횃불을 들지 못하게 되어있다. 다만 흥천대의 바다 봉화는 너무 멀어서 곧바로 전하기가 어려우므로 또 다시 화성부의 서쪽30리서봉산棲鳳山 위에 새로이 샛봉화를 두어 여기에서 오는 봉화를 이곳에서 전담하도록 하였다. ​

서봉산
샛봉화 잡석대雜石臺 위에 또한 다섯개의화두火竇를설치하였다. 화두의높이11척이고, 아랫둘레13척인데, 돌로 쌓고 회를 발랐다. 그 꼭대기는 허리쯤의 높이로 하였고, 모두 횃불 아궁이가 있는데, 동쪽으로 화성부 봉돈의 봉화에 준하고있다. 대아래 산허리에 4간의 곳간을 지어 군대물품을 저장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수직청守直廳116) 을 지었다. ​110) 안조案照 : 비친다. 마주보다. 111) 파수把守 : 경계하여 지킴. 112) 화두火竇 : 불을 때어 연기나 불꽃이바깥으로비치게하는구멍. 113) 거구炬口 : 횃불을 지피는 아궁이. 114) 거로炬路 : 횃불을 가지고 왕래하는길. 115) 육봉陸烽 : 육지의 봉돈. 116) 수직청守直廳 : 파수보고 숙직하는 청사.
경기문화재단, 2005, 화성성역의궤 국역증보판 상, 81쪽

 

2025. 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