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샘의 역사나들이(답사)

큐슈행록 오이타현 유후인, 벳부, 분고타카다

달이선생 2025. 2. 25. 10:31

을사년 2월 9일부터 12일까지 일본 큐슈를 다녀왔다. 큐슈는 이번까지 두 번째로 첫 번째 일본 큐슈행은 2014년 후쿠오카와 큐슈 서부 사세보 지역이었다. 이번에는 큐슈 동부 지역으로 후쿠오카를 들어가서 구마모토와 오이타, 미야자키현에 걸쳐있는 구주산국립공원을 갔다. 둘째 날은 오이타현의 유휴인과 벳부시를 탐방하고 셋째 날은 분고타카다시를 거쳐 후쿠오카현 키타큐슈시 탐방하고 마지막날 후쿠오카시를 둘러보는 일정을 하였다.

이번 길은 창원의 부모님과 처남, 아내와 두 아해가 함께한 첫 해외 나들이다. 가족여행이라서 역사탐방이 주가 되지 못하였다. 아쉬운 것은 다음으로 미룬다.

 

오이타현 유후인, 벳부, 분고타카다

큐슈행록(九州行錄)이라는 제목은 앞서서 조선의 여러 기행문을 쓴 선례를 따랐다. 다만 박지원의 열하일기보다는 낯선 곳에 정보도 없이 다녔던 기록이라 정약전의 표해시말이나 표해록, 이지항의 표주록과 같은 의미의 기록으로 삼았다.

3박 4일의 일정이나 대체적으로 큐슈의 자연경관을 돌아본 일정과 큐슈의 온천에서 휴양, 그리고 후쿠오카에서의 답사가 큰 줄거리다.

유휴인은 한자 지명(유포원)에서 알 수 있듯 우리로 치면 세종시의 조치원과 같은 지역이다. 큐슈 남단의 가고시마현이나 구마모토현에서 혼슈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교통요지로 원이 위치한 곳이다. 원은 일종의 여관을 의미하므로 온천이 나오는 이곳이 길손들의 중요한 잠자리였다. 지금은 온천수로 자욱한 안개가 유명한 긴린코호수로 유명관광지인데 우리나라와 대만 등지의 관광객이 넘쳐난다. 긴리코 호수는 말이 호수지 저수지다. 저수지라서 일본의 물요괴, 아이들을 그렇게 물로 데려가 죽였다는 전설의 물요괴 캇파가 중요 캐릭터이다.

벳부로 넘어가는 길은 유후산과 츠루미산을 지나는데 고지대라 너른 초지가 발달했다. 3월이며 이 초지들을 불태운다고 한다. 이색적인 풍경에 많은 젊은 관광객들이 그냥 지나치질 않는 인싸로 보인다. 산이 발달한 곳이라 우리처럼 일본인들도 등산을 많이 한다고 한다. 츠루미산으로는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곤돌라가 정상으로 이어진다. 동양 3국 중 유독 중국인은 등산으로 걷는 걸 싫어하여 중국 명산 곳곳은 다 곤돌라 등 케이블카가 즐비한데 일본도 이런 시설이 많다. 그러나 등산을 싫어하지 않고 좋아한다고 한다.

벳부는 한자로 별부라는 뜻으로 오이타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곳인데 지금은 오이타보다 벳부가 널리 알려져 있다. 벳부가 바로 유황온천지구이기 때문이다. 벳부의 인상은 산중지대일까 했더니 너른 바다가 펼쳐지고 뒤로는 깍아지듯 산세를 이룬 곳이라 경상도 마산이나 울릉도 해안과 닮았다. 벳부해안 동남쪽은 일본 해안 중 수심이 제일 깊어 일본의 가장 큰 제철소가 위치한 오이타항이 있다.

벳부해안을 걸었고 과거 에도막부가 기리시탄이라고 불린 일본 기독교인을 박해했던 지옥온천을 둘러봤다. 이들 온천은 온도도 뜨겁고 깊어 죄인을 빠트려 해한 곳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온천이나 지옥이라고 부른 것으로 보인다. 벳부가 에도막무에 의해 중요한 곳이 된 것은 바로 유황이다. 유황은 유노하나라는 곳에서 생산하였는데 지금도 그러한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일본이 세계와 만나는 교역품으로 유황이 큰 이득이 되었다. 우리도 일본으로부터 많은 유황을 들여왔었다.

산장 온천수는 좋았는데 유황 온천은 체질에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동행한 가이드의 말을 들으니 일본의 많은 온천이 있는데 일본 사람들도 자신에게 맞는 온천을 선택해서 즐긴다고 한다. 벳부는 아니다.

벳부에서 자고 분고다카다시를 지나 키타큐슈로 갔다. 분고타카다시에는 쇼와노마치라는 곳이 있는데 쇼와시대의 풍물을 보존한 곳으로 이해하면 된다. 쇼와는 우리로 치면 88년도로 일본 경제부흥기다. 재밌게도 쇼와는 히로히토 일왕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이다. 일본 몰락의 주범에서 일본 부흥의 주인공이라는 아이런히가 있다. 당시 일본이 재건되는 데는 우리의 불행이 작용한다. 바로 1950년 6.25 한국전쟁이다. 미군의 위시한 연합군의 군수지원을 통해 전쟁 특수를 톡톡히 봤다. 1960년대 일본의 성장과 세계 경제 제2국으로 발돋움 하는데는 우리의 피눈물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부흥 역시 우리도, 그들의 피눈물 있었다. 바로 베트남 전쟁이다. 이 전쟁으로 우리도 부흥할 수 있었다. 현재 잘 나가고 있는 K방산의 시작이었다.

쇼와노마치는 여행사에서 추전했으나 가지 않길... 우리의 정취의 시원이 되는 아톰 등 그 당시 일본 문화를 엿볼 수 있으나 안 가도 되는 곳이다. 마침 2월 11일이 일본의 건국절로 공휴일이라고 하는데도 일본인들도 별로 없다. 물론 전시장을 포함한 그 일대를 찬찬히 둘러볼 요량이면 가도 된다.(지역 상권 개발의 표본으로 예산시장 같은 사례) 그게 아니라면 그냥 지나가자

 

장장 1시간 40분에 걸친 가이세키
조식
산에 초지를 불태우게 되면 고속도로에 재가 쌓이는 것을 막기 위한 지붕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