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리주저리(역사)

두만강의 눈물

달이선생 2019. 9. 5. 14:00

고려인 150년 사진전

 '두만강의 눈물' 항일과 절개, 안산전

  다른 전시가 있어서 안산문화예술의전당 화랑전시관을 찾았다가 반가운 얼굴이 보여 들어간 전시였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전시가 마지막날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반가운 얼굴은 우리 홍범도 장군님, 김경천 장군님... 지난해 충청북도 진천을 찾았다가 알게된 프롤레타리아 문학작가 조명희 선생, 선생은 잘 알려지진 않은 인물이지만 진천에 그의 문학관이 있다. 우리 정서와 우리 한글을 통한 아이들에게 미래 희망을 품은 글쓰기를 했던 작가이다. 홍범도 장군이야 최근 봉오동 전투라는 영화도 나오고 너무나 유명한 분이시고 김경천 장군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분이다. 특히 합리적 반공에 실증된 인물인데, 바로 북한의 김일성 주석의 항일운동에 표본이자 일화는 바로 이 김경천 장군이었다. 러시아 지역에서 끊임없이 무력항쟁을 추구한 장군의 의지와 신념이 곧 북한지도자 김일성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그리고 예명이 '김일성'으로 원조 김일성 장군이시다. 사실 김일성 주석도 김경천 장군과 같은 지도적 위치에 있지는 않았으나 동북항일연군이라는 공산주의계 독립운동 무장유격대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한 10년이 되어 가는 것같다. 대안학교에서 아이들과 지내다가 이동수업이라는 것으로 러시아 우수리스크를 갔었다. 그곳은 우리 한민족이 고향을 떠나 정착한 대단위 이주지였고 항일 독립운동의 거점이었다. 그랬던 곳이 1937년 소련의 지도자 조지아 출신 스탈린이 고려인의 지도자급 인물을 대거 숙청하고 재연해주 고려인 전부를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시켰다. 그리고 소련이 해체되고 중앙아시아 각국이 자민족주의를 내세우며, 국가의 기틀을 다져가자 다시금 뿌리가 흔들리게 된 고려인들이 고향이 살던 우수리스크로 재 이주를 하였고, 이러한 고려인의 노력에 동참한 곳이 동북아평화연대였다. 

  아이들과 동북아평화연대가 고려인 이주단지를 개척하는 곳에 찾았던 것이다. 100여 년 전 조상들이 찾았던 우수리스크는 러시아라고 해야 러시아로 알지 실제 풍광과 날씨 등은 너무나 익숙한 정서였다. 물론 너른 평원지역으로 우리의 평야보다 광활한 대지지만 그 공간이 주는 정서와 느낌은 우리의 터전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이 우리의 터전으로 삼았던 것이다.

  지금도 살라이는 바람 따라 펼쳐진 너른 들판의 푸른 초원과 그 아래 발치에 디뎌지는 검은 기름진 흙... 농사를 대본으로 알던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큰 기쁨으로 땅을 어루만졌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그 곳에서 당시에 느낀 감정이다. 그렇게 알게된 고려인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들의 열망을 다시금 만날 수 있게 해준 전시였다. 

  천천히 예전 기억을 더듬는 시간이 되었어야 하는데, 여유로이 찾은 자리가 아니어서 마음이 급해 사진 몇 장을 담아 이렇게 펼쳐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