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샘의 역사나들이(답사)

석북 신광수 백비와 시조명칭유래비

달이선생 2014. 10. 30. 14:30


신광수는 영조 때 남인으로 채제공과 벗하였다.

 

그가 쓴 관서악부(關西樂府)15에서 "일반으로 시조의 장단을 배()한 것은 장안에서 온 이세춘(李世春)일세(一般時調排長短來自長安李世春)."라고 하면서 '시조'라는 명칭을 사용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묘소에는 백비(白碑)가 놓여져 있다. 세상에 대해서 할 말이 많아 다 못 써 백비인지

 

너무 없어서 백비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근래 비석들에 가득 쓰여진 비문을 생각하면 그의 백비가 주는 느낌은 무겁다.

 

신광수는 매우 궁핍했고 민중의 애환을 담은 시를 많이 남겼다. 그런 그가 죽자 후손들은 비석은 해야하겠으나 신광수를 생각하면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그 고민이 백비를 남기지 않았을까

      

시조명칭유래비 건립 및 석북문학제

 

20141030/서천군 화양면 대등리 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