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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참변의 친일 경찰, 그리고 친일 청산

간도참변에 가담한 친일 경찰 명단 발굴과 경찰의 역사바로세우기의 명과 암 2019년 KBS는 희망 없은 독립운동의 길에 끝내는 동지를 팔아 자신의 안위를 챙기며, 반민족으로 나서야했던 주요 밀정들과 895명의 밀정 명단을 공개하였다. blog.daum.net/ilovepk/259 밀정 밀정은 독립운동의 주요 정보를 몰래 일제에 빼돌리는 사람이다. '독립군이 2천명 결성됐어도 그 안에 밀정이 한 사람 있으면 그 조직은 와해되고 마는 것이다. 밀정은 그만큼 어떤 반민족 행위 blog.daum.net 이를이은 2탄으로 KBS는 간도참변에 가담한 한국인 경찰관 48명의 공적이 적힌 일본 외무성 문서를 최초로 발굴하고 보도하였다.(3.1. 9시뉴스) 자료는 일제가 상훈을 주기 위해 작성한 600쪽 분량의 문서로 ..

장준하통일관

​ 재야의 빛 장준하는 한신의 큰 어른이다. 늦었지만 한신대에 그의 자취가 남겨진 것에 감사한다. 2002년 한신대 60주년을 기념해서 건립한 강의동을 '장준하통일관'으로 새롭게 명명했다. 그리고 그 로비를 '장준하기념홀'로 단장하고 건물 가운데 한 귀퉁이에 '장준하 돌베개공원'을 마련하였다. 일제의 학병을 참전하였다가 도망하여 충칭 김구를 찾아가 한국광복군이 되고 해방된 조국에서 민주화를 부르짖다 산화한 장준하 선생이다. 그를 기억하는 이정표가 한신대학교에 세워졌다. blog.naver.com/leelove97/222223145498 우리동네 양산동 오산시와 한신대학교 한국사학과가 함께하는오산역사 기록하기 - 양산동우리동네 양산동​ 한신대학교가 위... blog.naver.com [박태균의 역사와 비평..

우리동네 양산동

오산시와 한신대학교 한국사학과가 함께하는 오산역사 기록하기 - 양산동 우리동네 양산동 한신대학교가 위치한 곳은 흔히 화성시 병점으로 알고 있는데 정확히는 오산시 양산동이다. 양산동은 세마대 북쪽 산봉우리인 양산봉 아래 위치한 마을이고 그 언저리에 한신대학교가 넓고 동서로 길게 자리하고 있다. 한신대학교가 양산동에 위치한 것은 우리 민주화 역사와 맥을 같이하지만 이곳 양산동 마을 역사에서는 마을 발전을 위해 새마을운동에 열심히었던 마을 주민들의 큰 성과물 중 하나였다. 여느 마을 못지 않게 마을 발전을 위해 노력하던 주민들은 자립을 목표로 마을 금고인 '새마을금고'도 설립했을 정도로 열성적인 새마을운동가들이었다. 이런 마을에 흔히 데모쟁이, 빨갱이 학교라고 불리며, 박정희정권에 미운털이 박힌 대학교를 유치..

명랑경기학2(물) '화성시 찬우물마을의 어제와 오늘

2020 경기지역학활성화 공모지원 개인연구 모음집(경기문화재단) 생기를 찾아가는 명랑경기학2 물 '화성시 찬우물마을의 어제와 오늘' 중심에서 주변으로 중앙에서 지역으로 역사학의 주된 관심도 21세기 들어 더욱 작아지고 넓게 이루지면서 '지역학'이라는 이름으로 활성화 되고 있다. 경기지역학은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에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그 중 지역연구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것이 '명랑경기학' 시리즈이다. 경기도 각 지역에서 전근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주제로 삶과 생활사 조사연구 등을 공모 형식으로 연구 진행한 연구모음집이다. 2019년 처음 생기를 찾아가는 명랑경기학1 흙, '시흥시의 어제와 오늘-간척을 중심으로'를 쓰고 두 번째 참여가 된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어제와 오늘'이..

효암

효암孝巖의 유래 소재지 : 경기도 화성군 봉담면 수기리 홍법산弘法山 기슭에 있는 이 효암은 고려 의종毅宗 때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낸 효자 최누백崔婁伯이 사냥을 하다가 호랑이에게 물려죽자 곧 도끼를 매고 추적해 이 바위 아래에서 범을 잡아 부친의 원수를 갚고 또 호환虎患으로 난리를 겪던 이곳 백성들의 걱정을 덜어 주어 칭송을 받았던 곳이다. 지금의 수기촌과 분천 일대는 고려 때에 용성현龍城縣에 속했으며 조선 시대에는 삼봉三峯이라 불리던 것을 일제가 삼봉 갈담葛潭을 합쳐 봉담으로 개명하였다. 조선 제22대 정조대왕正祖大王은 효성이 지극했던 임금으로 아버지 장헌세자莊獻世子,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능陵을 이곳 화산花山으로 옮기고 자주 이곳에 행차 했는데 행차 길에 최공의 후손을 불러 훌륭한 조사이라 극찬하며 수..

최루백 효자비각

인물은 한림 학사 국자 좨주 최누백(崔婁伯)이다. (【고려 인종(仁宗) 때 사람이다. 】人勿, 翰林學士國子祭酒崔婁伯, 高麗、仁宗特人)-세종실록 148권, 지리지 경기 수원 도호부 전근대시대 수원을 대표하는 인물은 누구인가? 바로 수원최씨의 비조가 되는 효자 최루백(?~1206)이다. 수원을 본향으로 하는 성씨 중 최씨는 둘인데 그중 본최(本崔) 또는 원최(原崔)가 되는 것이 최루백의 수원최씨다. 화성시 매송면에 무덤이 전하는 비조 최영규는 수원최씨, 수성최씨로 불리는 내최(來崔)이다. 최루백은 고려 때 수원의 호장 최상저(崔尙翥)의 아들로 한림학사를 지내 인근 화산에 사도세자를 모신 정조가 "최학사"로 칭했던 인물이다. 특히 정조는 이를 더하여 최루백이 아버지 최상저의 시신을 수습한 바위를 효암으로 명하..

이곤 선생 효자문

화성시 봉담읍은 전근대시대 수원에 속하는 곳으로 고려시대 대표적 효자 수원최씨 최루백(崔婁伯)의 본향이고 조선 고종 때 재 정문된 효자 이곤(李琨, 1641~1697)의 연고지다. 사실 봉담은 정조가 수원 신읍치를 팔달산 아래로 옮기고 화성을 쌓기 전까지 수원읍이자 중심이었다. 지금의 정조와 그의 부모인 사도세자와 혜경궁의 릉이 있는 융건릉 자리가 수원관아 터고 그 주변으로 토성의 수원고읍성이 현존한다.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금산지역은 청동기시대부터 꾸준히 역사가 이어져 온 곳으로 봉담이 원수원의 표상이며, 그 이름인 물의 고장인 것처럼 봉담 자체도 물을 뜻하고 봉담에는 지천에 오래된 저수지가 퍼져 있다. 봉담읍(峰潭邑)은 1831년(순조 31)전까지 삼봉면(三峰面), 갈담면(葛潭面)으로 되어 있..

서호천 십리길, 화산교에서 평고교까지

서호천 십리길, 화산교(여기산)에서 평고교(평동)까지 서호천 십리길은 수원시 서호천변 길이다. 서호천(西湖川)은 광교산에서 발원하여 파장저수지와 웃파장천이 만나고 이어 이목천을 만나 흐르다가 천천교(동남대학교) 부근에서 영화천(만석거)을 만나서 축만제(서호)에 다다른다. 축만제에 가둬진 물이 다시금 시작(축만교 아래 수문)되는 서호천길을 나선 것은 여기산 북쪽 아래 화산교(화서역)에서부터 축만제 둘레길을 지나 항미정(축만교), 서둔교(수인로), 농대교(옛 서울농대, 현 경기도상상캠퍼스 등), 벌말교(옛 선경직물 수원공장), 평동(고색동) 평고교까지 이르는 길이 4km가 조금 안되나 얼추 십리길이다. 지금 이 길은 수원시에서는 팔색길의 하나로 모수길로 한 길이고 경기도에서는 삼남길로 부르는 길이다. 도보로..

영화천 십리길, 서호천에서 만석거(영화정)까지

영화천 십리길, 서호천에서 만석거(영화정)까지 영화천(迎華川) 십리길은 수원시 영화천변의 길이다. 서호천 13교인 한마루교에서 서호천의 지류인 영화천이 만나는데 여기부터 동북쪽으로 길을 잡아가면 정조가 축조한 만석거(萬石渠)가 나온다. 이 만석거가 영화천의 실질적인 발원지이다. 여기까지가 대략 2km가 넘고, 만석거의 둘레가 1km가 넘으니 다 돌아보면 거의가 십리(4km)라서 이름한 것이다. 참고로 수원시는 3월 16일 국토지리정보원 고시에 따라 일왕저수지는 만석거로, 서호는 축만제(祝萬堤)로 공식 명칭이 각각 변경됐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먼저 걸음하였던 황구지천과 서호천은 과거 수원 권역으로 볼 때는 도심 외곽에 위치한 변두리에 가까웠다. 지금도 황구지천은 수원 서부 들녘을 관통하지만 도심은 아니다...

서호천 십리길, 여기산에서 해우재까지

서호천 십리길, 여기산에서 해우재까지 서호천 십리길은 수원시 서호천변 길인데, 시작을 여기산 북쪽 아래 화산교(화서역)에서부터 해우재까지 이르는 길이 4km가 조금 넘어 십리길이라고 하였다. 지금 이 길은 수원시에서는 팔색길의 하나로 모수길로 한 길이고 경기도에서는 삼남길로 부르는 길이다. 같은 길이지만 입장에 따라서 제각각이다. 나도 말이다. 서호천(西湖川)은 광교산에서 발원하여 파장저수지와 웃파장천이 만나고 이어 이목천을 만나 흐르다가 천천교(동남대학교) 부근에서 영화천(만석거)을 만나서 축만제(서호)에 다다른다. 참고로 수원시는 3월 16일 국토지리정보원 고시에 따라 일왕저수지는 만석거(萬石渠)로, 서호는 축만제(祝萬堤)로 공식 명칭이 각각 변경됐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황구지천변의 매실길을 걸으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