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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천 십리길, 여기산에서 해우재까지

달이선생 2020. 6. 26. 22:38

서호천 십리길, 여기산에서 해우재까지

 

    서호천 십리길은 수원시 서호천변 길인데, 시작을 여기산 북쪽 아래 화산교(화서역)에서부터 해우재까지 이르는 길이 4km가 조금 넘어 십리길이라고 하였다. 지금 이 길은 수원시에서는 팔색길의 하나로 모수길로 한 길이고 경기도에서는 삼남길로 부르는 길이다. 같은 길이지만 입장에 따라서 제각각이다. 나도 말이다.

  서호천(西湖川)은 광교산에서 발원하여 파장저수지와 웃파장천이 만나고 이어 이목천을 만나 흐르다가 천천교(동남대학교) 부근에서 영화천(만석거)을 만나서 축만제(서호)에 다다른다. 참고로 수원시는 3월 16일 국토지리정보원 고시에 따라 일왕저수지는 만석거(萬石渠)로, 서호는 축만제(祝萬堤)로 공식 명칭이 각각 변경됐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황구지천변의 매실길을 걸으나 매실길을 느낄 수 없고 서호천변 모수길을 걸으나 모수국(『삼국지』위서 동이전 한조[韓條]에 삼한[三韓] 소국인 마한 54개국 중 수원에 비정된 국가)을 느낄 수 없다.  설명도 없고, 연상되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간혹 수원 갈비 이야기 안내판 등이 보이는데 그 설명이 자못 과장이 심하다.(수원이 정조대 신도회지가 되면서 우시장 등이 개설되면서 부가 넘쳐 쇠고기를 소비할 정도였다라고... 적어도 우리나라 6~70년대 이전의 우시장은 농우[농사일을 부리는 소]를 매매하던 것이지 육우(식육을 목적으로 기른 소)를 거래하여 도축한 것이 아니다) 그런 걸 해놓기보다는 차라리 구간마다 옛 수원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현재 자리의 지명이야기를 해 놓는다면 차라리 좋겠다. 수원의 제대로된 이야기를 하시라 수원시민이든 외부인이든 수원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서호천은 상부로 갈 수록 해발고도가 평균적으로 거의 수직에 가깝다. 하천이 시작되는 발원지부터 하천의 거리가 짧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걸으면 그러한 경사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영화천과 만나는 천천교 부근에서 하천변을 따라 가다 배다리를 지나면 하천은 급격하게 좁아지고 물도 줄어 서호천 아래로 있던 산책로가 위로 이어지고 그마저 이목 3교를 지나면 개울로 변하고 그 윗길도 수풀이 우거지고 걷기가 어렵다. 이러한 서호천은 거의 도심 속 작은 숲이자 습지이다. 수원 도심의 허파이자 자연도 살아있어 오가는 길에 물가에서 자라, 잉어, 청둥오리에서 족제비까지 볼 수 있어 자연생태계가 온전히 유지되고 있는 자연하천이다. 서울의 청계천은 상부로 갈 수록 자연미가 떨어지는 인공하천이지만 수원의 하천인 서호천은 자연미가 물씬 풍기는 보고이다. 가는 길에 뱀조심 표지판도 보이고, 다행히 뱀을 만나지는 않았다. 

 

역발상 해우재, 해우재를 갔으나 화장실은 없다

  서호천을 거슬러 오르다 이목천으로 해서 해우재로 가려고 길을 잡았는데, 이정표가 없어 무작정 오르니 이목3교를 지나 개울로 변한 서호천을 보고 아래로 내려왔다. 오는 길에 새아파트 단지로 빠지던 수로가 있었는데 이정표가 없어서 혹시 아파트 하수도인가 했는데 그곳이 이목천으로 해우재로 이어지는 곳이다. 다만 이목천을 따라서는 해우재에 갈 수 없다. 가는 중간 도로며, 복개와 천변로가 없어서 그렇다. 아무튼 곡절 끝에 해우재에 다다랐다. 해우재, '근심을 푸는 집'을 이르는 뜻으로 사찰의 뒷간(화장실)을 이르는 말이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똥에 대한 역발상이 있다면 먹고 배설한 것을 다시 식용으로 썼던 아직 동물성을 못 벗어난 인류를 차지하고서라도 큰 변혁은 이 더럽고 냄새나는 오물로 버려지던 똥이 자원화 한 것이다. 바로 거름의 과학, 시비법이다. 한 때 미군들이 서울 왕십리 채마밭에 인분이 뿌려지는 것을 보고 한국에서는 절대 채소를 사먹지 말라는 우스겟소리가 있었다.(비위생적이라고 매도) 그랬던 똥이 바로 이곳, 수원에서 문화콘텐츠가 되고 관광아이콘이 되었다. 미스터 토일렛이라고 불리는 심재덕 수원시장으로부터이다.

  그런데 화장실의 명소인 해우재를 갔건만 해우재에는 해우소가 없다. 다시 말하면 해우소는 있는데 개방하고 있지 않아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시설 전체를 휴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외 전시는 막지 않았고 그 때문에 찾는 이 더러 있었다. 또한 별개로 수원 곳곳의 공공장소에는 개방화장실이 사용이 가능한데 화장실의 메카인 해우재에 화장실을 못 쓴다. 이건 무슨 처사인가... 지하에 계신 심재덕 시장님이 아시면 통탄하시겠다. 셰계제일 화장실 문화혁명을 이룬 본인의 옛집은 그를 찾아, 혹은 해우재를 찾아 오는 손들이 그가 이룬 쾌적한 문화공간인 화장실을 쓰지 못하니... 앞서 이야기한 모수길과 안내판 등, 수원시의 처사가 아쉬운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아무튼 문화도시이자 관광도시 수원의 이미지와 위상을 생각하면 하루 빨리 개선되길 바란다.   

 

화산교 아래 서호천에서 처음 만나는 짐검다리이다. 이런 다리가 여럿 놓여 서호천 양 옆을 연결하고 있다.
화산교 아래 짐검다리에서 바라본 서호천 상류
화산교와 그 뒤가 여기산이다. 여기산 너머가 서호천 축만제이다.
천천교, 철교, 꽃뫼버들교가 연거퍼 지나는 구간으로 오른쪽으로 영화천이 만나는 곳이다. 
꽃뫼버들교 아래 눈길이 가는 벽화로 서호천에서 본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이다. 서호천 일대 지도와 수원의 하천지도, 서호천의 동식물을 그린 그림이다.
도심 속 작은 숲을 이루고 있는 서호천
서호천에 가장 이색적인 다리이다. 좌우로 짐검다리를 놓고 가운데 물길 위로 나무 데크다리를 놓았다.
서호천에서 만난 가장 어른이다. 족히 수령이 60년은 넘은 것으로 보이는 아름드리 미루나무이다.
선화교 위 왼쪽의 솟대공원이다. 사전에 명성이 있어 눈으로 보고픈 맘에 단숨에 올라가 보니 볼게 없었다. 인터넷을 찾아가며 그 사진 찾기가 어려운 일을 이제야 알겠다. 이런데 누가 사진을 남길까 아래 설명판이 무색하다. 솟대 여러 개를 두르고 솟대 공원이란다. 차라리 중앙에 돌을 쌓고 높고 큰 솟대 하나만 설치했다면 삼한시대 소도를 상징하는 뜻으로 단순한 멋도 있으련만... 우리가 문화를 대하는 태도를 생각해 볼 일이다. 
서호천에서 가장 높은 12단을 이루고 있는 폭포다. 서호천에는 이러한 폭포가 3개 정도가 있는데, 이는 경사를 통한 유속의 흐름을 빠르게 하는 시설이다. 이게 무슨 폭포냐고 할 수 있는데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서호천 상류 배다리교이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이목천과 만난다. 여기를 지나면서 서호천은 급격히 폭이 줄고 수량이 줄어 천변길도 뚝방 위로 이어진다. 
서호천에 만나는 이목천 하구이다. 길 옆으로 이목천을 따라 해우재로 오르고자 하였으나 천별길은 담장, 복개, 도로 등으로 끊겨서 온전히 답사를 할 수 있지 않다. 도로변길로 해우재로 갔다.
도로를 따라 서북쪽으로 1~2백미터 가니 해우재가 나온다. 오른쪽은 미스터 토일렛 심재덕 시장이 변기 모양으로 지은 집으로 후손들이 수원시에 기증하여 화장실 전시관으로 쓰이는 곳이다. 그 뒤로 화장실 관련 각종 조형물로 꾸민 야외 전시장 및 정원이다. 오른편은 해우재 문화센터이다. 그 아래 이곳 전체 관람객이 사용하는 화장실이 있는데 시설 휴관이라고 화장실도 폐쇄하고 있었다. 화장실에 왔는데 화장실이 없다. 수원 곳곳의 공용화장실은 개방중인데 이건 왠일인지... 길손들이 제법 있는데 말이다. 
근심을 푸는 집, 해우재
똥통을 형상화하여 만든 야외전시장 입구 정문이다. 문구가 붙은 글자 등이 떨어져 나갔다. 곳곳에 이런 것이 많이 눈에 띈다. 코로나로 무작정 쉴 것이 아니라 시설보완에 나서는게 어떨지
백제의 호자 조형물, 백제인 남성 소변기이다.
백제인의 변기 조형물
경주 임해전지 부근 신라 왕궁의 최초의 수세식 화장실 모형이다.
조선의 왕이 쓰는 변기 매화와 매화틀 조형물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을 변기에 앉혔다. 이래서 화장실이 해우소(근심을 푸는 곳)라고 하던가
뭐니뭐니 해도 우리네 친숙한 변기는 바로 이 요강, 큰 요강 조형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