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예술품) 또는 공공시설을 파괴하는 행위나 그러한 경향을 일컫는 것이다. 5C 초 유럽의 게르만족 대이동 시기 아프리카에 왕국을 세운 반달족이 지중해 연안에서 로마에 이르는 지역까지 약탈과 파괴를 거듭한데서 유래한 것이다. 현대 최악의 반달리즘 사례는 2003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이
‘형상은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는 종교적인 이유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바미안 고대 불상을 폭파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중도유적(中島遺蹟)이 아닐까
반달리즘(Vandalism)
“보존이냐 개발이냐”
를 두고 우리나라에서 문화유산에 대한 근본 문제가 사회적으로 제기된적이 있다. 특히 반달리즘(Vandalism, 문화재, 문화적 예술품, 종교 시설, 넓게 보면 타인의 재산 등을 파괴, 훼손 행위)으로 규탄되며 고고학과 역사학계가 격앙되고 여론이 들끓었는데 1997년부터 시작된 국립문화재연구소와 한신대학교 박물관의 풍납토성 발굴조사이다.
특히 풍납토성 발굴은 한국 사회에 가지는 의미가 크다. 한성백제 경당지구는 원래 경당연립부지 재건축을 위한 한신대 박물관이 구제발굴이 실시한 것이다. 말 그대로 학술이 아닌 구제를 위한 긴급한 문화유산 발굴조사였다. 그런데 이곳에서 갑자기 백제 왕성의 유물이 대량으로 쏟아진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는 단순히 유적 발굴의 쾌거로 생각될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있었는데 바로 재건축조합과 입주민의 처지다. 이들은 발굴로 건축 일수는 자꾸 늦어지고 해당 발굴 비용까지 상승하면서 이들 재건축조합과 입주민의 피를 말린다. 결국 1999년 조합장과 입주민 등 3명이 야밤에 발굴 현장에 난입하여 유물이 쏟아진 9호 유구를 파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경당지구를 발굴하면서 유적의 중요성은 백제 500년 왕성에 대한 실증이 대규모 유적과 유물을 통해 확인되었다. 하지만 이곳은 오래전부터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서울 풍납동 경당연립 주민들이 재개발과 건축을 통해 새 보금자리를 만들어야 했던 것으로 과거 문화유산으로 하루아침에 살 곳을 잃어버릴 수 있는 초유에 사태로 생존권이 달린 문제였다.
결국 개발을 멈추고 토지보상으로 일단락되었지만 향후 풍납토성 주민 2만 가구가 점차적으로 이주 보상되어야는 문제를 떠안게 되었다. 개발독재시대는 부동산 가격도 낮고 관의 집행력이 과도하게 처리할 수 있었지만 1990년대 서울의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던 시기로 부동산 가격만 보더라도 당시와 지금은 결코 쉬이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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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백제 경당지구 몽촌토성 석촌동 방이동고분군
풍납토성(風納土城) "백제 최초의 도성, 하남 위례성의 실체"는 풍납토성이다. 풍납토성은 둘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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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문제 이전에는 문화유산 발굴에 있어 문화유산이 국가 귀속의 국가유산이지만 발굴부터 오로지 토지주의 문제로 치부하여 일방적으로 그 부담을 지우면서 국가에서 터부시했다. 이는 단지 국가가 유물에 대한 소유권만 빼앗는 방관자적 태도였다. 하지만 풍납토성 경당지구 발굴 문제 이후 국가는 매장문화유산에 대한 국가유산으로 귀속이 있는 만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도 그 책임을 간과할 수 없다는 선례가 된 의미가 되었다. 지금도 매장 문화유산에 대한 귀속은 국가의 당연한 권리이다. 다만 그러한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는데 있어서는 관의 정당한 행정처리가 뒤따라야 한다. 강탈적, 강압적 처리는 경당연립조합처럼 주민들이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행위로 내몰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인식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매장문화유산을 재산권 침해로 보고 개인이 쉽게 파괴해버리는 행위가 종종 벌어지고 있다. 현재도 이런데 과거에는 무슨 말이 필요한가. 석촌동 고분만해도 수만기에 이르러 이곳이 석촌이라고 불렸지만 현재 남아있는 고분은 손을 꼽는다.
이러한 비극이 이곳 춘천 의암호 중도에서 있었다. 원래 중도는 섬이 아니다. 소양강에 의암댐이 건설되면서 호수가 되었고 수몰된 일부가 하중도가 된 것이다. 춘천이 호반의 도시로 불리는 이유이다.
그런데 새롭게 생긴 중도가 뜨거운 감자가 된다. 2008년 강원도가 레고랜드 조성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처음 레고랜드 입지로 우선이 되던 곳은 이천(1996년 레고그룹 회장 방한)이었지만 수도권 규제 때문(수도권정비계획법)에 좌절되었고 이를 강원도가 나섰다.
문제는 2011년 중도에서 레고랜드 조성공사를 시작하자마자 고구려 계열 돌무지무덤을 시작하여 청동기, 신석기에 이르는 총 9천 점의 유물과 무덤, 집자리 유적까지 쏟아진 것이다. 강원도는 지역의 개발과 발전, 특히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경제적 특수를 위해 중도유적을 외면한다. 민주당 최문순 도지사는 레고랜드에 혼신을 다한다. 결국 무리한 추진은 2022년 강원중도개발공사의 기업회생을 신청(국민의힘 김진태 신임 도지사)하는 레고랜드 사태까지 일으켰다.

빛의혁명으로 출범한 참여정부가 많은 기대 속에서도 ‘소문난 잔치’에 그친 것처럼 강원도 최문순 도정도 문재인정권과 궤를 같이하였다. 그때 가장 큰 피해는 우리역사 수천년의 보고 중도유적으로 레고랜드가 들어서며 파괴되었다.
물론 중도유적처럼 문화유산이 개발의 논리로 파괴되는 아픈 역사도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그보다 높은 가치우선의 아름다운 이야기도 있다. 시흥 오이도 유적이다. 오이도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문화유적으로 보존운동을 벌였다. 오이도 문화유적 시민 보존운동으로 2000년 2월 시흥시 환경 등 시민단체가 오이도주민과 함께 오이도 유적 보존운동 시작하였다. 이때 구성된 것이 ‘오이도 선사유적 보존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이다. 이렇게 시흥 오이도 유적이 지켜지면서 현재는 국가 사적(2002년)으로 보존되는 것은 물론 총 면적 335,859㎡의 대규모 신석기 선사유적공원을 조성(2018.4.14. 개장)하고 시흥 오이도박물관이 개관(2019.7.30.)하였다. 오이도이 유적은 인근의 시흥시 능곡동선사유적과 안산시 신길동선사유적(신길선사유적공원)과 연결되는 서해안 최대, 그리고 대표하는 신석기 문화유산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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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도선사유적지
시흥의 오래된 과거 '시흥 오이도 선사유적' 답사 시흥시는 서해안에 위치한 중심 도시로 지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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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유적 안내판에는 시흥시의 전례처럼 일부 유적(춘천 중도 청동기시대 환호보존유적)을 보존하고 박물관도 계획하고 있다. 그런데 빚잔치 중인 강원도가 무슨 여력이 되고 추진력이 있어서 실현을 할까
박정희시대를 개발독재라고 한다. 빛도 있지만 그늘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 시대 박정희가 시작한 한양궁궐과 도성, 강화도 돈대, 수원 화성 그리고 경주로 대표되는 문화유산 복원사업은 말 많고 탈 많지만 시작도 없었으면 지금도 없었을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이를 넘어 한국의 대표하는 관광 인프라가 되고 있다.



중도유적(中島遺蹟)
(춘천 중도 청동기시대 환호보존유적)
중도유적(中島遺蹟)은 강원도 춘천시 중도에 있는 청동기시대와 원삼국~삼국시대의 대규모 마을유적이다. 신석기시대의 화덕자리와 구덩이 유구, 고구려와 관련된 돌무지무덤도 확인되었다. 중도유적은 1,300기에 달하는 집터를 비롯하여 방어 시설인 환호와 고인돌, 경작지 등으로 구성된 우리나라 고고학 역사에서 최대 규모를 갖는 청동기시대 유적이다. 그리고 원삼국~한성백제 시기의 중도유적은 환호와 경작지를 갖춘 대규모 마을에 해당하며, 고구려와 관련된 무덤의 존재를 통해서 볼 때 춘천 지역의 역사적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다.
중도유적은 북한강과 소양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형성된 충적지에 자리하는 청동기시대와 원삼국~삼국시대의 대규모 마을유적이다. 신석기시대의 화덕자리와 구덩이 유구, 고구려와 관련된 무덤, 그리고 고려~조선시대의 집터와 무덤도 일부 존재한다.
1977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실시한 지표 조사를 통해 그 존재가 알려졌고, 1980~1990년대의 소규모 발굴 조사를 통해 청동기시대의 집터와 고인돌, 원삼국~삼국시대의 집터와 돌무지무덤 등이 확인되었다.
유적의 전체적인 규모와 성격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은 2010~2011년에 이루어진 4대강 살리기사업(제방 구간)과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레고랜드 건설의 일환으로 시행된 발굴 조사를 통해서였으며, 그 결과 청동기시대와 원삼국~삼국시대의 집터를 비롯하여 무덤, 경작지, 환호(環壕: 마을이나 중요 시설을 감싼 방어용 도랑), 지상 건물 등이 분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중도유적의 고고학적 양상은 2013~2017년의 발굴 성과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점이 주목된다. 중도유적에 인간의 점유가 시작된 것은 신석기시대로 화덕자리 1기와 구덩이 6기가 확인되었으며, 절대연대(絕對年代) 측정 결과 그 시기는 서기전 2620~2020년으로 나왔다.
청동기시대는 구획 및 방어 시설인 방형 평면의 환호 1기를 비롯하여 집터 1,273기, 지상 건물 14기, 구덩이 유구 745기, 소성(燒成) 유구 2기, 무덤 150기 등이 발굴되었으며, 경작 유구로 추정하고 있는 그물 모양 도랑이 광범위하게 분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청동기시대 유구에서 나온 유물은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 등 청동기 6점을 비롯하여 토기, 석기, 옥 등 모두 6,476점에 달한다. 이뿐만 아니라 기존에 보고된 중도유적의 발굴 결과를 더한다면 집터는 1,300기가 넘는 등 그 규모는 더욱 늘어난다.
청동기시대 유적의 조성 시기는 덧띠새김무늬토기가 유행한 서기전 15~13세기의 청동기시대 조기부터 덧띠토기가 사용된 서기전 5세기의 청동기시대 후기까지 해당한다. 청동기시대 중에서 구멍무늬토기를 제작하고 사용한 서기전 9~6세기가 유적의 규모가 가장 컸던 시기이다.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환호는 대부분 타원형이나 원형인 데 비해서 중도유적의 환호는 방형의 형태를 띠어 주목된다. 환호의 평면 형태는 전체적으로 볼 때 방형을 띠며 서 · 남 · 북변은 직선으로, 동변과 동북 모서리 부분은 활처럼 굴곡 형태를 갖는다.
출입구는 동 · 서 · 남쪽 세 곳에 두었으며, 환호 전체의 길이는 121.6m, 너비는 87.2m, 장단비는 1.39:1이다. 환호의 도랑 폭은 1.7~2.5m이며 깊이는 56~102㎝이다. 환호의 전체 둘레는 403.7m이며 면적은 9,516㎡이다.
중국에서 방형 환호는 신석기시대의 이른 시기부터 등장하였으며 중도유적의 환호 마을이 존재하던 시기인 춘추전국시대에는 방형 성곽(城郭)이 일반화된 시기에 해당한다. 고조선의 중심지 역시 방형 토성의 형태로 최상위 취락을 구성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 남부의 청동기 사회는 비파형동검 시기부터 랴오닝〔遼寧〕 지역의 고조선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으며, 중도유적의 청동기 사회도 이러한 영향을 받아 방형 환호를 조성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방형의 환호는 중도유적을 비롯해 춘천율문리유적, 양주금남리유적과 진주대평리유적의 사례가 알려져 있다.
원삼국~삼국시대는 2~5세기에 해당하는 여자형(呂字形) 또는 철자형(凸字形)의 형태가 주류인 집터 149기를 비롯하여 두 줄이 1세트로 구성된 환호 1기, 지상 건물 21기, 구덩이 355기, 매납 유구 75기, 무덤 12기와 함께 제철 공방, 경작지(밭), 도랑 유구(방형 구획 시설) 등이 발굴되었다.
대부분의 유구는 원삼국시대에서 백제한성기에 속하는데, 환호는 3세기 대에 축조되었다. 돌덧널무덤 2기에서는 고구려의 금제 귀걸이와 토기가 나온 점으로 볼 때 고구려의 춘천 지역 진출과 관련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도유적은 1,300기에 달하는 집터를 비롯하여 방어 시설인 환호와 고인돌, 경작지 등으로 구성된 우리나라 고고학 역사에서 최대 규모를 갖는 청동기시대 유적이다. 남한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청동기시대 조기 유적 가운데 하나이며, 중기와 후기에 해당하는 비파형동검, 고인돌, 환호 등은 중국 동북 지역 및 서북한 지역의 고조선 문화와 관련되어 고고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
그리고 1980년대부터 중도식토기(中島式土器) 또는 중도식민무늬토기와 여자형(呂字形) 또는 철자형(凸字形) 평면을 한 집터, 돌무지무덤 등으로 알려져 있던 원삼국~한성백제 시기의 중도 유적은 환호와 경작지를 갖춘 대규모 마을에 해당하며, 고구려와 관련된 무덤의 존재를 통해서 볼 때 춘천 지역의 역사적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중도발굴조사보고서(中島發掘調査報告書)」(중도선사유적발굴조사단, 1982), 「춘천 중도동유적(春川 中島洞遺蹟)-4대강 살리기사업 춘천 중도동 하중도 F지구 발굴조사 보고서」(예맥문화재연구원, 2012), 「춘천 중도동유적(春川 中島洞遺蹟)-춘천 중도 LEGOLAND KOREA Project A~H구역 · 순환구역 내 유적 발굴조사 통합보고서」(춘천 중도동유적 연합발굴조사단, 2020)














































춘천중도적석총 (春川中島積石塚)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적석묘
수량/면적 2기
지정(등록)일 1976.06.17
소재지 강원 춘천시 중도동 598번지
소유자 (소유단체) 강원도
관리자 (관리단체) 춘천시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의암호 가운데에 있는 섬인 중도에 있는 원삼국시대 무덤이다.
중도는 옛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지리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어 선사시대 집자리와 무덤유적이 남아있다. 중도 남쪽 끝에 있는 2기의 돌무지무덤(적석총) 중 1981년 1기에 대해 발굴이 이루어 졌다. 규모는 4변의 길이 15m이고 높이는 4m로 강돌을 이용하여 벽을 만들었다. 내부는 모래와 흙을 얇게 깔고 그 중앙에 강돌로 널방(현실)을 만들었으며, 널방 위와 주변은 다시 돌을 쌓아 올린 형태를 하고 있다.
무덤 내부에서는 많은 양의 토기조각과 청동제 귀고리, 작은 쇠칼, 쇠화살촉을 비롯한 철기제품이 출토되었다. 무덤에서 출토된 토기편과 주변의 집자리에서 나온 토기편을 비교해 본 결과, 무덤주인은 2∼3세기경 이 지역 지배자로 추정된다.
중도의 돌무지무덤은 춘천지역이 북한강 일대의 중심지역으로 원삼국시대에 독특한 문화권을 형성하였음을 알게 해 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강원특별자치도 기념물 춘천중도적석총 (春川中島積石塚) | 국가유산포털 | 국가유산 검색






두 아해와 춘천 레고랜드로 갔다.(7.4.~5.) 철부지 아해들이라 레고를 좋아하니 떠난 길이다. 레고랜드 호텔에서 하룻밤 묵으며 레고랜드 놀이시설 전부를 태우고 함께했다. 아해들이 좋아하니 다행인데 놀이기구들이 에버랜드나 롯데랑은 차원이 다르다. 초등학생 저학년까지가 딱이다. 발도 아프고 지나는데 오늘 내 모습으로 딱이다.




레고랜드 호텔에서 의외로 괜찮은 조식을 먹고나서 짐을 꾸려 집으로 간다. 춘천대교를 지나니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쉬움 마음에 멀리 도로표지판에 '김유정 문학촌'이 보인다. 가는 방향(서울양양고속도록 남춘천IC)이고 4km정도이니
"그래 가보자"
여행은 무계획이다. 계획이 있어도 계획과 다름이 여행의 묘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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