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샘의 역사나들이(답사)

쌍부현 명승지 남산

달이선생 2022. 1. 10. 18:15

쌍부현(雙阜縣)은 삼괴고장의 옛 속현의 이름이고 가장 오래된 지명이다.

삼괴(三槐)는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과 우정읍을 아우르는 옛부터 이어져온 이름이다.

이 쌍부현에 명승지가 셋인데 하나는 쌍부현의 기원이 된 쌍봉산(雙峰山=쌍부산, 우정읍, 조선시대 조창 쌍창=쌍부창[雙阜倉]이 위치함, 남봉우리 117.7m)이고 이 쌍봉산과 마주한 남산(南山, 장안면, 107.3m), 그리고 쌍부현이 폐현되고도 오랫동안 조선의 연봉을 담당하던 봉수(烽燧)가 위치한 흥천산(興天山=봉화산, 61.3m)이 있다.

일찍이 쌍봉산은 삼괴고등학교 뒷산이기도 하고 지역의 중심된 곳으로 자주 찾았고 흥천산도 역사를 좋아하다보니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봉수의 흔적을 찾아 두레자연중학교 뒤편으로 자주 올랐다. 그러나 남산은 오르지 못했었다. 그저 예비군 훈련 때 중턱 정도에 오르는 것이 다였다. 그런 남산을 장안남산체육공원 주차장 등산로 입구에서 시작하여 소남산(93m)을 거쳐 올랐다.

남산은 쌍봉산과 더불어 지역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쌍봉산과 함께 남산에는 천지창조신인인 마고할미 설화가 깃들어있다.(현재는 주로 '마고'라는 이름보다 '마귀'라는 명칭이 익숙하다) 이화리 보금산(59.7m)에도 두 봉우리 형성과 관련하여 쌍봉산과 같이 멜빵을 떨어뜨려 산봉우리가 만들어졌다는 마고할미 설화가 전한다. 그리고 남산과 같이 보금산 마고할미 바위(바위 구멍 여성 음기 비유) 이야기도 있다. 이밖에 시화호와 접한 송산면 독지리에 형도, 똥섬(오지섬)의 마고할미설화가 전한. 이러한 마고할미 설화는 지형형성과 관계된 자연창조설화라는 특징을 가진다.(참고 : 김정은, 화성지역 마고할미 설화의 유형의 전승의미, 2회 화성학총서 학술대회-화성지역 무형문화재와 구비문학, 화성문화원(2021))

 

어릴적 들었던 마고할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옛날에 마귀할미가 남쪽에서 한양으로 가는 도중 인심 좋은 삼귀, 곧 조암에 이르러 쉬고 있었다. 그는 평소에 나쁜 일을 많이 하고 다녔기 때문에 하늘에서는 마귀할멈에게 서쪽 바닷가 '참담기'란 곳에 가서 배를 타고, 배가 닿는 곳에 가서 살라고 했다. 마귀할멈이 이를 거절하자 하늘에서는 뇌성벽력과 함게 그를 끌어 하늘로 데려갔는데, 이때 마귀할멈에 내려 놓았던 두 개의 쌀자루가 변하여 쌍봉산이 되었다. 그 사이 골짜기는 마귀할멈이 쌀자루를 짊어졌던 멜빵자리가 변해 된 것이다. 후에 이 산에 장사들이 나서 마주 보이는 남산의 장사들하고 돌을 던지며 싸움을 하였다. 쌍봉산 장사가 힘이 세어 돌이란 돌은 다 남산으로 던져 쌍봉산에는 돌이 없고 남산에는 돌이 많게 되었다."

 

이야기의 장사는 마귀할멈과 마귀할아범으로도 이야기 된다. 이렇듯 쌍봉산에는 실제로 돌이나 바위가 드물고 이곳 남산에는 크고 작은 바위가 즐비하다. 그래서 남산 꼭대기에 마고할미 바위가 있는데 이를 두고 

 

마고할멈이 사는 남산에 여자의 음부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할미가 오줌을 눈 바위다.(독정2리 버선말 김정도)

 

남산에 마귀할미가 오줌 눈 자리라는 평평한 바위가 있는데 여자 성기와 같고, 이상하게 핏물이 들어있는 듯이 바위색이 붉다. 남산에 접한 사랑리와 어은리 사람들은 이 바위를 신령하게 여겨 집안이나 마을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면 바위에 가서 빌었다.(사랑2리 새랭이 유상열)

 

마귀할멈바위는 생김새가 여성 성기와 같아서 마귀할멈의 음부라고 한다.(수촌2리 화전 김범학, 김봉규)

 

쌍봉산과 남산에 거인이 살고 있어 서로 힘을 겨뤘는데, 서로의 산에 바위와 돌을 상대편으로 던지는 싸움을 하였다. 그런데 쌍봉산 거인에 비해 남산의 거인이 힘이 약해 쌍봉산에는 바위나 돌이 적고, 남산에는 바위와 돌이 많다. 남산에는 마귀할멈 바위라 전하는 바위가 있는데, 여자 음부처럼 생겼고, 월경을 한 것처럼 바위가 붉다.(어은4리 독지골 이기천)

 

등이 전한다. 마고할미 설화와 관련하여 화성문화원에서 자료 수집과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더 많은 정보와 궁금증이 있다면 김명수 연구원을 찾으면 된다.

 

남산의 유래로는 쌍부현(우정읍 조암리 작은아실)의 남쪽에 있는 산이라 하여 남산이라고 했다고 한다. 장안, 우정읍은 서해안 연변에 위치하여 해발고도가 낮은 지역으로 지역에 가장 두드러지게 솟은 산은 이 남산과 쌍봉산이다. 백두대간의 속리산에서 갈라진 한남정맥의 남서쪽으로 수리산 감투봉에서 남쪽으로 서봉지맥으로 이어지고 봉담에 이르러 태행지맥이 갈라지고 비봉에 이르러 오두지맥으로 이어진다. 오두산, 꽃당산, 남산, 봉화산, 불로산, 보금산을 거쳐 고온포에서 끝난다.(이경렬 : [특별연재] 화성의 산 ② - 화성시의 지세(地勢):화성신문 (ihsnews.com) 참조)

쌍봉산은 봉우리가 두 개라서 처음보더라도 인상적인 모습이다. 산에 오르면 가파르게 올라 정상부에서 지역을 조망하기 좋다. 그에 비해 남산은 여느 뒷동산처럼 특징적인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러나 산행을 하여 남산에 오르면 쌍봉산과는 달리 매우 신비롭고 신령스런 느낌을 받는다. 아무래도 쌍봉산보다는 숲길이 길고 등산로 곳곳으로 바위가 많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상은 마고할미바위로 불리는 큰 바위무더기가 있어 더욱 신령스럽다.

 

   1919년 4월 3일 아침부터 각 동리 구장들은 마을 사환을 시켜 주민을 동원하고 각 몽둥이를 준비시켜 공세적 시위계획을 수립하여 시위에 들어간다. 주곡리의 차희식, 김흥식, 장소진, 장순명 등이 오전 8시경 “각 집집마다 1명 이상씩 나오라 만약 나오지 않으면 집에는 방화하고 가족은 타살한다고 외쳤다.” 이와 더불어 석포리 구장 차병한은 엄성구를 시켜 “주곡리의 차봉습이 많은 동민을 데리고 장안면사무소로 몰려간다.”, “자기 마을에서도 가기로 하였으니 각 동민에게 빠짐없이 전달해 달라”고 하여 마을 사환이 북을 쳐 주민을 모았다. 이와 함께 수촌리 구장 백낙렬은 이원준과 정형영을 금의리 구장 이해진은 김백천을 장안리 구장 김준식은 박복룡에게 각각 마을 사환인 이들을 시켜 주민들을 금일시위에 참여하라고 전달했다. 독정리 구장 최건환은 사환 이고두쇠를 시켜 장안리 구장에게 “면사무소와 주재소를 때려 부수니 몽둥이를 들고 오도록 전달했다.  수촌리와 석포리, 주곡리에서 출발한 시위대가 오전 10시경에 장안면사무소에 도착했을 때는 가는 길에 주민이 더해져 200여 명이었다. 차병한, 차병혁이 장안 면장 김현묵에게 참여 할 것을 촉구하는 한편 선두에 서게 하여 만세를 불렀다. 다시 시위대가 쌍봉산으로 이동하고 그 사이 남은 시위대가 장안면사무소와 문서, 집기류 등을 파괴, 전소하였다. 이어 쌍봉산에서 모여 만세를 부르고 화수리로 몰려가 화수리 주재소를 파괴하고 주임순사 가와바타를 처단한 주민들은 일단 해산한 후 저녁을 먹고 남산에 모여 군대와의 회진에 대하여 상의하였다-이병권, 2006「수원군 우정․장안면의 3․1운동」『2006국사학과 한신졸업논문집』: 국사편찬위원회, 1994『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19,20

쌍봉산보다 깊고 돌이 많아 3.1운동 당시 우정,장안면의 주민들이 면사무소와 화수리 경찰관주재소를 불태우고 순사 가와바타를 척살한 이후 일제보복을 피해서 결사항전을 하자고 모의된 역사적 장소가 남산이다.

 

남산과 우측 송전탑이 놓인 소남산 모습
장안남산체육공원 주차장에서 본 소남산 모습
남산에 이르기 전의 소남산 오르막 계단
남산 정상 마고할미바위
남산 정상에서 배드민턴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장안면사무소 등산로 방향에서 본 마고할미바위

 

'화성군사(1990, 900~901쪽)'와 '화성시사(2005, 461쪽)'에 수록된 장안면 우제형 구술 '남산의 거인 여신 마고할미' 설화 

 

"옛날 한양에 있는 괴수마귀가 전국에 흩어져 있는 마귀를 전부 모으는 회합을 개최하였다. 여기에 참석하기 위해 마귀할멈과 마귀할아범이 함께 한양으로 떠났다. 한양으로 가는 길에 장안면에 도달하여 남산 꼭대기에서 쉬고 잇을 때였다. 마귀는 무슨 일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남산에 도착하고 나서는 더 이상 나갈 수가 없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내리더니 남산 산신령의 호령소리가 울려 나왔다. 그리고 남산 산신령이 나타나 말했다. 

너희들이 이 세상에서 이제까지 지은 죄가 많거늘 가는 곳마다 나쁜 짓을 더 계속하지 말아라 그리고 여기는 내가 있는 신성한 곳이니 어서 네 소굴로 돌아가거라

 

이에 마귀할멈은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리 야단이십니까? 나는 절대로 죄 지은 일이 없으니 이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한양으로 가야 하겠습니다

 

고 하였다. 그러자 남산 산신령은

 

내가 너희 행동을 알고 있는데, 그렇게 많은 죄를 짓고도 깨닫지 못하느냐 네가 이제가지 지은 죄가 산과 같고 바다와 같거늘 그래도 뉘우치지 못하고 감추려 한다면 크게 벌을 주리라

 

하며 꾸짖었다. 마귀할멈은

 

아무리 산신령이라 한들 이 조그만 남산의 산신이 무슨 수로 나를 벌할단 말입니까? 마음대로 하시오

 

라고 했다. 이에 남산 산신령이 노여움을 이기지 못하고

 

그렇다면 너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되리라 그리고 너의 뉘우치지 못하는 그 심보를 수치심으로 두고 두고 인간에게 보여주게 하리라

 

호통을 쳤다. 그러자 천둥번개와 비바람이 심해지더니 쾅하는 소리와 함께 빛이 번쩍이더니 마귀할멈이 쓰러졌다. 쓰러진 마귀할멈은 나체의 하체를 두러낸 채로 굳어져 바위로 변해 버렸다.

한편 마귀할마범은 남산 산시령과 마귀할멈이 옥신각신하는 사이 산신령의 말에 양심의 가책이라도 받았는지, 아니면 마귀의 습성으로 마귀할멈이 죽거나 말거나 혼자서라도 한양으로 가려고 한 것인지, 남산을 지나쳐 떠나가고 있었다. 그러단 남산 산신령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그 때 마귀할아범도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그후로부터 남산은 마귀할멈산이고, 북쪽 맞은편에 보이는 산(쌍봉산)은 마귀할아범산이라고 한다. 산신령의 말을 거역하다가 마귀할멈이 응징을 면치 못하고 끝내는 그런 결과로 나타나 있는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장안면 어은리 대한마트 부근에서 본 남산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