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샘의 역사나들이(답사)

고창 동호해수욕장, 상하농원.. 군산 나들이

달이선생 2022. 2. 22. 22:18
작은 물병 하나 먼지 낀 카메라
때 묻은 지도 가방 안에 넣고서
언덕을 넘어 숲길을 헤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 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김동률 출발 중에서..  

 

  항상 길을 나설 때 입가에서 뇌리에서 떠오르는 노래이다. 나의 답사는 예전 디지털카메라 역할을 하는 핸드폰을 가지고 걷고 또 걷는다. 책속에서 TV에서 봤던 역사적 장소에 대한 궁금증과 벅찬 가슴을 안고서..

 

  2022년 2월 18일 금요일 밤 두 아들을 태우고 서해안고속도로를 내달렸다. 서해대교를 넘어서니 도로가 차선이 줄고 차량도 줄고 화물차도 없다. 같은 시간 경부고속도로나, 중부, 내륙 등을 가봤지만 차도 많고 특히, 화물차가 너무 많았는데 행선지가 전라북도 고창이다. 보니 충청도 홍성을 지나니 도로가 한산하다.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정치적인 수사가 되겠으나 우리나라 현실이 그렇다. 수도권은 그렇다쳐도 다음은 영남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서해안고속도로를 놓은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놓은 것처럼 탁견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완공과 성과가 김대중 대통령 때라서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계획 1987년, 착공 90년, 개통 96년) 

     

  그렇지만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화두는 정책을 떠나서 높은 이상이나 신기루 같은 것이다. 몇해 전 헌법재판소가 헌법에 위배된다고 수도이전을 막을 정도로 수도로의 집중화의 문제는 전근대시대의 천도 논의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러한 때 서부지역에 서해안고속도로라도 있어서 망정이지 없었더라면 무엇이 있어서 그나마 이 지역에 대한 발전이라는 허울을 시작할 수가 있을까.. 생각에 잠기다 김제를 지나니 너른 호남평야가 까맣게 펼쳐진다. 김제 전까지는 어둠에 어둠을 더한 산의 형상이 별빛도 가리고 멀리 집이나 가로등 불빛 따위를 가렸지만 없다. 그저 멀리 더 넓게 펼져진다. 어둠과 별빛처럼 빛나는 불빛들이..

  모처럼 가족과 나들이다. 물론 아내의 출장지로 내달린 것이지만 겸사겸사다. 누군가는 "계획은 깨기 위해 세우는 거다"라고 하더니 당초 토요일 밤에 올라오려고 내려간 길이나 일요일 저녁에 올라왔다. 전라북도 고창군은 여느 동네처럼 1914년 일제의 군면통합으로 지금의 행정구역이 광역화된 곳이다. 조선시대 흥덕(성)군과 무장군을 합친 곳이다. 지금이야 고창군의 인구가 5만 좀 넘어 수도권 어느 시도 비견될 수 없지만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고창군에 속한 흥덕과 무장이 모두 군이라는 행정구역을 이룰 정도로 제법 큰 고을 3개가 합쳐진 곳이다. 게다가 호남평야의 양곡은 물론, 서해 소금 등 물산이 풍부하여 탐관오리들을 불러 들인 곳이 되었다.(영남에 비해 호남은 경제적으로 중소지주층보다 대지주가 발달하여 신분적인 예속과 가렴주구, 탐학 등으로 봉건적 폐단이 심하였음) 

  네비게이션 없이 가자고 가는데 선운산IC를 나와 목적지인 동호해수욕장 푯말은 안보이고 법성포만 나온다. 아니 제대로 가는 건 맞는가 한참을 가다 길을 잘못 들었을까 겁이나 네비게이션을 켜니 12km가 남았다. 그리고 제대로 가는 게 맞다. 그러고 보니 선운대로의 너른 길이 선운사에서 법성포로 이어지는 관광대로였다. 법성포가 왜 법성포인지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제보니 백제 침류왕 때 인도승려 마라난타가 처음 도래한 유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법(불교)+성(마라난타)+포(포구)겠구나 생각했는데 역시 그렇더라 그리고 가는길에 전봉준 생가 푯말, 손화중 피체지 등 1894년 갑오농민전쟁(동학농민혁명)의 성지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이곳에는 처음 왔다고 생각했는데 대학교 1학년 첫 답사 때 찾았던 인촌 김성수 생가가 바로 옆이었다. 그리고 그 옆이 손화중 장군이 마지막으로 체포된 곳이라는 사실도 이번에 알았다. 어릴 때야 호남 대지주 김씨일가의 부가 그런가보다 했지만 동학이 널리 포교되고 손화중포가 결성되어 전봉준 장군과 갑오농민전쟁을 치룬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토요일 아침에 동막해수욕장에 나가 칼바람을 맞았고(이곳은 백합의 고장) 오후에 두 아들 땜 구시포해수욕장 근처 상하농원을 갔다.(대관령 목장+임실치즈마을) 상하농원에서도 눈길이 간 것은 내부 곳곳에 있는 오래된 묘와 어린 쌍해치로 만든 돌다리(출처 모름), 그리고 특별히 농원 안에서 어디든 보이는 저수지의 유래였다. 저수지 이름이 '강선달 저수지'고 인근 섬포마을에 살던 섬포 강선달이 농사 지을 물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던 농민들을 위해 사비로 만든 저수지라는 이야기다. 농원만 다녀가기는 너무도 아쉬운나머지 근처 유적을 찾아보니 무장읍성이 있어 가려니 한 두 시간 둘러볼 곳이 아니다. 그래서 못미쳐서 있는 '고창 무장 동학농민혁명 기포지'에 들렸다. 일요일에 올라오면서 군산근대화거리와 도시재생사업이 이루어지는 영화시장 등을 둘러봤다. 역시 도시재생으로 문화와 어울린 청년상점 보다는 금강하구둑이 보이는 군산 부잔교에서 최무선 장군의 진포대첩을 떠올리고 조선은행 군산지점 건물과 부잔교에서 일제의 호남수탈의 선봉장이 되었던 군산의 그늘이 더 벅차다.

  가족과 머물기 좋은  별바다펜션에는 동호해수욕장 유일의 치킨집(이춘봉인생치킨, 펜션사장님 독박운영)이 있는데 마늘간장치킨이 맛있다고 했는데 구경도 못했다. 다음을 기약한다. 이밖에도 선운사. 선운사 마애불상, 고창 고인돌군, 전봉준장군 생가, 무장읍성, 고창읍성 등 갈 곳이 태반이다. 다음에 가자..

   

강선달 저수지의 유래
대동강 물을 팔아 본인의 이득을 취한 봉이 김선달 이야기를 아십니까? 같은 선달이요, 같은 물이지만, 고창군 상하면에는 이웃을 이롭게 한 '섬포강선달'이 있었습니다. 
옛날 강선달이 살던 상하면 섬포 마을에는 농사를 지을 물이 부족 해 농민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농민들이 아픔을 해결하기 위해 강선달은 개인의 사비와 노력을 들여 이 곳에 저수지를 만들었습니다.
농민들은 강선달의 은혜를 보답하기 우해 '강선달 저수지'라 부르기 시작했고, 오늘 날, 자연과 어울리며 사색을 즐기는 우리들의 쉼터로 다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