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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구지천 십리길, 웃불에서 왕송호까지

황구지천 십리길, 웃불에서 왕송호까지 황구지천(黃口池川)은 의왕시 오봉산에서 발원하여 군포시와 의왕시 왕송호(저수지)를 거쳐 수원시에 들어와 크고 작은 하천들이 합수하는데 오망골천과 당수천을 만나고 이어 구운동과 천천동에 걸친 일월저수지에서 흘러내린 일월천과 금곡천, 호매실천을 만나고 정조대왕이 축조한 축만제 서호의 물줄기이고 수원시 4대 하천인 서호천, 그리고 수원 화성을 가로지르는 수원천, 원천리천을 만난다. 화성시에 들어와 반정천, 삼미천이 유입하고 정조대왕이 축조한 안녕동의 만년제 물줄기와 정남면 갈천이 만난다. 그리고 양감면 양문리와 평택시 서탄면 회화리에 이르러 진위천으로 합수하여 흐르다 안성천에 이어져 서해안 아산만(평택호)에 이른다. 황구지천의 이름은 수원군 율북면 황구지리(현재의 평택시 ..

선거연수원, 선거전시체험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 선거전시체험관 수원시 여기산 아래 서호를 바라보는 양지바른 곳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이 위치하고 있다. 원래 서울 종로5가에 설치(1996)되었으나 2017년 11월 7일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선거연수원이 자리잡은 이곳은 나주혁신도시로 이전된 옛 농촌진흥청 부지이다. 연수원 뒷산은 여기산으로 청동기시대 집자리와 유물이 나온 여기산 선사유적지이고 연수원 앞 너른 호수는 정조대왕이 수원 화성을 쌓고 자족적 신도시를 만들기 위해 축조한 축만제(서호)로 축만제둔 일명 '서둔'이라고 불린 너른 곡창지대의 젖줄이다. 지금은 서호 동편으로 중부작물부가 운영하는 농업시험장 일부가 남아 예전 서둔의 역사성을 드러내준다. 사실 대유평(북둔)이라고 불린 너른 곡창지대인 만석거에 비한다면..

수원 청년 독립을 외치다 서호 구국민단 결사

수원 청년 독립을 외치다 서호 구국민단 결사 수원지역 수원읍 3.1운동 기독교 청년이 이끌다 수원지역은 3.1만세운동이 강렬하게 전개된 대표적인 곳이다. 처음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일 방화수류정(용두각)에서 지식인, 청년학생을 중심으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특히 이 시위의 배후로 남수리 출생의 삼일학교 교사이자 민족대표 48인 중 기독교 측 대표로 참여한 김세환(金世煥, 1889.11.18. ~ 1945.9.26.)이 있었고 수원상업강습소 김노적, 박선태, 임순남, 최문순, 이득수(종상), 김석호, 김병갑, 이희경, 신용준, 이선경 등 기독교도와 학생들이 중심이었다. 이후로 수원읍 시위는 3.16 장날을 기해 서장대 연무대에서 수백 명이 만세를 부르며 시가지로 나가 종로를 지나 벌이고 이를 일제..

해월 최시형 묘

해월신사 최시형 묘 조선시대 신분의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가부장 중심 사회에서 여성을 천대한 것과 달리 며느리를 한울로 높임하였던 해월 최시형(海月 崔時亨, 1827~1898), 그는 동학 창시자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 1824~1864)를 이어 제 2교조였다. 그가 수운과 더불어 교조가 된 이유는 수운이 혹세무민(惑世誣民 : 세상 사람을 속여 미혹시키고 어지럽힘)을 들어 비명에 가자 그의 사상이 담긴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용담유사(龍潭遺詞) 필사본을 보존하여 정리 간행하였고, 인내천 사상에 더해 모든 사물이 한울이라는 사상적 확대와 그를 통한 동학 교세의 확장으로 제2교조라는 지위를 갖게 하였다. 더욱이 교조신원운동(敎祖伸寃運動)을 통해 수운의 신원을 끊임없이 독려하는 한편, 많은 동학교도를 결집시..

계간 곰솔누리숲 2020(03, 제2호)

계간 곰솔누리숲 2020(03, 제2호) 계간 곰솔누리숲 2020, 제2호 시간(기억) 초고 바다를 메워 염전이 되다 곰솔누리숲 이전 바다였던 이곳의 커다란 변화가 시작된 것은 조선 후기부터 이루어진 간척(干拓)이다. 간척은 바다 등을 메워 농경지를 만드는 것으로 안산 첨성촌(瞻星村)의 실학자 이익(李瀷, 1681~1763)은 「해거방축(海居防築)」이란 시를 써서 간척 사업을 통한 농지 확장을 노래하였다. 그 꿈이 실현된 것이 시흥시 중간에 위치한 호조벌(1721, 경종1)이다. 현재 곰솔누리숲이 있는 정왕동 인근에는 안산군 대월면 석곡리에 조자언(鳥堰)이 있었다. 해변을 간척하여 농경지를 만드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1894년과 1896년 4월 두 차례에 걸쳐 대월면 거모포(현재의 거모동) 명례궁(..

진무공신 한풍군 최응일 묘

진무공신 한풍군 최응일 묘 "진무 공신(振武功臣) 27인을 책정하였다. 장만(張晩)·정충신(鄭忠信)·남이흥(南以興)을 1등에 세 자급(資級)을 올리고, 이수일(李守一)·변흡(邊潝)·유효걸(柳孝傑)·김경운(金慶雲)·이희건(李希健)·조시준(趙時俊)·박상(朴瑺)·성대훈(成大勳)을 2등에 두 자급을 올리고, 신경원(申景瑗)·김완(金完)·이신(李愼)·이휴복(李休復)·송덕영(宋德榮)·최응일(崔應一)·김양언(金良彦)·김태흘(金泰屹)·오박(吳珀)·최응수(崔應水)·지계최(池繼崔)·이락(李洛)·이경정(李慶禎)·이택(李澤)·이정(李靖)·안몽윤(安夢尹)을 3등에 한 자급을 올렸다.(策振武功臣二十七人。 以張晩、鄭忠信、南以興爲一等, 超三資; 李守一、邊潝、柳孝傑、金慶雲、李希健、趙時俊、朴瑺、成大勳爲二等, 超二資; 申景瑗、金完、李愼、..

화성3.1운동만세길, 우정면사무소, 김천중 묘

화성3.1운동만세길, 우정면사무소, 충좌위장 김천중의 묘 화성시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3.1운동 당시 옛 수원군에서도 가장 치열하게 항쟁하였던 우정,장안면의 3.1운동 유적지를 연결하여 걷는 '화성3.1운동만세길'을 만들었다. 지난해 우정읍 화수리 일제 순사 가와바타 토요타로를 처단했던 곳에 위치하는 방문자센터를 찾아서 걷기 확인용 여권 같은 수첩을 받았다. 주요 유적지에 스탬프를 설치하였는데 이를 찍고 확인하는 것이다. 이번에 스탬프를 더하자는 생각에 길을 나섰다. 오전 7시 화성시 장안면 사곡리 산호아파트에서 출발하여 화산리 일원동 김연방 99칸 종택터(수령 400년이 넘은 느티나무)와 그 옆 재실 쌍괴재를 거쳐 우정읍 화산리 사기말에 위치한 옛 우정면사무소 터를 거치는 일정으로 다시 ..

청풍김씨묘문 의왕시 고천, 김인백 처 안동 권씨 묘 및 몽오산인 김종수 묘

청풍김씨묘문 의왕시 고천 김인백 처 안동 권씨 묘 및 몽오산인 김종수 묘 김인백의 처 안동 권씨 묘는 유명한 명당자리다.(전국8대 명당) 이곳에서 발복하여 후손들이 현달해서 6명이나 재상이 나왔다고들 한다. 묘 위쪽 좌의정을 역임하고 정조의 스승이었던 김종수 묘가 있는데 김종수도 후손이다. 김종수의 묘는 2015년 이장된 것으로 보인다. 원래는 경기도 하남시 광암동에 있었는데 하남시가 수도권 신도시 개발로 급변하고 있어 후손들이 의왕시 선영으로 모신 것으로 보인다. 안동 권씨 묘는 묘하에서 걸어가면 여느 왕릉 못지 않은 넓은 유택을 볼 수 있다. 오봉산 자락 그리 높지 않은 구릉에 위치한 묘는 양지바른 터에 편안하다. 주변에 의왕시청, 도서관, 보건소 등 많은 행정기관과 아파트들이 즐비하여 묘에서 보는 ..

청풍김씨묘문 의왕시 왕림, 입향조 김우증 묘(김여광, 김계, 김태로 묘)

청풍김씨묘문 의왕시 왕림 입향조 정국공신 김우증 묘역 -김우증 신도비, 청평사(사당), 김우증 묘 및 묘갈, 김여광 묘, 김계 묘 및 묘갈, 김태로 묘, 김충백 부인 전주이씨묘 청풍김씨 판서공파 세도의 비조인 정국공신 김우증은 연산군을 몰아내고 3등이 되면서 이곳 왕림을 사패하였다. 이곳에서 손자인 계자 김계 이하 후손들이 현달하였는데, 특히 인백파라 불린 김계의 3남 김인백의 후손들에서 재상이 6명이나 배출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그의 묘갈은 인백파 후손 영의정 김상로가 묘갈을 지었고 그의 신도비 역시 김상로가 짓고 또 후손이자 영의정을 역임한 김치인이 써서 위엄있게 세웠다. 이 신도비의 내용을 보면 김계 이하 아들들을 지파로 후손이 번창하고 현달한 내용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특히 후손들이 2백여명이..

청풍김씨묘문 의왕시 왕림, 김인백 묘 및 묘갈, 백운사

청풍김씨묘문 의왕시 왕림 김인백 선생 묘 및 묘갈과 백운사 현재 의왕시 왕림에 터를 잡은 청풍김씨 김우증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김우증의 계자인 김계(처 순흥 안씨)이다. 왕림에서 후손이 크게 번창하고 현달하게된 장본인이다. 김인백(金仁伯, 1561~1617)은 위로 김충백, 김효백 두 형과 막내 동생 예백이 있다. 현령을 지낸 권대훈의 여식 안동 권씨(찬성 오겸의 외손녀)와 슬하에 장남 김익려, 차남 김극부, 막내 김극형을 두었다. 이중 김극형의 가계에서 아들 셋과 그 후손이 현달했다. 바로 손자 전라관찰사 김징과 그 아들 우의정 김구, 대제학 김유, 목사 김무로 그 아래 후손들이 번창했는데, 화성시 우정읍 쌍봉산에 있던 영의정 김상로도 김인백의 현손이다.(김유의 막내아들) 이렇게 그의 자손이 잘된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