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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전도비

삼전도비(三田渡碑) 장유(張維)·이경전(李慶全)·조희일(趙希逸)·이경석(李景奭)에게 명하여 삼전도비(三田渡碑)의 글을 짓게 하였는데, 장유 등이 다 상소하여 사양하였으나, 상이 따르지 않았다. 세 신하가 마지못하여 다 지어 바쳤는데 조희일은 고의로 글을 거칠게 만들어 채용되지 않기를 바랐고 이경전은 병 때문에 짓지 못하였으므로, 마침내 이경석의 글을 썼다.(己丑/命張維、李慶全、趙希逸、李景奭, 撰三田渡碑文。 維等皆上疏辭之, 上不從。 三臣不得已皆製進, 而希逸故澁其辭, 冀不中用, 李慶全病不製, 卒用景奭之文)-인조실록 35권, 인조 15년(1637) 11월 25일 기축 1번째기사 이 기록은 삼전도비를 세우기 위해 삼전도비문 혹은 송로 문자(頌虜文字)로 불리는 것을 지은 기사이다. 삼전도비의 정식 명칭은 삼전도비..

부여답사 2. 능산리 고분군, 능산리사지, 부여 나성

부여답사 2. 능산리 고분군, 능산리사지, 부여 나성 삶과 죽음의 경계를 나눈 부여 나성 바로 옆, 능산리 일원은 부여를 자주 찾았지만 처음이다. 백제왕릉원인 능산리 고분이 중요한 것은 고구려 고분의 특징인 돌방식 구조와 함께 사신도를 그려 넣은 벽화이다. 그리고 이곳 백제왕릉의 원찰인 능산리사지에서는 백제 예술의 백미 금동대향로가 발견되었다. 한성백제의 멸망과 웅진, 사비기의 중흥 백제는 700년 가까운 역사를 이어온 고대국가로 수도의 변천에 따라 한성기(기원전 18~475), 웅진기(475~538, 65년), 사비기(538~660, 122년)로 나눈다. 이중 한성기는 백제사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백제 총 31왕 중 21왕(온조~개로왕)이 통치한 시기에 해당한다. 이렇듯 백제사의 중심은 수도권인 지금의..

부여 답사 1. 부소산성, 부여현 관아(객사)

부여답사 1.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구 부여국립박물관, 부여현 객사, 부여현 동헌, 도영경당, 부여현 자료관, 서복사지, 백화정, 낙화암), 부여문화원 유홍준 교수 기증 유물 전시실 거진 10년만에 찾은 거 같다. 부여는 인연이 참 깊다. 국민학교 시절 처음 수학여행으로 다녀왔던 곳이고 대학 때 학교 박물관에서 일하면서 부여 국립박물관을 찾아 전시장을 옮겨왔던 일, 그 때 이남규 은사님과 선배와 같이 부여에 있는 어느 중국집에서 먹었던 양장피와 요리는 푸짐하고 맛도 일품이었다. 그리고 고향 어린 친구들을 이끌고 역사탐험대라고 다녀왔던 기억 등, 지울 수 없는 선명한 기억이 있는 곳, 추억의 부여이다. 부여는 현재 '사비도성'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부르고 있다. 사비는 백제의 마지막 수도를 이르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