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이야기

야마모토 이야기..

달이선생 2011. 12. 15. 15:22

  2011년 12월 14일. 우리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집회 1000회를 맞았다. 집회에는 우리나라 사람도 있었고 일부 일본사람들도 함께했다. 

  1000회를 맞는 이날, 할머니들의 어릴적 소녀 모습을 한 '위안부 평화비'를 일본대사관 앞에 세웠다. 이를 두고 일본외무성이 시끄럽다. 자신들의 추악한 역사를 외면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모습들은  비단 이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의 수구세력(친일독재세력)도 역시 그렇지 않나.. 

  역사 교과서를 수정하여 친일을 지우고 독재를 미화하려는 생각들.. 그리고 이 할머니들의 억울한 사연을 '자발적 공창제'라는 망언들을 쏟아낸다. 일본사람이라도 억울할 일을 신보수라고 자청하는 사람들이.. 참담할 뿐이다.

  한파가 기승을 부린 오늘, 어느 분이 평화비 소녀상의 맨발에 목도리를 둘렀다. 발이 많이 시리실까 걱정됐다는 후문이다. 그 모습에 순간 울컥했다. 꽃다발이 놓인 것으로 보아 헌화를 하고자 찾았다가 목도리도 둘러주고 가신게 아닌가 생각된다.

  수요집회에 찾아야지 찾아야지 했지만 지금 껏 한 번도 찾지 못했다. 할머니들은 계시지 않을테지만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평화비를 찾아야겠다. 할머니들의 꿈많던 어린 소녀시절을 떠올리며 빨간 장미꽃 한송이를 가지고..


 

 

제정구기념사업회 방문(왼쪽부터 야마모토상 故 제정구 선생 부인 신명자 여사, 이나모토상, 도시연구소 김수현 박사)

 

   사진 속 왼쪽에 서있는 분은 오사카 아사카부락해방운동을 이끄는 일본인 야마모토상(65)이다. 오른쪽에 서있는 이나모토상(60)은 야마모토상을 도와 부락해방을 도운 사람이다. 더욱이 이나모토상은  예수회 정일우 신부님을 필리핀에서 만나 한국빈민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1980년대 정일우 신부님을 찾아와 우리나라 판자촌과 재개발지역의 철거민들을 만나고 취재하면서 많은 리포트를 썼고 그 모두를 제정구기념사업회에 기증 하였다. 그래서 2011년 10월 27일 주민운동 40주년을 맞는 올해 '끝이 없는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냈다.

  이런 뜻깊은 자리에 제정구기념사업회와 한국주민운동 40주년 준비위원회에서 두 분을 모셨다. 
  한국을 찾은 일본인 손님 중 야마모토상의 일화가 감동적이다. 그가 사는 아사카부락은 우리는 이미 없어진 천민촌이다. 천민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갖은 차별과 멸시를 받으며 살았던 야마모토상은 청년이 되어 이러한 부당한 차별에 맞서 오사카부락해방동맹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싸웠다. 그때 신분적으로 높고 지식인이었던 이나모토상이 신분의 벽을 넘어 야마모토상과 함께하였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한 운동을 하며 점차 자신들과 같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아시아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처음 중국 사람들과 교류를 하다. 한국도 인연이 되어 성동구 행당동 철거민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서로 교류하며 우정을 쌓았다. 현재 성동구 행당동에는 성동구 주민회가 결성되어 신협협동조합운동(논골신협), 생활협동조합, 자활 등 많은 주민운동을 하고 있다. 특히 도시에서는 사라진지 오래인 마을회관을 '성동 주민회 하늘나무 사랑방'으로 예쁘게 꾸며 동네 사람들이 정다운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일에 아사카부락과 야마모토상이 함께하였다.
  현재 아사카 부락은 해방되고 차별이 없어져 보통 일본사람으로 살고 있다. 그리고 지금 자신들이 겪었던 부당한 차별을 일본내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들을 주목하고 그들을 위한 사회복지단체를 만들어 교육, 치료, 자활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과거의 자신들의 처지가 현재는 장애인들이 부당하게 처우를 당한다고 생각해서 일 거다.
  이런 야마모토상을 모시고 경주로 관광시켜 드렸다. 경주는 처음이라는 야마모토상이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날, 천안 독립기념관을 가자고 한다. 그리고 거기서 도록을 샀다. 영문을 몰라 물었더니
  "한국에 오면 늘 독립기념관을 들리는데 일본어로 된 자세한 책이 없어 아쉬웠다. 이번에 오면서 상세한 도록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구입하게 되었다. 일본에 가면 이 도록으로 사람들과 역사공부를 할 거다."
  야마모토상은 일본으로 돌아가는 날, 마지막으로 서대문형무소를 둘러보고 돌아갔다.

 

   흔히 양심있는 일본인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양심이 있냐 없냐라고 말할 게 뭐가 있을까?
사람으로서 도리, 자기 성찰과 나를 위한 이타심을 갖는 것은 양심의 있고 없고가 아닌, 사람의 도리가 아닌가..
  야마모토상의 이런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랐다. 그리고 부끄럽다.
  마지막날 연찬에서 성동 행당동 주민들께 감사하다고 연신 눈물을 훔치시던 야마모토상.. 


  인생도처유상수라고 바다 건너 일본에는 야마모토라는 사람이 있다.
  

 

성동주민회 하늘나무 사랑방 이곳에서 출판기념회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