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이야기

[배달학당] 세계평화가 씨알에서 움튼다

달이선생 2011. 8. 30. 14:36

 

 

 

 

사단법인 제정구기념사업회 이병권이 녹취하여 옮기고 박재천이 정리, 박재순 박사가 감수했다. 

 

 

 

[ 배달학당 2기 4강 ]

 

 

 

세계평화가 씨알에서 움튼다

 

 

 

이글은 가난공동체생명 제2기 배달학당「박재순 박사와 함께하는 씨알사상」제4회 학당 <세계평화가 씨알에서 움튼다.>의 내용입니다. 2011년 6월 13일(월), 서울 종로구 이화동 제정구기념사업회 교육실에서 채 혁(블랙 엔 압구정 감사)외 11분이 참가했습니다. **가난공동체생명배달학당게시판**

 

 

 

정신과 물질이 만나서 생명이 된다.

 

세계평화가 씨알에서 움튼다. 씨알, 생명, 평화는 하나로 이어진 말이다. 씨알은 생명의 씨알맹이다. 생명체는 정신과 물질, 영과 육체가 만난 거다. 정신과 물질이 만나서 생명이 된 것이다. 물질에서 생명과 정신이 피어났다고도 말할 수 있다. 생명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물질과 정신이 묘하게 하나로 된 거다.

 

물질과 정신은 전혀 다른, 서로 반대가 되는 것이다. 정신은 자유롭고 무한한 거고 매이지 않는 것인데, 물질은 시간과 공간에 매인 구체적이고 한정된 거다. 서로 반대되는 것들이 만났기 때문에 불안정하다. 그래서 생명체는 연약하고 상처받기 쉽고 파괴되고 죽을 수 있다. 이렇게 불안정하고 파괴되기 쉬운 생명체의 목적은 생의 평안이다. 평화로운 삶을 지속적으로 누리자는 것이다. 생명의 간절한 염원과 목적은 영속적인 평화로운 삶이다. 참으로 이루기 어려운 거다. 그러나 전혀 다른 정신과 물질이 하나가 되어 생명체를 이룬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서로 다른 것들이 생명체 안에서 공존하는 것 자체가 평화다.

 

물질과 정신이 한 몸을 이룬 생명체가 되었다는 것, 이게 기적이고, 놀라운 평화를 이룬 거다. 생명은 서로 다른 것들이 만나 보다 차원 높은 묘합(妙合)을 이룬 거다. 서로 다른 것들이 만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생명은 이질적이고 적대적인 것이 하나가 된 것이다. 이질적이고 적대적인 것이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배척하지 않고 하나가 돼서 한 몸을 이루었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평화인가. 생명자체가 평화다. 생명 속에는 무궁한 평화의 능력과 지혜가 있다. 그러나 이 생명체는 연약하고 상처받기 쉽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기 삶 속에서 평화를 실현시켜가야 한다. 안팎의 갈등이나 모순을 뛰어넘어서 스스로 생명을 지켜갈 수 있는 평화를 이룩하는 것이 생명진화의 목적이다. 그것이 종교철학의 목적이고 인류 역사의 목표다.

 

씨알사상을 말한 유영모 함석헌 선생이 사셨던 시대는 서양의 제국주의 세력들이 군사력과 경제력을 앞세워서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경쟁하던 때였다. 부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 강대국들이 식민지 정복전쟁을 벌인 것이 1차 세계대전(1914)이고, 2차 대전(1939)이다. 안창호, 이승훈, 유영모, 함석헌 이분들은 이중 삼중으로 프롤레타리아의 삶에서 사셨다. 첫째 서양문명의 지배를 받는 동양문명에서 살았다는 점에서 문명의 프롤레타리아였다. 둘째 동양 문명권 안에서도 동아시아 일부인 일본의 식민지 백성으로서 나라와 민족을 잃고 살았다는 점에서 민족의 프롤레타리아였다. 셋째 제국주의 전쟁과 착취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역사의 밑바닥에서 민중과 더불어 씨알로서 살았다는 점에서 사회와 역사의 프롤레타리아였다. 이런 밑바닥 삶에서 생명과 정신의 씨알맹이가 여러 겹의 억압을 뚫고 올라온 것이 씨알사상이고 씨알정신이다.

 

서양세력의 침략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라고 하는 두 개의 물질주의 이데올로기와 세력이 한반도에서 맞붙어서 남북분단과 남북전쟁이 일어났다. 그래서 한반도는 세계 물질주의 이념과 세력의 갈등과 싸움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러한 고통을 겪으면서 씨알,생명,평화의 사상이 싹튼 거다. 또 1960년대 이후 군사독재와 민중을 희생시키는 경제성장과정을 겪으면서 씨알의 비폭력 평화사상과 운동이 나온 거다. 씨알평화사상은 이런 시대배경을 안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1950년 9월 부산 부상당한 인민군 포로를 유엔군(미군)이 옮기고 있다. 한국전쟁은 우리 민족끼리 싸운 전쟁으로 이념대립과 함께 원한과 상처가 깊게 된 민족비극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큰 짐이자 과제이다. 

 

 

씨알평화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지배 엘리트의 평화관을 살펴보자. 지배엘리트인 지식인들이나 기득권층이 생각하는 평화는 전쟁이 그친 상태다. 로마가 지중해세계를 정복하고 적대세력을 굴복시킴으로써 전쟁이 없어진 상태가 ‘팍스로마나(Pax Romana=로마의 평화)’다. 로마가 세계를 정복해서 로마의 군사력만 있는 것을 평화라고 한 것이다.

 

로마의 평화를 구축한

초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지배 권력과 지배세력에 맞서 싸우는 세력이 없어져서, 반란이나 혼란과 갈등이 없는 상태를 평화라고 말한 것이다. 예수시대에 로마의 평화가 이루어졌지만, 로마의 평화는 참된 평화가 아니었다. 복음서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로마의 식민통치 아래서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다. 굶주림의 고통을 겪으며 육체의 질병과 정신의 질병이 만연했고 폭력이 난무했다. 예수의 평화는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고 죄 짐을 벗겨주는 평화였다.

 

 

노르웨이의 유명한 평화학자 요한 갈퉁(1930 ~ )은 ‘평화는 폭력의 구조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인종차별, 지속적인 빈곤, 사회의 양극화, 전통적인 악습, 남녀차별과 같은 것들은 인간의 사회적 삶 속에 구조화된 폭력이다. 갈퉁의 평화개념은 표현은 소극적이지만 내용은 적극적이다.

 

히브리어로 평화는 ‘샬롬’이다. 샬롬은 ‘생명과 정의가 충만한 것’이다. 매우 적극적인 평화이해다. 어떻게 히브리인들은 이런 평화개념을 갖게 되었을까? 제국주의 강대국에게 지속적으로 짓밟혔던 히브리 민족의 삶에서 이런 평화 개념이 나온 거다. 역사 속에서 고통당하는 히브리 민중의 평화개념은 구체적일 수밖에 없다. 추상적이고 이론적일 수 없다. 역사 속에서 생명이 짓밟히는 사람들에게 평화는 생명이 충만한 거다. 삶이 고통스럽고 힘드니까 충만한 생명을 갈구할 수밖에 없다. 불의를 겪으면 정의로운 세상을 염원할 수밖에 없다. 생명과 정의가 충만한 삶이 평화다. 고통스런 민중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이 ‘샬롬’이다. 샬롬은 민중적인 평화다.

 

평화는 생명이 자기기운을 쭉쭉 펴는 것이다.

 

함석헌 선생은 이중 삼중의 폭력에 짓눌리면서 밑에서부터 싹 터 올라오는 생명과 정신의 평화사상을 펼쳤다. 그의 평화사상은 씨알의 평화사상이다. 씨알은 흙속에 들어가 싹이 터서 굳은 땅을 뚫고 나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생명 활동을 한다. 생명이 자기를 실현해 나가는 생명활동 자체가 평화다. 씨알의 생명활동이 평화다. 함 선생의 평화개념은 쉬우면서도 독창적인 것이다.

 

보통 동아시아에서 말하는 평화(平和)에서 ‘평’자는 고를 평(平), ‘화’자는 벼화(禾)에 입구(口)자니까 밥이 고르게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평화다. 평화의 글자를 풀이하면 사람마다 고르게 밥을 먹는 것이 평화란 말이다. 함 선생은 ‘평(平)’을 새롭게 풀이했다. 나란히 두 획이 지나는데 밑에 획은 ‘땅’이고, 위 획은 ‘하늘’이며, 가운데 화살표 같은 글자 ‘小’는 땅을 뚫고 솟아오르는 모습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平’의 원래 뜻이 그렇다는 것이다. 고르다는 것은 단순히 똑같다는 것이 아니다. 그냥 획일적으로 똑같이 만드는 것은 평등도 아니고 정의도 아니다. 생명이 저마다 자기를 자유롭게 피어내는 것이 고른 것이다. 저마다의 자유로운 생명 활동을 인정하고 허락하는 것이 평등이고 정의다.

 

온갖 장애와 난관을 극복하고 저마다 자기의 생명을 피어내는 것이 평등한 것이고 평화로운 거다. 그래서 함 선생은 평화는 생명이 자기기운을 쭉쭉 펴는 거라고 했다. 이것을 억누르는 것이 폭력이다. 반(反)평화다. 어린 아기는 다리를 건드리기만 해도 다리를 쭉쭉 뻗는다. 생명의 원기가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생기가 솟고 원기가 쭉쭉 뻗는다. 몸의 기운이 솟고 정신의 원기가 쭉쭉 뻗고 몸과 맘이 활짝 펴는 것이 평화다. 씨알맹이가 흙속에서 자기기운을 뻗어 올라가는 것, 민중이 역사의 밑바닥에서 자기생명의 기운을 쭉쭉 뻗는 것, 이것이 평화다. 이것을 못하게 하는 정치적인, 사회적인 질서나 구조, 개념과 주장들이 다 반생명적이고 반평화적인 거다.

 

생명은 세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몸의 본능적 생명, 맘의 지성적 생명, 얼의 영성적 생명인데 이 세 차원이 다 쭉쭉 뻗어가야 된다. 몸의 기운이 쭉쭉 뻗어가고, 맘의 지성과 생각이 쭉쭉 뻗어가고, 얼의 양심과 원기도 쭉쭉 뻗어가야 한다. 양심이 죽고 생각이 풀이 죽어 있으면 안 된다. 양심과 원기가 힘 있게 쭉쭉 뻗어야 한다. 그래서 함 선생은 나이 칠십이 넘어서도 사람이 쭈그러져 있으면 안 된다 했다. 생활이 어려워 얼굴은 쭈그러져도 양심과 원기, 생각과 지성은 빵빵하게 쭉쭉 뻗어 있어야 한다. 속의 정신과 기운이 싱싱하게 푸르게 살아 있어야 한다. 유영모 선생도 얼굴은 늙어서 쭈그러들어도 속의 기운은 쭉쭉 뻗어 있어야 된다 했다. 고등종교를 일으킨 기축시대의 성현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 속에는 물질적 이해관계를 뛰어넘고, 살고 죽고, 이기고 지고,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을 뛰어넘어서 쭉쭉 뻗어갈 수 있는, 죽어도 죽지 않는, 결코 마르지 않고 시들지 않는 원기와 얼의 생명이 있다는 거다. 공자도 노자도 석가도 소크라테스도 예수도 다 이것을 얘기한 거다.

 

꺼지지 않고 시들지 않고 마르지 않고 죽지 않는 이성과 영성이 얼 생명이 불타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타오르고 있으면 그 사람은 정말 평화로운 거다. 몸은 불편하고 힘들고 아플 수 있다. 그러나 속의 영혼, 얼 생명, 씨알생명이 힘차게 뻗어나가고 불타고 있으면 평화로운 거다. 이것이 씨알평화인데, 이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위대한 성현이나 선각자만이 씨알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식이 있거나 없거나 부자이거나 가난하거나 잘났거나 못났거나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누구나 영혼, 얼 생명을 가지고 있고, 누구나 양심과 생각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마음을 먹고 뜻하기만 하면 누구나 씨알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옥스퍼드, 하버드, 서울대를 나왔다고 영성이 풍성 하라는 법이 없다. 사회의 지위가 높고 유명하고 지식과 돈이 많을수록 마음의 평화를 잃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이고 지적결함이 있어도 오히려 영적인 평화를 누리는 사람이 있다. 소박하게 하루하루 사는 민중들 가운데 씨알평화를 누리는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다른 게 아니다. 자기의 영혼 속에 영원한 얼 생명이 있음을 믿는 것이다. 그것을 믿는 사람에게는 얼 생명이 있고 누구나 얼 생명의 평화를 누릴 수 있다. 내 속에 영원한 얼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고 얼 생명이 시들지 않고 마르지 않게 노력하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성인이 되고, 영혼이 평화로운 사람이 된다. 영혼이 평화로운 사람은 평화를 짓는 사람이 된다. 그런 사람이 있는 곳에는 평화가 생성될 거고 다툼이 결국은 사라질 거다.

 

얼 생명이 불타고 쭉쭉 뻗는 그 자리가 ‘내가 나로 되는’ 자리다. 거기가 ‘내가 나인’ 자리다. 물질적인 이해관계, 지고 이기는 관계를 넘어서, 성공과 실패, 삶과 죽음의 상황과 관계없이 내가 나가 되면 전체생명을 살릴 수 있다. 얼 생명이 불타오르고 쭉쭉 뻗는 자리, 내가 나인 자리가 세계 평화의 자리이고 인류전체가 구원 받는 자리다. 세계의 평화가 씨알에서 움튼다는 말은 바로 그 평화와 구원의 자리에서 우리가 삶과 생각을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다. 일상적인 삶 속에서 내가 내 생명을 꽃피우는 곳에서 세계평화의 꽃이 핀다.

 

얼 생명의 평화에 이른 사람은 세상의 죄악과 불의와 싸우지만, 사람은 미워하지 않게 된다. 세상에서 죄와 불의를 극복하고 제거하려고 싸우면서도, 불의한 사람, 악한 사람을 우리가 구원해서 같이 평화의 세계로 들어가자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싸운다. 그러면 우리의 싸움도 좀 더 여유로울 수 있다. 사실 미움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밉다는 감정과 밉다는 생각이 있을 뿐이다. 이런 허구적인 감정과 생각에 사로 잡혀 사는 것은 옳은 인생길을 가는 게 아니다. 내가 사람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은 내가 내 감정과 생각에 붙잡힌 탓이다. 감정과 생각에 붙잡힌 것은 생명과 정신에 충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속에서 생명이 불타고 혼이 싱싱하게 살아 있다면 남을 탓하고 있을 리가 없다.

 

죄와 불의는 미워할 수 있다. 그런데 살다보면 죄와 불의는 미워하지 않고 사람만 미워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싸우면 싸움의 절반은 저절로 없어진다. 부부관계도 직장동료 관계도 마찬가지다. 나는 저 사람을 사랑하면서 살고 싶다는 것을 분명히 의식하고, 저 사람과 함께 살면서 잘못된 것을 제거하고자 한다고 뚜렷하게 생각하면, 싸움의 절반 이상은 없어진다. 싸우더라도 해결의 실마리가 생긴다. 아마 이혼도 지금의 1/3로 줄어들 거다. 처음부터 미워하기 위해서 결혼한 사람은 없다. 사랑하는 방법이 잘못 돼서 미워하는 거다.

 

인류전체를 끌어안는 세계평화정부가 서야 한다.

 

유영모 함석헌 선생이 살았던 20세기는 전쟁의 세기다. 인류사에서 전쟁이 가장 많이 일어난 시대고 끔찍한 시대다. 2차 세계대전에서만 2천만 명이 죽었다. 이런 전쟁의 시대에 함 선생은 국가 민족주의 전쟁시대가 끝나고 세계평화시대가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 시대를 예감하고 앞당겨서 실현하기 위해서 꿈틀거리는 운동을 펼친 것이 씨운동이었다. 앞으로 갈수록 국가와 민족의 벽이 낮아질 거다. 그렇다고 국가와 민족이 쉽게 없어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국가와 민족들이 자기 개성을 가지고 자기 정신과 문화의 꽃을 피워낼 거다. 그러나 배타적인 국가주의나 민족주의는 더 이상 설자리가 없을 거다. 민족은 남더라도 민족주의는 사라지고, 나라는 남더라도 국가주의는 없어질 거다. 지금은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세계가 하나로 되고 하나의 세계경제를 이루고 있으니까 이미 국경을 초월해서 교류와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

 

2차세계대전 당시 전체주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위 사진)는 나치즘을 주창하며 유럽과 아프리카를 침략하고 유대인 및 소수민족을 학살했다.(위 우크라이나 니조츠에서 여성들을 학살하고 확인사살하는 사진)일본은 히로히토 일왕(아래 사진 백마를 타고 있다.)을 중심으로 아시아와 미국을 침략하여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군국주의의 화신이다.

 

새 시대는 세계가 하나라는 비전과 세계시민의식과 정신을 고취하는 사상을 절실히 요구한다. 고맙게도 온갖 고난과 시련을 겪은 한국 현대사에서 세계시민의 정신을 일깨우는 씨알사상이 나왔다. 아직 씨알사상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씨알사상은 몸과 맘과 얼, 자연생명과 역사와 신, 본능과 지성과 영성을 아우르고, 동서고금의 정신과 사상을 통합하는 사상이다. 민중의 해방과 세계평화와 통일을 추구하는 실천적 사상이다. 생태환경운동이론가들이나 사상가들, 심리상담과 명상 이론가들 가운데 인간과 자연생명의 통합과 몸과 맘과 얼의 통합을 추구하는 사상을 펼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종교와 철학을 바탕으로 민주의식과 역사의식, 과학정신과 비판정신을 지닌 실천적 철학사상으로서 종합적인 사상이 씨알사상 말고는 나오지 않고 있다.

 

민중의 자각과 해방을 추구하는 세계평화의 철학이 서양에서는 나오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서양이 지난 500년 동안 자연생명세계와 인류사회를 착취하고 파괴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산업물질문명이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은 서양의 역사에서 만들어진 거다. 서구의 강대국들은 세계를 지배하고 정복하기 위해 지난 100여 년 동안 줄기차게 전쟁을 일으켜 왔다. 그래서 서구인들이 세계가 하나라고 주장하면 제국주의라고 한다. 미국과 유럽에서 세계평화와 통일을 말하면 패권주의라고 말한다. 세계평화와 통일에 대한 논의는 생명친화적인 영성과 상생적 공동체정신을 길러온 아시아나 동양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처럼 전쟁의 피해를 많이 겪은 나라는 세계평화를 말할 자격이 있다.

 

 

농림수산부 장관을 지낸 허신행(1942~ ) 선생이 씨알재단에서 강의를 했는데 앞으로 10년, 20년 이내로 세계평화시대가 가시화 된다고 했다. 인류를 소통시키는 인터넷이나 기술혁명이 빠르게 발전하기 때문에 인류사회가 급속히 한 몸 사회로 바뀌고 인류가 한 몸이라는 영적 자각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허신행 선생에 따르면 세계평화정부가 곧 세워지는데 그 수도의 위치는 한반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 강대국들은 서로 견제하기 때문에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 중국, 러시아와 같은 나라들은 세계정부의 수도가 될 수 없다. 또 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나라도 안 된다. 인터넷과 통신기술이 발당하지 않으면 세계의 수도가 될 수 없다.

 

한국은 너무 큰 나라도 아니고 너무 작은 나라도 아니면서 인터넷과 통신기술과 시설이 잘 갖추어진 나라다. 인종적으로도 백인이나 흑인의 나라보다는 흑백혼혈이거나 황인종의 나라가 유리하다. 인류의 절반은 대륙에 살고 절반은 섬이나 바닷가에 사는데 한반도는 대륙과 바다를 끼고 있으니까 조건이 좋다. 열대의 사막이나 한대의 북극도 안 되고 사계절이 있는 나라면 좋을 것이다. 특정 종교가 지배하는 나라도 곤란하다. 기독교, 이슬람, 불교가 국교인 나라는 안 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유교와 불교 기독교가 비교적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그리고 세계를 아우르는 동양사상이 있으면 좋겠다면서 이 모든 기준들에 딱 맞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세계평화 정부의 수도가 될 자격이 있는 나라라면, 세계평화운동에 우리가 앞장서야 된다.

 

 

세계평화를 말하려면 국가주의 시대에서 세계평화 시대로 넘어가는 발상의 근본적인 전환이 있어야 한다. 애국심은 좋은 것인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나쁠 것은 없지만 애국심보다는 인류전체를 끌어안고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져야 한다. 애국심으로 꽉 찬 사람은 이주노동자의 아픔을 헤아리기 어렵고 일본사람들과 가까이 사귀기 어려울 것이다. 씨알정신을 가진 사람은 이주노동자의 심정과 처지를 이해해야 한다. 이주노동자의 가족과 문화를 알아야 이주노동자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래야 그 사람들과 평화로운 삶을 함께 살 수가 있다.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 문제도 국가주의 민족주의 관점에서는 풀리지 않는다.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는 자리에서 생명의 씨알맹이, 얼 생명의 자리에서 일본사람과 한국 사람이 함께 만날 수 있어야 한일관계의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질 수 있다.

 

영토분쟁이 아직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 제국주의적으로 강탈한 영토는 반환하는 쪽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영토분쟁은 유엔이 조정하고 해결하도록 맡겨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유엔이 할 수 없다면 세계평화정부가 수립될 때 세계정부가 해결하도록 미뤄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국가주의에서 세계평화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상상력이 나와야 된다. 개인의 차원에서는 희생과 양보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국가와 민족의 차원에서는 희생과 양보를 말한 사람이 없다. 그러나 세계평화 시대에는 국가나 민족도 양보하고 희생할 수 있다고 본다. 이제까지는 어떠한 국가도 스스로 양보와 희생을 한 것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정말 세계평화로 가기 위해서는 개인이 양보하고 희생하는 것처럼 국가나 민족도 양보하고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약한 나라는 권리를 주장하고 부강한 나라는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생명평화정신에 일치하지 않는다. 약한 나라와 강한 나라가 정의와 평화를 이룰 수 있는 가운데 길을 찾아야 한다. 한반도의 남과 북 사이에 그리고 한중일 사이에 새로운 평화운동을 위한 여러 가지 상상력이 나올 수 있지 않겠는가. 국가안보와 민족주의에 붙잡힌 상상력을 자유롭게 풀어놓으면, 새롭고 신나는 생각과 일들이 떠오를 것이다.

 

세계평화가 ‘씨알’에서 온다고 했다. 세계평화를 거창하게 이야기만 하는 것은 추상적인 것이다. 우리 일상적인 삶에서부터 세계평화가 싹터야 한다. 씨알공동체를 처음 시작할 때도 숨부터 편하게 쉬자고 했다. 숨부터 편하게 쉬어야 내 몸과 맘이 평화로워지고, 내 몸과 맘이 평화로워야 이 사회가 평화로워지고 세계가 평화로워진다. 내가 숨을 거칠고 사납게 쉬면서 세계평화를 말해봐야 쓸데없다. 나부터 숨을 깊고 편안하게 쉬고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서로 살리고 더불어 살 수 있는 그런 생각과 삶을 나눌 수 있어야 된다. 먹는 일도 평화로워야 한다. 지나치게 많이 먹어서 자기 몸을 파괴하고, 자기 몸의 평화를 깨뜨리고, 자기 마음의 평화를 깨뜨리는 사람이 세계평화를 말해서 무엇 하자는 것인가. 알맞게 먹고 알맞게 소화를 시켜야 한다. 그래야 몸도 세계도 평화롭다.

 

소비생활도 평화로워야 한다. 명품을 들지 않아도 몸이 행복하고 맘이 평화로워야 한다. 수백, 수천만 원의 명품을 들어야 행복한 사람은 평화로운 사람이 아니다. 호화스러운 사치품에 매인 사람이 어떻게 평화운동을 하겠는가. 소박하고 검소하게 살면서 평화로울 수 있어야 한다. 또 그런 삶을 더불어 살 수 있는 생활공동체가 나와야 한다. 꼭 함께 살지 않더라도 숨을 편하게 쉬고 소비를 검소하게 하고 알맞게 먹고 사는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그런 삶에서 행복하고 기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삶을 함께 나누고 연대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이런 운동에서 세계평화가 온다. 인류 사회에 명품을 좋아하는 사람만 가득 있으면 반드시 전쟁이 나고 폭력과 절도, 부정부패가 넘쳐난다. 그러니 어떻게 평화가 오겠는가.

 

 

씨알정신과 사상으로 씨알조직운동을 펼쳐야 한다.

 

안창호, 이승훈, 유영모, 함석헌 이 네 분이 한국현대사의 정신사적 맥을 잇는 어른들이다. 일본 동경대의

오가와 하루히사(小川晴久)교수는 한중일 근현대철학을 전공한 학자다. 한중일 근현대사의 지도자들 가운데 안창호, 이승훈, 유영모, 함석헌과 같은 인물들은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이들은 지극히 겸허하고 진실하게 사랑으로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람으로 깨워 일으키려 했다는 점에서 위대한 지도자요 스승들이라고 했다.

 

오가와 교수에 따르면 사회주의가 망한 것은 사람다운 지도자가 없고 사람다운 인민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권과 민주주의와 평등에 대한 최고의 이론과 제도가 나왔지만,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이 너무 타락했기 때문에 그 이론을 실천하고 제도를 운영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가와 교수는 지금은 ‘사람 만들기 운동’이 절실하다고 말하고 일본에서부터라도 안창호, 이승훈, 유영모, 함석헌의 삶과 정신을 따라 사람 만들기 운동을 펼치고 싶다고 했다. 앞으로는 인류와 생태계를 구하려면 자기를 불태우는 고결한 생각을 가진 사람다운 사람이 많아야 한다고 했다.

 

안창호, 이승훈의 삶과 정신, 유영모, 함석헌의 정신과 철학을 가지고 씨알조직운동을 펼쳐야 한다. 제정구 선생이 지금 살아서 씨알조직운동에 앞장서면 얼마나 좋을까? 제정구 선생은 7~80년대 운동권 지식인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함 선생의 깊은 정신세계와 공감하면서 민중·생명·영성의 세 차원을 아우르며 민중 생명 영성의 진리를 실천했다. 제정구 선생이 정치권으로 가지 말고 빈민운동을 종교사회운동으로 승화시키면서 지금까지 살아계셨다면 한국사회나 동아시아에서 씨알생명평화의 조직운동이 힘차게 전개되지 않았겠나 생각한다. 안창호, 이승훈, 유영모, 함석헌의 삶과 사상은 교육운동의 차원에서도 설득력이 있다. 교육이념을 바로 세우고 교육 개혁을 이루어서 참 교육을 하는데 씨알사상이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이 네 분들이 형성한 씨알정신과 사상이 씨알조직운동으로 실천되어야 한다. 한국사회와 동아시아, 세계를 향해서 씨알운동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펼쳐지는 것을 생각할 때다.

 

남북평화통일운동에 대해서도 상상력을 키워보자. 우리나라에서 평화통일 얘기가 나온 것이 1980년대 후반이었지만 함석헌 선생은 1970년대 초부터 평화 통일을 말했다. 함 선생은 북에서 오신 분이니까 민족통일을 간절히 염원하면서 깊이 생각했다. 그러나 결코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세계평화의 물결이 태평양 바다 건너 한반도로 오기까지는 남북통일 얘기를 하는 것은 진정성이 없다고 했다. 남북통일은 세계평화와 직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북당사자의 협상만으로 남북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미 중 러 일 등 주변국들이 양해하지 않는 민족통일은 생각하기 어렵다. 세계평화의 연장선에서 남북이 통일을 지향하며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주변의 강대국들이 남북통일을 시켜주기를 기다리자는 것이 아니다. 주변환경의 여건이 무르익어야 하지만 주변환경의 여건을 무르익게 하는 것도 한국 사람들 자신들이다. 남과 북이 서로 어떻게 생각하고 접근하는가에 따라서 주변국들의 생각도 바뀌고 세계평화와 한반도 평화의 길이 열릴 것이다. 한반도 평화와 세계평화는 한반도의 씨알들의 삶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민생차원에서 어떻게 북한 동포하고 삶을 나눌지 구체적이고 현실성 있는 안이 나와야 한다. 살과 피를 나누지는 못해도, 돈과 식량도 나누지 못할까? 남북의 비무장지대를 놓고 한반도 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한 상상력을 키울 수 있다. 남북한 군대 각각 10만을 모아서 섞어 놓고 평화를 지향하는 홍익인간의 평화봉사단을 만들 수 있다. 세계평화를 건설하고 생명을 살리고 사랑을 펼치는 평화군대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결단이 필요한 일이다.

 

비무장지대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라고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이 미치지 않아 그 어느 곳보다 자연생태계가 유지되는 가장 평화로운 땅이다. (출처 : 2010.06.29.조선일보)

 

함석헌 선생은「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이긴 놈도 없고 진 놈도 없어야 한다고 했다. 이기고 짐이 없는 것이 씨알평화의 삶이다. 자기가 깨져서 생명을 살리는 씨알에게는 이기고 짐이 없다. 더 적극적으로 말하면 질줄 알아야 한다. 사실은 져도 지는 것이 아니다.

라벤나 성당에 모자이크로 된 예수의 성화 6세기경 제작(출처 다음 백과)

 

예수가 철저하게 깨지고 참혹하게 죽었지만, 예수는 진 것도 죽은 것도 아니다. 지고 죽었으나 영원히 이기는 길, 영원히 사는 평화의 길을 간 것이다. 이것이 씨알의 길이다. **가난공동체생명 제2기 배달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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