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이야기

우리 동네 버스

달이선생 2011. 8. 30. 11:20

 

 

고향을 떠나 서울살이를 시작한지 꼭 두 번째다. 처음에는 사회초년생으로 대학을 갓 졸업하고 선배일을 돕고자 상경을 했었고 지금은 대안학교에서 근무를  하다 서울에 기념사업회로 자리를 옮겨 간사 일을하며 대안학교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내 고향은 화성시 장안면 덕다리 한적한 시골마을이다. 지금도 그곳에는 나의 부모님과 동생이 살고 있다.
집에서 서울로 오가며 버스와 지하철을 많이 이용한다.  버스를 타고  다니다 보면 크고 작은 일이 많이 있다. 특히 승객을 태우고 내리는 일에서 정다운 일보다는 언성을 높이고 때로는 욕설이 오가는 일이 부지기수다.
 예전에 우리 마을에는 버스가 다니지 않았다. 동네길은 비포장 길로 특히 비가 오면 진창이 되기 일쑤였다. 그러니 자동차는 물론 사람도 다니기도 버거웠다.  그래서 늘 동네사람들의 근심이었는데 아버지께서 새마을지도자와 마을 반장을 맡으면서 동네 주민들과 함께 마을길을 포장하게 되었다. 
 아스팔트로 잘 딲인 도로로 생각한다면 곤란하다. 그저 마을 사람들이 모여 시멘트로 포장한 작은 길이다. 시골어른들 말로
 "공고리길"
 이렇게 진창이던 길을 포장하고 나니 마을에 경사가 났다. 좋은 일은 겹쳐서 온다더니 그동안 마을의 소원이었던 버스가 들어 오게 된 것이다.  지금이야 집집마다 자동차가 서너 대가 넘게 있지만 예전 우리 마을에는 자동차를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대부분이 걸어다니거나 자전거, 오토바이를 이용하는 정도..
 그러니 우리 마을에 버스가 들어 온다는 것은 마을에 큰 경사였다. 요즘도 시골 오지나 두메 산골에 버스가 개통됐다고 축하잔치를 하는데 예전에 우리 마을도 큰 잔치를 했다.
 버스가 들어오자 마을 생활은 크게 바뀌었다. 마을 사람들이 버스 시간에 따라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특히 아침, 저녁 두 차례 다닌 버스로 인해 시장이나 면내 일을 가려면 아침 버스로 나갔다가 저녁 버스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게 싫다면 면내에서 동네까지 10여리나 되는 길을 걸어 와야 했다. 
 우리 동네 버스.. 지금은 마을 버스라고 불리는 작은 버스들이 서울이나 도시 구석구석을 누빈다. 아마도 동네 구석구석을 다녀서 그렇게 불리는 거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동네 버스라 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다. 
 예전 우리 동네 버스는 정말 동네 버스였다. 굳이 누가 먼저랄 것이 없이 인사와 안부를 묻던 기사아저씨와 동네 사람들.. 우리 시골 마을은 도시처럼 정류장이 있지만 정류장만을 지키며 버스를 이용하기는 어려움이 있다. 집들이 한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아니고 외딴집이라고 해서 멀리 떨어진 경우도 허다했다. 그럴 때 넉살 좋은 동네 사람들은 기사님께 부탁을 해서 정류장이 아닌 집 근처에서 타고 내렸고 아이들이나 수줍은 사람들은 기사님이 알아서 내려 주거나 태워주셨다. 
 동네를 몇번 다니다 보면 누가 언제 타고 내리고 누구는 누구집 아들, 딸인지 훤해지기에 동네 버스 기사님은 그렇게 마을통이 되었다.
 그리고 동네에 잔치가 있으면 으레 버스를 세워 기사님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나누었다.
 기사님도 멀리 국민학교를 걸어서 오가던 나와 동네 꼬마들을 그냥 태워 주곤 했다. 그렇게 올라탄 버스는 그 어떤 놀이기구보다도 신났다.
 정이 넘치는 우리 동네 버스는 마을의 보배였다.
 지금 동네 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정류장으로 헐레벌떡 달려오다 휙하니 지나치는 버스를 놓치는 사람들을 종종본다. 그럴 때면
  "시골 버스 인데 그렇게 야박할 필요있나 좀 태워 주시지.."
라고 생각이 든다.
 물론 버스 시간을 제때 지키지 않아서 그런 것이지만 그렇다고해도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  버스를 놓치는 사람.. 대부분이 동네 어른들이다. 그 분들이 버스를 놓치면 그 자리에서 다음 버스를 타고자 몇 시간을 그렇게 서서 기다린다. 시골 버스는 도시처럼 수시로 버스가 다니지 않는다. 하루에 운행하는 횟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예전 우리 동네 버스는 동네사람이 타고 동네사람을 맞아주던 고마운 이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저 동네를 오갈 뿐,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정을 나누는던 그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왜 우리가 이렇게 갑갑하게 사는 것일까?
시골의 동네 버스마저도 정을 잃고 인심이 떠난 지금.. 예전 우리 동네 버스를 추억한다.

 

 

 

 

 

 

                          시골버스 

                                                         

                                                    -  손택수 -

 

 

    아직도 어느 외진 산골에선

   사람이 내리고 싶은 자리가 곧 정류장이다

   기사 양반 소피나 좀 보고 가세

   더러는 장바구니를 두고 내린 할머니가

   손주놈 같은 기사의 눈치를 살피고

   억새숲으로 들어갔다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싱글벙글쑈 김혜영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옆구리를 슬쩍슬쩍 간질러대는 시골버스

   멈춘 자리가 곧 휴게소다

   그러나, 한나절 내내 기다리던 버스가

   그냥 지나쳐 간다 하더라도

   먼지 폴폴 날리며 투덜투덜 한참을 지나쳤다

   다시 후진해 온다 하더라도

   정류소 팻말도 없이 길가에 우두커니 서서

   팔을 들어올린 나여, 너무 불평을 하진 말자

   가지를 번쩍 들어올린 포플러나무와 내가

   어쩌면 버스 기사의 노곤한 눈에는 잠시나마

   한 풍경으로 흔들리고 있었을 것이니...

 

 

'이런저런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3의 길 윤여준 이야기  (0) 2011.11.17
[배달학당] 세계평화가 씨알에서 움튼다  (0) 2011.08.30
[배달학당] 내가 씨알이다.  (0) 2011.06.27
클로버 이야기..  (0) 2011.06.27
혼자가 아니었다.  (0) 2011.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