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점동 지석묘는 원래는 구봉산자락으로 도로가 개설되어 나뉘어 현재 구봉초등학교(구봉근린공원 맞은편) 옆 병점고인돌공원에 위치한다. 따로 주차시설이 되어 있지 않아 새롭게 신설된 구봉산 다목적 체육관 주차장을 이용하면 좋다. 자차가 아닐 경우 대중교통으로 지하철은 병점역에서 하차하여 오거나 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병점동 지석묘 주변으로 한신아파트 등 여러 아파트 단지가 둘러싸고 있어 주위 조망이 쉽지 않지만 전근대 시대에 이 위치는 황구지천의 너른 충적지를 조망할 수 있는 지리적 요충지였다. 따라서 청동기 시대 주요 세력의 거점이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지석묘(支石墓)는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흔히 고인돌 하면 선사시대의 원시인을 떠올리기도 한다.(고인돌이 다수 분포된 고창에서 고인돌 축제를 하는데 원시인을 모델로 한다.) 하지만 이는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원시인이 살던 시대는 청동기 시대 이전의 석기시대로 사람들 사이가 평등했기 때문에 고인돌과 같은 돌로 만든 큰 무덤이 나오지 않는다.
이처럼 고인돌을 만드는 것은 계급이 존재하고 특정 지배층이 자신의 무덤을 크게 만들어 권위를 상징하는 정치적, 경제적 우월성을 대변한다. 하지만 규모가 매우 작은 것도 많이 발견되고 있어서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고인돌이 무덤으로 대체로 무덤이었지만 제사 등의 제단으로 사용된 경우도 있다. 또 매장 주인공이 여성이나 유아인 경우도 있다. 특히 아이일 경우 작은 고인돌이 만들어졌다. 고인돌에서는 주요 유물로 돌칼(간석기), 화살촉, 비파형동검, 세형동검, 붉은간토기, 옥 등이 출토된다.
우리나라에는 전국에 고인돌이 약 4만 기가 분포하며, 전 세계 고인돌의 약 40%에 해당되는 고인돌의 나라이다. 따라서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고인돌은 그 형식에 따라 덮개돌을 양쪽 굄돌(고임돌)이 떠받치고 있는 탁자형(북방식이라고도 함-사진1)과 양쪽 굄돌 없이 작은 굄돌을 하고 커다란 덮개돌을 덮어 그 아래 돌널무덤(석관-사진4)을 만든 바둑판형(남방식이라고도 함-사진2)이 있다. 또한 덮개돌을 얹은 개석식(뚜껑식-사진3)이 있다.
탁자형 고인돌은 규모가 큰 것들이 중부 이북에 주로 나타나며 소량이다.(강화도고인돌이 대표적) 반면에 바둑판형은 주로 한반도 중부 이남에 나오며 그 수가 많고 무리를 이루는 특징(군집-사진5)을 가진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북방식과 남방식으로 구분하는 것이 지역과의 관계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특히 탁자식 고인돌이 남부지역에 다수 발견되고 있고 그 규모도 꼭 크고 거대하지만은 않다.(광명시 가학동 지석묘군의 고인돌은 탁자식이며 그 크기 1m 남짓한 것이 대부분이고 강화에서 발견되는 고인돌도 이러한 특징을 가진 고인돌 군집이 다수 확인되고 있다.)
또한 남방식을 대표하던 바둑판식도 경기도 오산 삼미동 지석묘군에서 확인되듯 대부분이 바둑판식과 개석식이다. 따라서 그 형태상 구분에서 탁자식과 바둑판식, 개석식으로 분류하고 지역에 따른 분포인 북방식과 남방식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고인돌에는 어떤 것을 묻었을까? 무덤이기 때문에 당연히 시신을 매장하였다. 이 밖에 무덤의 주인공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껴묻거리(부장품)은 청동검, 거울, 방울 등의 청동제 위세품과 토기 등을 함께 넣었다. 고인돌의 형태상 시신 매장 방식도 차이가 있는데 탁자식 고인돌은 굄돌과 굄돌 사이가 시신과 부장품을 안치하는 무덤방으로 지면에 위치한다. 그래서 유물 등은 대개 도굴되거나 유실되었고 4면에 위치했을 굄돌은 대개 양쪽 두 개 정도만 남아 지금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반면에 바둑판식 고인돌은 굄돌이 아주 작아서 무덤방을 따로 그 아래 흙은 파고 넓은 판석으로 무덤방(돌널무덤)을 만들어 시신과 껴묻거리를 묻었다.
#용어정리#
*청동기시대-선사시대인 석기시대(돌을 사용한 도구) 이후 돌이 아닌 금속 도구인 청동기를 사용하면서 인류의 문화와 기술이 발달하고 계급과 최초의 국가가 등장하는 시대이다. 우리나라는 BC2000년 혹은 BC1000년경 전후에 시작되었다.(토기 편년)
*후한(後漢)서 동이전 한조-중국 후한의 역사책으로 그 안에 우리 조상인 동이족을 적은 동이전 책, 한(韓)의 이야기. 이 책은 위진남북조시대 남조 송나라의 범엽이 지었다.

팔달산 지석묘군 수원화성 팔달산 숙지산 채석장
수원향교에서 바라보면 수원시립중앙도서관이 정중앙에 위치하고 그 뒤로 팔달산이다. 수원시 가운데 우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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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서 동이전 한조에 따르면 삼한시대 이전 수원은 한강 이남의 토착세력인 진국(辰國BC400년경)의 독자적인 지배권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후 삼한시대(원삼국시대로 기원전 후에서 BC300년경까지) 마한이 54국, 진한과 변한이 각각 12국씩 모두 78국으로 구성되고 그중 마한 세력이 경기도의 중심부에 위치하였다. 이때 수원지역과 역사적으로 직접 관련이 닿는 곳은 원양국(爰襄國), 상외국(桑外國), 모수국(牟水國) 3국이며 원양국(화성시 남양읍)은 재양현(화성시 비봉면)지역이고, 상외국은 화성시의 장안·우정읍 일대로 추측된다.
화성시 병점동은 모수국의 권역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 세력이 성장하는 토대를 알려주는 대표적인 유적이 병점동 지석묘이다. 이와 같은 유적으로 가까이 오산 외삼미동 고인돌과 금암리 지석묘군, 그리고 봉담읍 수기리(홍법산)가 있다. 조금 멀리는 수원시 팔달산 지석묘군의 대단위 유적들과도 연결된다. 특히 이들 지석묘의 특징은 지석묘 분류상 바둑판식으로 분류를 하지만 탁자식 지석묘의 굄돌을 세우지 않고 눕히고 있는 특징으로 탁자식과 개석식으로의 변화로 이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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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외삼미동 고인돌 금암리 지석묘군
지석묘(支石墓)는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청동기시대의 대표적 무덤 유적이다. 흔히 고인돌 하면 선사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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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점동 지석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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