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샘의 역사나들이(답사)

서산 송곡서원 금헌영정각 류방택 천문기상과학관 삼봉 버드랜드

달이선생 2025. 4. 30. 12:57

교 밀직 부사(檢校密直副使) 유방택(柳方澤)·노을준(盧乙俊) 등 11인은 내가 막 즉위(卽位)하던 때에 모두 일관(日官)으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아니하고 천시(天時)를 삼가 점쳐서 대위(大位)에 오르기를 권고했으니, 그 공이 또한 높일 만하다. 그 포상(褒賞)하는 은전(恩典)을 유사(有司)는 거행하라."( 檢校密直副使柳方澤、盧乙俊等十一人, 方卽位之時, 俱在日官, 心不疑貳, 謹卜天時, 勸登大位, 其功亦可尙也。 其褒賞之典, 有司擧行。")

태조실록4권, 태조 2년 7월 29일 임신 2번째기사 1393년

서산에 인물하면 금헌(琴軒) 유방택(柳方澤, 1320~1402)이다. 금헌 선생은 천문학자이다. 이 금헌 선생을 모신 서원이 서산에 있다. 일반적인 서원은 학문이 높은 선비들을 추숭하는 것이 목적인데, 여느 서원들과 달리 과학자 즉 천문학자를 기리는 유일한 서원이 바로 송곡서원이다.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에 유일하게 나오는 그의 직책이 일관으로 말하고 있어서 그가 천문학자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위 기록은 유방택에게는 그리 달가운 대목은 아니다. 유방택은 일찍이 고려 충절 삼은의 첫째가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과 교유하였고 특히 두 아들 백유, 백순이 목은을 사사한 제자이다.

더욱이 그의 집안은 서령(瑞寧) 유씨로 서령은 서산의 옛 이름인데, 문화 유씨에서 분적된 성씨이다. 고려 후기 유성간이 서령부원군(瑞寧府院君)에 봉해진 후 서산의 토성, 토반으로 조선 조 재지사족으로 이름 높았다. 그의 집안 유숙 등 여말선초기에 활동하였던 서령 유씨들이 고령 충절을 다한 이들이 많았다. 그 역시도 태조의 부름을 받고 그 소명을 다한 이후로는 개성 취령산(鷲嶺山) 아래에서 은거하다가 생을 마쳤는데 그가 남긴 유언이

“나는 고려인이므로 송도(개성)에서 죽을 터이니 내 무덤에 봉분을 쌓거나 묘비석을 세우지 말라”

고 유언하였다고 한다. 또한 공주 계룡산 동학사에 있는 삼은각(三隱閣)에 고려 충절 삼은(三隱)인 정몽주(鄭夢周), 이색(李穡), 길재(吉再)의 위패를 모시고 제를 올리며 삼은을 추숭하다 명을 다했다고 전할 정도로 고려 유신으로서의 충절을 강조한다.

이러한 유방택 선생은 성리학자로 표본이 아니면서 천문학자로 당대 높이 숭상한 것은 아니지만 어쨋든 과학자로서 서원에 주향으로 배향된 인물로 특기하다.

유방택은 어려서부터 경학(經學)을 배워 경서와 천문역법에 뛰어났다. 특히 한학 외에 천체 관측기인 선기(璿璣)의 운용에 능하고, 고대 중국에서 예언이나 수리(數理)에 사용한 『하도낙서(河圖洛書)』의 이해가 높았다.

선기옥형도(璿璣玉衡圖)와 혼천의(渾天儀)

왼쪽 선기옥형은 기원전 2세기 무렵 고대 중국의 우주관인 혼천설에 기초하여 천체의 위치와 운행을 관측하던 기구를 선기옥형(璿璣玉衡)이라고 한다. 선기는 천체를 관측하는 기구이고, 옥형이란 옥으로 만든 저울대이다. 선기옥형은 의기(儀器), 기형(璣衡), 혼의(渾儀), 혼의기(渾儀器), 혼천의(渾天儀)라고도 한다. 왼쪽 선기옥형도는 우리 역사넷 출처고 왼쪽 1620년 간행된 서경의 주석을 모은 《서전대전(書傳大全)집주》에 실린 것이다. 혼천의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다.

 

따라서 조선 개국 직후인 1395년(태조 4),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평양 농부를 통해 고구려 천문석각 탁본을 얻었는데 이는 천명이 자신에게 있는 아주 상서로운 징조로 받아들이고 그 출처를 물으니 대동강에 석각을 없어졌다기에 판문화부사 권중화를 중심으로 새로운 석각을 제작하기에 이른다. 바로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각석 천문도]이다. 이 석각은 가로 1m, 세로 2m 정도 크기의 흑요석에 1,467개의 별을 새긴 것으로 고구려 이래 우리의 천문을 담은 우리 주체성의 상징이다.

이렇게 추진된 석각 제작은 쉬이 진행될 수 있는 작업이 아니었다. 별자리를 관측하고 이를 계산하여 진행하는 일로 여기에 유방택이 낙점 된 것이다. 따라서 가정대부(嘉靖大夫) 검교중추원부사겸판서운관사(檢校中樞院副使兼判書雲觀事, 지금의 기상청장)로서 이 작업에 참여하여 각석에 새겨진 별을 일일이 확인하고 계산하여 마침내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 제작을 완료하였다. 특히 석각에 제작자 11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유방택이 먼저 나온다.

서산(瑞山) 성암서원(聖岩書院) 을해년에 세웠으며 사액하였다. : 유숙(柳淑) 고려조에서 찬성을 지냈으며, 시호는 문희공(文僖公)이고, 자는 순부(純夫)이며, 호는 사암(思庵)이다. ㆍ김홍욱(金弘郁) 호는 학주(鶴洲)이며 판서에 증직되었다.

인정서원(仁政書院) 중간에 폐지하였다가 다시 세웠다. 송곡향현사(松谷鄕賢祠)라고도 한다. : 유방택(柳方澤) 호는 금헌(琴軒)인데 고려조에서 판서운관사(判書雲觀事)를 지냈다. ㆍ정신보(鄭臣保) 본관은 서산(瑞山)이며 고려조에 인주(麟州) 수령을 지냈다. ㆍ정인경(鄭仁卿) 신보(臣保)의 아들인데, 고려조의 중찬(中贊)을 지냈으며, 시호는 양렬공(襄烈公)이다. ㆍ유백유(柳伯濡) 방택(方澤)의 아들인데 호는 저정(樗亭)이며, 이조 판서를 지냈고, 시호는 문정공(文靖公)이다.(瑞山聖岩書院 乙亥建賜額 柳淑 麗朝贊成文僖公字純夫號思庵 金弘郁 鶴洲監司贈判書

仁政書院 中廢復建一作松谷鄕賢祠 柳方澤 琴軒麗朝判書雲觀事 鄭臣保 瑞山人麗朝守麟州 鄭仁卿 臣保子高麗中贊襄烈公 柳伯濡 方澤子號樗亭吏判文靖公)

고전번역서 연려실기술 연려실기술 별집 제4권 사전전고

송곡서원은 서산에 위치한 서원으로 최초로 세워진 서원(1694년, 숙종 20)이다. 이 서원의 성격은 국가의 사액 서원은 아닌 문중서원의 성격이 짙다. 다만 형식상 주향으로 서산의 명현인 서산 정씨 정신조와 정인경을 세우고 이어 병향으로 유방택 등 서령 유씨 이밖에 김적, 김위재, 윤황을 추향한 서원이다. 이는 위의 기록에도 보이듯 서원 기록의 첫째 인물로 유방택이 나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한편, 서산의 유일의 사액 서원은 성암서원이다. 이 서원은 서령 유씨 명현 유숙을 배향하지만 실상은 학주 김홍욱을 주향으로 하는 서원으로 이 인물은 서산지역의 뿌리를 내린 경주 김씨의 입향조로서 영조의 계비가 되는 정순왕후의 선조이다. 특히 이러한 가문의 뒷바침이 서산 유일의 사액서원의 길을 열었던 것이다. 송곡서원과 마찬가지고 폐설, 복설이 이루어지는데 복설은 정순왕후의 아버지 김한주가 영향을 미쳤다. 두 서원 모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복설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송곡서원 경내에는 천문학자 유방택 선생를 기리는 금헌영정각(유방택 선생 영정 봉안)이 세워졌고 그의 업적에 맞게 후세를 위한 천문기상과학관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서원은 관리인이 머물고 있어 특별한 제향이 아니면 개방하고 있지 않다. 사우를 볼 수 있는지 물으니 볼 거 없다고 거절하였는데 이는 살림을 하는 곳이라 방문자를 꺼리는 듯 하다. 금헌영정각은 서산시가 건립한 사우인데 이 역시 개방하고 있지 않다. 영정각은 개방하지 않을 수 있는데 각내는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는데 참 서산의 문화유산 정책이 못내 아쉬운 점이 많다. 과학관 역시도 상설 전시관은 수도권 등 여느 과학관보다 작다. 유방택 선생 사료관이 있어 관심을 가지고 방문했으나 부실했고 근무자의 무심한 태도도 이색적이다. 반면 서산버드랜드를 갔을 때는 해설과 안내에 적극적인 직원들 태도와 대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