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슈행기
나가사키현 사세보시 하우스텐보스, 미우라 천주교회(성당),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성
처음 현해탄을 건너 일본 땅에 다다랗다.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던 일본을 실제로 보게 되니 설레임보다 담담하다. 이때 이후로 여러 차례 일본을 갔는데, 2014년 당시 일본은 선진국의 면모를 잃지 않았다.(2014.5.3~5.)
그리고 2023년 찾은 일본은 너무나 달라졌다.
처음 일본에 대한 기대는 역사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다. 특히 큐슈는 한반도와 가까워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으로 우리 조상들이 건너가 처음 정착한 곳이고 이후 여러 부침을 겪다. 일본이 서양과 처음 조우하여 우리의 왜관 같은 데지마상관을 만들었다. 네덜란드와의 정기적인 무역은 근대를 여는 지식, 난학이 발달하였다. 이를 통해 성장한 무사집단이 메이지유신을 단행한다. 그리고 1945년 8월 9일 히로시마 원폭(리틀보이 투하)에 이어 두 번째로 원폭(팻맨 투하)이 떨어졌다. 기나긴 태평양전쟁의 끝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추념하는 공간이 나가사키 평화공원이다.
사세보는 일본의 대표적인 군항이다. 미 인도태평양사령부 주일미군 해군기지다. 그리고 사세보의 랜드마크인 데지마상관의 역사적 사실을 기념한 대규모 테마파크인 하우스텐보스가 위치한다. 데지마의 역사와 향수를 네덜란드 그대로 옮겨놓은 곳이다. 그리고 그곳에 이러한 일본역사와 철학이 잘 표현된 만화 원피스 루피와 해적선이 꾸며져 있다. 원피스는 중세 이후 일본사와 일본의 특징을 잘 녹여 놓은 작품이다. 특히 해적으로 특징된 그들의 모습은 과거 왜구로 불리던 일본의 또다른 정체성이다. 막부와 같은 중앙 권력에 맞서 다양한 지방세력이 난립하면서 그들 고유의 가치를 표방하는 것은 지극히 일본적이고 일본다운 발상이다. 힘과 왜구를 미화하는 불편함도 없지는 않지만 분명 일본이 걸어온 길이고 일본인들의 삶이었다.
나가사키를 떠나 후쿠오카로 갔다. 그곳에 후쿠오카성이 있다. 후쿠오카성은 구로다 요시타카가 쌓은 성이다. 요시타카는 토요도미 히데요시의 부장으로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지변으로 죽자 이를 히데요시의 행운으로 말했던 발찍한 인물이다. 히데요시 가신이니 주군의 뜻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그다. 그리고 히데요시의 야욕인 조선 침공임진왜란에 적극 참여하였다. 때문에 우리에게는 참혹한 역사인 제2차 진주성 전투에도 깊게 관여하였는데 특히 공성무기인 귀갑차 설계에 참여하여 진주성 함락에 공을 세운 것이다. 이 결과 진주성민은 황진 장군을 포함한 모든 성민이 참혹하게 살육되고 일부는 포로로 끌려갔다.
이후 히데요시의 측근 이시다 미쓰나리와 갈등하여 히데요시에 눈밖에 났으나 장남 나가마사가 도쿠가와 이에야쓰의 사위(양녀)였기에 이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에 참여하여 승자의 역사에 남게되었다. 이런 그가 이에야쓰에게 분봉 받아 크게 지은 성이 바로 후쿠오카성이다. 후쿠오카성은 특이하게도 천수각이 없는 성으로 알려졌다. 이는 막부의 충성을 보이고자 지었던 천수각을 해체하여 에도성 천수각을 짓는데 바쳤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나가마사의 충성에 이야기다.
후쿠오카성은 성곽이 보존된 성터로 이 자리엔 오래전 헤이안 시대 외교 사절을 위한 영빈관인 고로칸이 있었다는 것이 고고학적 발굴로 확인되었다. 이처럼 큐슈는 대륙의 빛이 드는 창구이자 세계에 열린 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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