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다. 3월의 이탈리아는 우기이다. 지중해성 기후로 보통 건조한 곳이지만 겨울은 촉촉한 곳이다. 덕분에 2015년 3월 14일 결혼식을 하고 다음날 인천공항에서 두바이를 거쳐 들어온 로마에서 방구석을 면치 못했다. 경유지 두바이는 천정이 높고 세련된 공항이었지만 상당한 열기가 내린다. 대기 시간 3시간을 채우고 두바이에 6시간을 온 것처럼 또 6시간을 날아서 로마에 들어갔다.
칙칙한 공항(다빈치), 공항에서 비행길 내려 공항 리무진 버스로 갔다. 우리의 리무진 공항버스를 생각했건만 가격만 같지 승차며, 짐 싣는 거며 완전히 시골장터 도떼기 저리가라다 그래도 우리 장터는 나름 질서가 있고 분주한 것인데 여긴 짐을 잃어 버릴 수 있다고 본인이 챙기라고 하면서 정작 짐을 싣다 버스에 오르기도 벅차다 그래서 더러는 짐만 싣고 차를 못한 경우도 있다니 무슨 이런 곳이 다있나?
내 성정을 알기에 처음부터 걀혼 예물 등은 않는 대신길게 유럽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한다. 흔쾌히는 아니다 그러자고 했다. 파리, 런던, 스위스... 그래서 로마가 보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양보로 시작해서 마음 속 동경한 로마에 왔건만 테르미니역 근처 호텔에서 여장을 풀고 그대로 누워잤다. 어둑한 로마, 비내리는 로마, 칙칙하고 안 좋은 로마였다. 테르미니역 식당가에서 티본스테이크를 시켰다. 여느 프렌차이즈 식당이라고는 하지만 맛과 가격 모두 좋았다. 훌륭하였다.
로마에 대한 동경은 로마를 알게된 사람이라면 다 비슷할 것이다. 시작은 시오노 나나미의 역작 '로마인 이야기'가 시작이었을테고 그의 필력이 가장 빛을 발하는 한니발 전쟁을 시작으로 정말 매력적인 인물 카이사르를 만나고 숨죽여 그의 후계자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로 성장하는 것에 흐뭇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로마가 쇠락하듯 이야기도 흥미를 점차 잃어 간다.
그렇게 마음 속으로 동경했던 로마에 왔다. 로마를 생각할 때, 대제국, 군단, 다양한 수식어가 있지만 로마인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로마의 이야기는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다"
라는 것이다. 보통 빵과 서커스라고 로마를 이야기하지만 나나미는 로마문명 중심을 관통하는 실용성, 그 실용성은 합리적인 사고와 인간 관계에 있다고 하였는데 그 말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것이 바로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다. 그리스와 마찬가지 신들의 나라였지만 가장 현실적인 사람들이 로마인이었고 그래서 그들의 세계가 오랫동안 유지되었고 서양 세계의 주춧돌이 되었던 것이다.
이 로마에 있다.
그렇게 해서 로마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가르는 저 하드리아 누스 성벽에서부터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 흐르는 메소포타미아까 지 장장 4,000킬로미터에 이르는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다른 쪽에서 보면 라인강 어귀에서부터 북아프리카 아틀라스 산맥까지 2,000킬로미터에 이르는 제국의 영토가 펼쳐져 있었다. 로마제국은 영토만 넓은 것이 아니 라 존속기간도 길었다. 150년 지배에 그친 트란실바니아를 제외하면 아우 구스투스 황제 때부터 5세기까지 로마제국의 형태는 450년간 거의 변함 없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아무래도 너무 오래전 일이라 실감이 안 난다면
450년 전 영국과 유럽 대륙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한번 떠올려보라. 당시 영국에서는 엘리자베스 1세가 즉위를 앞두고 있었고 유럽 대륙은 종교개혁의 광풍에 휩쓸린 상태였다. 그러면 비로소 로마제국의 존속기간 이 얼마나 길었는지 실감이 갈 것이다. 450년은 실로 긴 세월이었다. 로마 가 제국의 규모나 존속기간 면에서 유럽 초유의 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군단의 강한 군사력 덕분이었다. 제국의 붕괴를 연구하는 일이 그토록 매력적인 것도 그 때문이다.
피터 히더, 이순호 옮김, 2008, 로마제국 최후의 100년, 도서출판 뿌리와 이파리, 35쪽
로마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이 뭘까 찾아보다 올린 것이다. 로마사 최고 권위자 영국 학자 피터 그의 핵심을 관통하는 것은 로마가 가장 로마 다움이 바로 군단에 있었다. 그 군단이 무너지면서 로마도 무너졌다. 사실 나나미의 실용성도 군단에 기인한다. 단순한 군인으로 볼 수 있지만 로마의 군단은 일자리고 군단병은 사회 인프라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제국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한 훌륭한 기반이었다.
나폴리, 폼페이, 쏘렌토 등 이탈리아 중남부 여행을 하고 드디어 로마를 다닌다. 거무튀튀했던 하늘이 거치고 맑게 게인 로마는 빛이 강렬한 아침 햇살과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로마 문명의 핵심을 보고 그렇게 보고 싶었는데 귀국 전 마지막날 환상적인 날씨다. 지리에 대한 개념이 없어 테르미니역에서 물어물어 로마 중심부 포로 로마노를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사실 거리상 복잡할 것도 없고 멀지 않아 버스를 탈 필요는 없었다는 것은 이후에 알았다.
버스에서 뭐라뭐라 하는데 느낌이 여기가 유적 같아 내렸다. 너른 공터를 공터가 육상 경기장을 닮은 것을 보니 이곳이 바로 대경기자 키르쿠스 막시무스다. 뒤로는 황제의 궁전이 있는 팔라티노 언덕이고 석벽의 두께 모두가 견고하고 웅장하여 황궁 같았다. 드넓은 경기장에 우리 밖에 없다. 사실이 우리나라 유적들도 다니지만 사람들이 눈에 가시화된 곳이 아닌 이상 잘 찾지 않는다. 터만 덩그러니 있으니 나같이 역사 좋다고 하는 사람이나 찾는다. 덕분에 한가로이 한바퀴 돌았다.
책에서 작은 언덕에 둘러싸인 분지가 로마 중심 포로 로마노라고 하더니 정말 작은 곳에 오래되고 무너진 로마의 석축들이 즐비한 포로 로마노가 나온다. 말은 광장이나 건축물이 빽빽하니 보통의 뻥 뚫린 광장과 같은 느낌은 아니다. 아침 햇살이 광장을 비추며 서서히 그늘과 빛이 교차하는 모습이 수천년전 로마의 전설이 이야기 되는 몽환적 분위기다. 제국 말기의 원로원 건물, 개선문 그냥 걷고 걸으면서 너무나 벅차다. 그렇게 콜로세움에 다다랗다.
엄청난 건축이다. 역시 사람들은 이런 곳을 찾는다. 경기장에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모두 여기에 입구에 서서 마치 지하철 출퇴근하듯 줄서서 이동한다. 우리도 몸을 맡기고 들어서니 말로 형언할 수 없다. 이런 곳을 보니 로마를 '빵과 서커스'라고 여긴 것은 당연하다. 로마화를 시켰던 로마의 경쟁자 에투루리아의 유산을 받아들여 로마 문화화 한 것이 검투였다. 그것을 현실에 구현하여 황제의 은총과 시민의 특권으로 만들어줬던 곳, 로마 시민의 자부심과 긍지가 여기에 있었다.
숙소까지는 걸어갔다. 조국의 제단을 지나 이탈리아 원주민들이 사는 주택가를 거니는데 확실히 여기는 다르다. 역 주변의 집시와 아프리카, 중동이민자들의 눈빛과 불편함은 이곳엔 없었다. 정상적인 관계가 되는 곳은 도심을 벗어나야 한다. 도심에는 호의가 단순 호의가 아니다. 오늘날 유럽과 서구사회가 극우화되는 것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 결국 이것 역시 제국주의 유산 아닌가 그들이 망쳐놓은 식민지 세계의 분란과 어려움이 난민으로 돌아온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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